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대립군』"혹시 아나? 우리 팔자에 없는 성군이라도 날지" 계급의 봉건사회에서는 어떤 왕이냐에 따라서 백성들의 삶이 달라졌습니다.
학교는 학교장의 성향에 따라 학교 교육의 질이 달라집니다.
어쩔 수 없는 제도적 한계입니다.
봉건사회의 성군을 기다리는 마음이나 성군 성향의 학교장을 소원하는 마음이나 다를 것이 없습니다.
혁신학교, 경남의 행복학교도 성군 문화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합니다.
혁신학교의 첫 번째는 민주적인 학교문화입니다. 하지만 교사들에 의한 민주주의가 아닌 학교장이 민주적인 학교 문화를 존중하기를 원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학교장이 바뀌면 민주적인 학교문화가 순식간에 비민주적으로 돌변합니다. 그리고 성군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립니다. 구조가 민주주의화되지 못한 이유입니다.
국가나 광역자치단체처럼 조직이 크면 권력자가 법치주의를 위배하면 국민적인 저항에 부딪힙니다. 하지만 학교와 같은 작은 조직은 불편함을 감소합니다. 저항에 대한 심적인 두려움 때문에 감히 나서지 못하고 나서는 이가 있어도 적극적으로 호응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한계에 대한 변명으로 본인이 속한 단체나 속하지 않은 단체가 이런 일을 해주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이런 단체가 학교의 소소한 일까지 해결해주기를 바라는 것은 너무 큰 욕심입니다.
바람이 전해주는 말에 의하면 큰 조직 때문에 작은 조직이 희생하는 것들이 많아서 큰 조직을 탈퇴하여 작은 조직으로 실제적인 삶을 바꾸려는 시도가 많다고 합니다. 찬성합니다.
학교도 마찬가지입니다. 본인이 속한 학교 단위의 문화는 본인이 바꾸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해야 합니다. 본인 힘이 부족하면 옆 반 선생님과 그 옆 반 선생님과 꾸준히 연대하여 바꾸려는 시도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작은 파시스트들의 경각심을 일깨워야 합니다. 그래야 학교가 바뀝니다.
우리는 성군 문화를 지나치게 당연하게 받아들입니다. 어쩌면 성군 문화에 중독된 지도 모릅니다.
성군 문화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문화 바뀌지 않으면 민주주의 학교는 영원히 없습니다.
제도는 민주주의 학교 문화로 구조화하지 못했지만 이제 자유연대에 의한 교사들의 혁명으로 관습적이고 통념적인 민주주의 학교로 구조화해야 합니다. 당장 이루어지지 않겠지만 끊임없는 시도로 희망의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본인이 속한 학교를 민주주의로 바꾸려는 시도를 포기하고 작은 파시스트가 성군이 되기를 바라는 것은 학교의 민주주의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변의 파시즘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고 외부-나름대로 큰 그림-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써는 것도 모순입니다.
주변의 변화를 이끄는 사람이 지행합일의 진실된 사람입니다.
성군이 나타나기를 바라는 학교 문화를 극복하기 위해서 지행합일을 견지하겠습니다.
노력하고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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