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령 초기에 대부분의 학교에서 수기로 공문을 해결하고, 학교 교육과정과 학급 경영록을 비롯한 온갖 문서를 수기로 작성할 때 워드로 문서를 작성하는 나는 똑똑한 선생님이었습니다.
홈페이지에 대한 개념도 없을 PC통신 시절에 보잘 것 없는 홈페이지를 만들고, 운영체제가 도스인 환경에서 윈도3.1로 파워포인트로 프레젠테이션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나는 똑똑한 선생님이었습니다.
아날로그로 영상을 편집하던 시절에 컴퓨터로 동영상을 캡쳐하고 편집하여 수업에 활용하는 나는 똑똑한 선생님이었습니다.
학교 전산기기를 유지보수를 하는 업체가 없을 때, 이 교실 저 교실로 뛰어다니며 전산기기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나는 똑똑한 선생님이었습니다.
학습지도 예선대회에 참가하여 보기좋게 낙방하고도 첨단매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심사위원의 탓으로 돌렸던 나는 똑똑한 선생님이었습니다.
동료의 노력과 능력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동료의 객관적인 실적에 밀려서 똑똑한 나에게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고 섭섭함과 서운함을 가졌던 나는 똑똑한 선생님이었습니다.
새로운 정보를 먼저 접하기 위해 전국단위의 연수회에 자발적으로 참가했고, 최신 교육 동향을 먼저 접하기 위하여 세미나와 워크샵에 자발적으로 참여했던 나는 똑똑한 선생님이었습니다.
선생님이라면 당연히 해야 될 일을 하지 않는다고 동료를 너무 쉽게 나무라고, 관리자의 부당함을 용기있게 지적했던 나는 똑똑한 선생님이었습니다.
덕망있는 관리자를 인터뷰하고, 독서로 얻은 지식과 사례로 얻은 교훈으로 성숙한 학교 문화를 가꾸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하는 나는 똑똑한 선생님입니다.
자기만을 생각하고, 자신의 욕심을 숨긴채 동료와 친구를 이용하는 친구를 볼때마다 발전이 없는 친구라고 속으로 삼키며, 그 친구와 다르다고 생각하는 나는 똑똑한 선생님입니다.
요즘 나와 똑같이 똑똑하다고 생각하고 말하는 후배와 동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나는 그 분들이 똑똑해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똑똑함이 먼지가 되어 자신을 반성케 하는 내면의 거울을 흐리게 하고, 자신의 눈과 귀를 막아서 동료가 암시적이고 묵시적으로 표출하는-똑똑함에 갖힌 망상을 비난하는 몸짓과 수근거림-것을 알아채지 못하는 것이 어리석어 보입니다.
오히려 똑똑함의 망상에 사로 잡힌 후배와 동료를 말없이 바라보고 기다려주는 동료가 더 똑똑해 보입니다.
그 옛날 망상에 사로 잡힌 나를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기다려준 선배와 동료가 나보다 더 똑똑한 선생님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습니다. 나에게 저항의 메세지였던 '세월이 지나면,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것을 말해 준다던 선배 선생님들의 소극적인 생각이 무섭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다짐합니다.
그 옛날 선배들이 했던 똑 같은 말-세월이 지나면, 시간이 지나면-을 하지 않는 더 똑똑한 선생님이 되겠습니다.
후배와 동료의 진실된 똑똑함은 적극적으로 지지하여 확산시키고, 똑똑함으로 포장한 망상에는 등을 돌려 소멸시키는데 노력하겠습니다.
그래서 똑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똑 같은 말을 듣는 선생님이 줄어드는 학교 문화 조성하는데 기여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시작으로 나의 똑똑함에 대한 망상을 버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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