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언설

유린[蹂躪]

멋지다! 김샘! 2017. 10. 3. 11:17

초임 교사 시절부터 학교 울타리가 싫었습니다.
울타리를 벗어나고 싶다는 강한 충동과 더불어 갑갑함을 견디기 어려운 날도 있었습니다. 이런 날에는 수업을 마치고 학교 울타리에 접한 밭에서 일하시는 주민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곤 했습니다.
학교가 사회와 격리된 섬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학교의 문제는 학교에서 해결해야 한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밖에서 발설하지 마라 공무원의 비밀유지 의무에 위반된다.
교사는 사회적 문제나 이슈에 개입하지 마라 국가공무원법 위반이다.
교사는 수업으로 승부하는 직업이다 수업 개선에 최선을 다하라.
교사는 수업 이외의 어떤 말과 행동도 사회에 외치면 안 되는 존재로 강요받았습니다.

많은 교사들이 여기에 대항하다가 교사를 강제적으로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교사를 강제로 그만두게 된 이들은 유명한 지성인, 문학가, 정치인, 학원 강사, 사회 운동가, 전업주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다시 학교로 돌아와서 사회와 학교를 잇는 교육 운동가, 선 경험자, 내부 갈등 유발자, 내부 갈등 해결자, 더 순응형 교사, 더 승진주의 교사, 교육감 선거 운동 교사가 되었습니다.
조우된 현실에 의해 저마다의 고민과 성장으로 저마다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저마다의 성장과 더불어 상당한 왜곡과 모순을 발견합니다.

 
교사는 아이들만 가르치는 학교에만 갇혀 있어서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사회인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강합니다. 특히 초등학교 교사를 더 그렇게 바라봅니다. 그래서 어떤 교사는 과장된 말과 행동으로 그런 교사가 아님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그리고 금융권에 있는 분들은 교사를 쫀쫀하다고 합니다. 돈 몇 푼에 이것저것 많이 따진다고 합니다. 또 어떤 분들은 교사와 갈등이 생기면 무조건 큰소리부터 냅니다. 세상 물정을 모르니 윽박지르면 해결된다는 식입니다.
과연 교사가 그런 존재일까요?
교사는 법과 제도, 사회적 통념에 의해 그런 삶을 강요받은 존재입니다.
많은 것을 알고 있어도 내 마음껏 표현할 수 없는 존재로 강요받았습니다.
금전적인 손해를 안 보는 것이 당연한 것인데 그것을 쫀쫀함으로 덧씌웠습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만도 지쳐서 사회적 갈등을 원만하게 해결하려 한 것뿐인데 세상 물정 모른다고 매도했습니다. 또 적극적으로 해결하려 하면 교사가 저런다고 손가락질했습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을 하찮고 단순한 일로 저평가해서 교직을 하찮은 존재로 여기었다가 국가의 경제적 위기에 의해서 직업적인 시샘이 되었습니다.
 
교사는 대단한 능력을 가졌습니다.
공식적, 비공식적 단체의 임원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두려웠습니다. 그러나 서로의 직업이 달라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해결 방식이 다를 뿐, 교사의 능력은 부족하지 않음을 깨달았습니다. 오히려 계획적이고 체계적인 기획 능력과 아이들을 잘 가르치기 위한 지적 호기심에 의한 학습 능력과 소통 능력은 큰 장점입니다.
교사는 스스로 유린되었습니다.
학교 안에 머물기를 강요받아서 사회 참여를 생각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동료 교사의 사회 참여를 부정과 불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학교 안에 머물기를 강요받아서 타 직종과 소통의 경험이 부족하였고 이런 경험 부족에 의한 두려움이 침묵하는 교사로 만들었고 세상 물정 모르는 교사로 만들었습니다.   
 
학교 밖을 이끄는 동료 교사들이 많습니다.
학교에서 출발한 특정한 영역을 꾸준히 확대하여 학교 밖의 전문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더 인정받는 동료들이 있습니다. 스스로 유린된 교사이기를 거부한 교사들입니다. 하지만 교육관료들은 꾸준히 스스로 유린된 교사로 살기를 강요하며 학교 밖의 활동을 방해하거나 갈등을 유발하여 이간질을 시킵니다.
또한 이중의 잣대로 교사를 폄하합니다.
교사가 교육관료가 되었습니다.
교육관료가 되니 만나는 사람들이 다양해야 여러 현안 문제를 원만하게 해결할 수 있음을 느낍니다.
그리고 관련되는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자신은 학교 안에서만, 교사들끼리만 해결하려는 사람이 아닌 통 큰 사람이라면서 교사들의 삶이 학교에만 머물러 있다고 은근히 폄하합니다. 그러면서 온갖 매뉴얼과 지침, 정형화된 보고 양식을 만들어 교사들을 학교 안에만 머물게 합니다.

통 큰 교육관료들의 논리가 정당화되려면 학교 밖을 이끄는 동료들을 모른체하면 안 됩니다.
통 큰 교육관료들의 논리가 정당화되려면 학교폭력을 비롯한 사회적 문제를 학교 안으로 국한시킨 정책을 개선하기 위한 학교 안의 교사들의 저항과 불만을 모른체하면 안 됩니다.
통 큰 교육관료들의 논리가 정당화되려면 돌봄, 방과후학교 등과 같은 사회적 복지를 학교 안에서만 해결하려 하면 안 됩니다.
통 큰 교육관료들의 논리가 정당화되려면 학교 주변의 비교육적인 생태를 학교 안에서 해결하도록 종용하면 안 됩니다.
 
교사는 학교 안에만 머물기를 바라는 국가의 법령에 의해 유린되었습니다.
교사는 사회적 통념에 의해 스스로 유린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유린된 삶을 거부한 많은 교사들이 지금도 학교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유린된 학교 안의 많은 교사들이 학교 안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이런 교사들에게 고개 돌리면서 학교 안의 교사들에게 학교 밖과 소통하여 문제를 해결하라며 교사의 성숙으로 포장하는 논리에 화가 납니다.
 
유린된 교사의 삶을 저항하지 못하는 나쁜 교사가 유리된 삶을 저항하며 현실의 고통을 감내하고 있는 학교 밖의 동료 교사들과 학교 안의 동료들에게 도움이 되는 방법이 감상적인 글 밖이라는 것이 부끄럽습니다.
늘 응원합니다. 그리고 존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