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언설

교사가 어떤 존재로 보이길래...

멋지다! 김샘! 2017. 11. 13. 23:29

얼마 전에 장학사의 간곡한 부탁을 내부 메일로 받았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장학사가 교감에게 보낸 것을 전달받았습니다.
사무감사가 시작되는데 안전체험 장비 대여율이 상당히 떨어져서 지적받을 우려가 있으니 각 학교에서 하나라도 대여하라는 내용입니다. 교육장의 지시라는 것입니다.
물소화기, 인공호흡 체험 인형 등을 비롯한 안전체험 장비가 각 지역교육지원청에 있으니 필요한 학교에서는 대여하라는 공문이 왔었습니다. 수업 중에 담당자 연수가 있었는데 행정실의 협조를 얻어서 주무관이 참석했습니다.
 
처음에 우리 학교는 대여하지 않았습니다. 학생 안전체험을 위해 외부강사를 초빙했는데 그분들이 일체의 장비를 가지고 왔고, 물소화기는 소방훈련 시에 진짜 소화기를 사용했기 때문에 필요가 없었습니다. 물소화기를 대여하기 더욱 힘들었던 것은 학교에서 대여 신청을 하면 교육지원청에서 갖다 주는 것이 아니라 학교에서 트럭으로 대여하고 반납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국력에 진짜 소화기로 훈련하면 되지 가짜 물소화기로 체험을 한다는 발상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여하튼 안전체험을 하기 싫어서 대여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학교안전 교육에 필요성이 없어서 대여하지 않은 것인데 사무감사에 지적당하는 것이 두려워서 강제로 대여를 독려한 것입니다.

결국 여러 상황을 감안하여 최소한의 체험 장비 대여 신청을 했습니다.
 
학교 현장의 수요를 반영하거나 예측하지 못한 교육행정입니다. 안전체험을 위한 교육적 선택이었다고 하더라도 수요자의 편리를 최대한 제공하여 학교에서 신청하면 교육지원청에서 학교로 배달하는 시스템을 갖추었으면 사정은 달라졌을지 모릅니다. 이것이 학교를 지원하는 교육지원청의 역할 아니겠습니까? 학교에게는 수요자인 학생과 학부모의 만족도를 높이라고 강조하면서 교육지원청은 수요자인 학교의 요구를 전혀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사건이고, 교사의 존재를 홍보성 실적을 만드는 교육행정의 하수인으로 여기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스쿨존 도로 상태, 스쿨존 알림 시설물, 속도위반 단속카메라, 방범 카메라 설치 여부 및 상태를 보고하라는 공문이 왔습니다. 안전교육 담당이라서 재지정을 요청했습니다. 그랬더니 행정실에서 '모든 시설관리는 행정실에서 해야 되느냐'라며 따졌습니다. '맞아요! 모든 시설관리는 행정실에서 해야 됩니다.'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본질에서 유지하고 싶어서 '할 말은 있지만 그것은 내가 답변할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서 답변을 미룹니다. 그리고 학생 안전교육 담당 교사가 스쿨존 관리를 하지 않습니다.'라고 분명히 했습니다. 그랬더니 스쿨존 관리 부분은 행정실에서 할 테니 나머지 부분은 좀 해서 보고해 달라고 요청을 해서 정 안 되면 그렇게 하겠다며 일단락 지었습니다.
이 사건으로도 행정실에서 교사의 역할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분명히 알 수 있었습니다. 교육행정을 집행하는 최하위 공무원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스쿨존이란 어린이 보호 구역으로 초등학교나 유치원의 주로 이용하는 출입문의 반경 300m 이내의 지역(필요한 경우 500m)을 어린이보호구역으로 정하고 여러 가지 부속물이나 시설물을 설치하여 아이들의 안전한 통학에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하는 제도 중 하나입니다.  
1995년 도로교통법에 의거해 도입되었고, 이와 함께 '어린이보호구역의 지정 및 관리에 관한 규칙'이 제정되었습니다.
도로교통법에 의해 시장 등은 교통사고의 위험으로부터 어린이를 보호하기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때에는 유치원 및 초등학교의 주변 도로 중 일정 구간을 어린이보호구역으로 지정하여 차의 통행을 제한하거나 금지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차에 대한 공포감이 그렇게 크지 않기 때문에 스쿨존 내에서 차량의 속도를 30km 이하로 하여 운전하고  어디서 어린이가 뛰어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방어운전을 해야 하겠습니다.


위 내용은 경찰청에서 스쿨존에 대해서 답변한 내용입니다. 위반 시에는 가중처벌을 받는다는 점도 강조했습니다. 위 답변에 의하거나 법에 의하면 스쿨존 지정 및 관리는 지자체가 하고 단속 및 계도도 지자체나 경찰에서 하는 것이 상식입니다. 다만 학교는 학생들이 스쿨존에서 안전하게 다닐 수 있도록 안전교육을 철저히 하면 됩니다.
그런데 스쿨존 안전에 대해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지자체장이나 경찰은 가만히 있고 교육감을 비롯한 고위 교육관료가 스쿨존 관리를 철저히 하겠다고 강조하고 스콜존 안전 교육을 강화하겠다고 언론에 알립니다. 그리고 학교가 스쿨존 관리 제반 시설 관리 심지어 단속한 실적까지 보고하는 것이 관례화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이 업무를 대부분 교사가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도교육청에서는 업무를 명확화하지 않았고 학교 관리자는 이 업무를 행정실에 지정할 용기(?)를 내지 못하기 때문에 만만한 교사에게 스쿨존 관리를 지정한 것입니다. 도교육청도 이러한 사정을 뻔히 알고 있겠지만 바로잡을 용기를 내지 못하고 누가 해도 보고만 잘 되면 된다는 식입니다. 도교육청이 교사를 어떻게 보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상황입니다. 역시 교육행정의 제일 하위 공무원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많이 슬펐습니다.
새 정부가 들어서서 교사에 의한 교육개혁을 주창하며 교사를 아이들의 교육활동에 매진시키기 위해 방과 후 학교를 비롯한 여러 가지 행정업무를 덜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더욱 슬펐습니다. 그리고 교육부가 이런 노력의 일환으로 현장 교사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있는 터여서 더더욱 슬펐습니다.
 
그리고 결심했습니다.
교사가 교사 본연의 역할만 하도록 법이나 제도 개혁에 나설 용기가 없는 '나'임을 인정하자! 대신 상부 기관의 부당한 행정업무를 강요하는 것에는 대중에게 꾸준히 알려서 현재 교사들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그 부당함을 공유하자. 이런 행위에 부담 갖는 주변의 교육관료 덕분(?)에 최소한 내 주변만이라도 개선하자. 그리고 나의 위치와 역할로 동료 교사를 위해 막고 버티자!
 
사족을 더하면 스쿨존 안전을 지키기 위해 도교육청은 학교로 하여금 스쿨존 관리를 보고받을 것이 아니라 지자체, 경찰서와의 유기적인 정보교환과 요구로 스쿨존 안전시설물 설치 및 유지 보수, 강력한 단속을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이러한 학교 지원을 위해 교육지원청과 도교육청이 존재하는 이유가 아니겠습니까?
 
행정실. 교육지원청, 도교육청은 교사가 어떤 존재로 보이길래...
슬프고 쓸쓸한 초겨울의 학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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