교감 일기(2018~)

2025년 6월 11일

멋지다! 김샘! 2025. 6. 13. 10:37

  어제 '정치교육을 하자'는 취지의 포럼을 다녀왔다.
  발제자는 독일의 '보이텔스바흐 합의'를 강의하며 우리나라와 독일의 역사와 문화적 차이를 강조하며 급한 마음으로 단순 이식하려는 정책보다 학교의 정치교육을 위한 사회적 환경 조성-특히 정치권의 합의가 중요하다고 했다.
  토론자로 나선 전직 철학 교사는 정치교육과 정당 참여를 비롯한 현실정치 참여와 비평과는 구분해야 하며, 학교의 정치교육을 위해서는 교사의 남다른 강단과 교사의 전문성에 기반한 엄격한 기준이 있어야 학교 구성원의 반발-민원에 대처할 수 있다고 했다.
  또 다른 토론자인 수석교사는 정치교육이 어려운 학교의 현실을 강조하며 하려면 교과서 및 전문 인력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학생 토론자는 정치교육을 제대로 배우지 못해서 논증 없는 말싸움으로 전락하는 또래들의 정치토론 형태를 아쉬워하며, 자기 학교의 학생 자치회를 잔뜩 소개했고, 학부모 토론자는 학생들을 이념과 정치 진영의 양극단으로 몰아가는 디지털 콘텐츠의 폐단과 이를 예방하는 차원에서 학교의 정치교육이 필요하지 않을까?,라고 했다.

  나는 가만히 들으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교사가 정치교육을 할 소양을 갖고 있는가?
  정치교육이 필요해서 할 테니 정치 교과서를 만들어서 배부하고 그 교과서로 정치교육을 전담하는 교사를 배치해 달라는 게, 지금 정치교육이 필요하다는 취지에 어울리는 주장인가? 정치교육은 모든 교사가 수업에서 구현하고 학교는 정치교육이 일상화된 공간이어야 하지 않을까?  
  교원의 정치기본권이 학교의 정치교육의 선결 조건이라고 하면서, 마치 우리에게 정치기본권이 주어지면 저절로 민주주의를 위한 정치 소양이 발현될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지 않은가?

  나는 이번 내란과 탄핵 정국에서 교육부장관과 교육감, 노조와 교원단체들이 취한 태도로 교육의 올바름으로 세상의 부정에 항의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음을, 교육의 중요성을 늘 강조했지만 교육이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할 때 교육의 정치적 중립 또는 공무원의 정치중립 의무 뒤에 철저하게 몸을 숨기는 모습을 봤다. 이번 내란과 탄핵을 거치면서 공간적인 가운데의 중립이 아닌 민주주의를 수호하하는 중립,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 표현은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는 중립을 강조하는 여론이 형성되어 그동안 양끝의 가운데를 중립이라고 우긴 정치 세력과 언론에 비판을 가했다. 나는 중립에는 바로 선다라는 의미가 강하다는 해석에 더 동의했다.
  공식적인 교육자라면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 내란 정국을 교육으로 바로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어야 했다. 그런데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은 내란의 부당함과 내란을 두 번 겪지 않으려는 교육자다운 단호한 면모는 보여주지 않고 민주주의를 부정한 정부의 교육 정책을 내실 있게 추진하겠다며 각가지 의전을 받으며 현장 소통과 점검을 한다며 내란 정국을 수수방관했다. 교육감협의회, 교사 노조, 교원단체 등도 내란을 비판하는 뚜렷한 정치 행보 대신 탄핵 이후의 정국을 예상한 정치 행보와 정체성 정치만 보여줬다. 마치 그것이 교육의 정치 중립이고 공무원의 정치 중립이라고 강조하는 모양새였다.
  이 모양새가 바로 우리 교육에 정치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 준 민낯이었다. 민주주의가 무너지는데 교육은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고 할 생각도 없고, 그걸 목도한 국민들도 교육은 원래 그랬다는 듯이 어떤 요구와 기대도 하지 않았다. 교육의 부재였다.

  나는 모든 공무원은 정당 가입과 후원, 나아가 공무원이라는 피선거권을 누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무원도 국민이어서  헌법이 보장한 정치기본권의 예외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정치기본권을 누려야 민주주의 소양, 이를 실현하는 정치 소양이 함양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이에 앞서 우리의 냉정한 성찰이 필요하다.
  교원이 우리가 다른 국민들보다 민주주의 지능이 높다는 착각에서 깨어나야 한다.
  감정적인 민주주의 소양으로 정치교육을 통해 내 뜻대로 학생을 계몽하겠다는 의도를 숨기고 있지 않은지, 자기 정치를 위한 자기의 정치적 올바름을 강요하기 위한 음흉함을 정치교육의 필요성으로 포장하고 있지 않은지를 교육자의 양심으로 성찰해야 한다.

  발제자들과 토론자들이 하나 같이 다양성을 공유하려는 경청을 강조했다. 지금 우리가 타인의 주장을 잘 듣기만 하면 그것으로 원만한 토론이 이루어져 정의로운 결정에 이를 것이라는 순진한 착각에서 벗어나지 못한 주장이었다.
  경청은 지적인 너그러움과 포용인데, 너그러움과 포용을 발휘할 정도의 지식을 가지려는 교육자로서의 태도를 빠뜨린 게 아쉬웠다.

  나는, 나 자신을 비롯한 우리 교원을 폄훼할 의도는 전혀 없다.
  다만, 정치교육을 제대로 하기 위한 온당한 자질을 갖추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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