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언설

기어이 가야 할 길인가?

멋지다! 김샘! 2018. 12. 16. 14:23

강만길 교수의 자서전 『역사가의 시간』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 ‘역사는 기어이 가야 할 길을 가고야 만다. 다만 시대에 의해 후퇴, 우회, 지름길의 차이다.’로 해석되는 부분이었다. 평소 나의 바람이어서 더 와닿았다.

교감(校監) 하는 친구들과의 정기적인 만남이 있다. 참여를 꺼리다가 교감(感)의 필요성을 느껴서 별일이 안 생기면 빠짐없이 참가하여 술만 마시기보다 교육 현안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편이다.
이번 만남에서 첫 주제가 도교육청의 공문이었다.
방과 후 담당 장학사가 계약제 교원의 채용을 포함한 모든 강사의 채용 및 수당 지급을 교사가 하지 않도록 한다는 2015년도 전교조 경남지부와의 단체협약 체결 내용이었다. 교감이 해야 한다는 내용이 아니었다. 그런데 지난 방과 후 학교 담당자 연수에서 담당 장학사가 교사가 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교감이 해야 한다로 해석하고 수당 지급 업무는 교감이 하지 않는다로 말하면서 갈등이 시작되었다. 담당 장학사의 명백한 잘못이다. 2015학년도 당시에 이 단체협약을 근거로 방과 후 학교 업무를 도 교육청의 어떤 부서에서는 교사가 하지 말아야 할 업무로 명확히 했고, 어떤 부서에서는 학교에서 의논해서 정할 문제라는 의미로 명확화하지 않았다. 교사가 하지 말아야 할 업무라는 의미는 행정업무, 학교와 직접 관련이 있는 부서는 행정업무이긴 한데 행정실이 해야 한다로 명확히 하는 것이 부담스러워서 학교에서 의논하여 결정할 사항으로 두루뭉술하게 넘어갔다. 그래서 이런 도교육청의 방법은 현장의 갈등을 더 부추긴다는 내용으로 비평한 기억이 있다. 아니 분명히 비평했다.
그런데 이번에 담당 장학사가 맥락을 알지 못하고 교감과 교사의 대결 구도로 만든 것이다. 법적 근거가 없고, 대부분이 행정업무인 방과 후 학교 업무를 교사가 맡는 것이 문제가 되어 2015학년도 단체협약이 체결된 것인데 근본을 흐리고 갈등을 유발한 것이다.
그리고 이 갈등과 다르게 볼 사안이 있다. 계약제 교원의 채용과 호봉 책정, 관리는 이미 교감이 하고 있다. 만약 교감이 이 업무를 하고 있지 않다면 교감의 자질이 없다고 주장한다. 방과 후 강사 채용 관련 행정업무, 호봉 책정-방과 후 강사와 관계없음-은 학교의 규모와 환경에 따라 달리 생각해야 된다. 6학급의 작은 학교는 방과 후 자원봉사자-방과 후 코디-가 없다. 이런 학교에서 방과 후 학교 업무를 해봤다. 힘들었다. 수업에 지장도 있다. 그래서 이때부터 방과 후 강사 채용 및 관리는 교감이 하고, 수당 지급 업무는 행정실에서 이것도 여의치 않다면 방과 후 학교의 교육과정 관리와 수당 지급은 교사가 하면 좋겠다는 주장을 했다. 6학급의 교감은 비교적 여유적 있어서 할 여력이 충분하다는 판단이다. 실제로 그렇게 하는 교감도 있다. 하지만 수당 지급을 교감이 하면 업무의 성격상 교감이 행정실의 주무관으로 들어가는 형국이 된다. 이것으로 끝날 일이 아니라 다른 행정업무도 그렇게 될 것이다. 학교 교육을 지원하는 행정실이 아니라 행정을 지원하는 교육이 되는 것이다. 이번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작은 학교에도 자원봉사자를 채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학교에 불필요한 인력이 많이 늘어나서 관리의 문제가 있으니 행정실에서 하면 안 되냐는 식으로 접근하는 이들도 있지만 행정실의 인력도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자기 눈으로만 보는 단편이 전체라고 우기는 우()는 성장을 위한 태도가 아니다.

두 번째 주제는 인근 학교의 교장공모제 중 내부형 공모제였다.
내부형 공모제이니 당연히 교장 자격이 없는 교사가 응모했을 것이다. 교장 자격은 없지만 그 지역에서는 꽤 유명한 교사, 교장으로 임용될 가능성이 높은 교사가 응모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에 기존 교장과 교감은 자기 것을 지키겠다는 본능적인 방어 기제의 발현으로 반대하는 것이 당연하다. 나름대로 교장 하려고 치열하고 때로는 치졸한 경쟁으로 교감이 되었는데 이런 절차를 무시하고 바로 교장이 된다는 것에 본능적으로 방어기제가 발현되는 것은 당연하다. 나도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면서 주장하는 놀리가 모든 것은 단계가 있다. 단계를 거치지 않는 것은 반드시 부작용이 생긴다는 것이다. 일부 인정한다. 하지만 단계를 거치지 않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단계 자체를 부정하거나 그 단계에서 반드시 해야 될 일을 의미 없는 것으로 폄훼하는 것이 더 문제다. 자극적으로 비유하면 대통령이 되려면 9급 공무원부터 시작해야 된다고 주장하는 것에 얼마만큼 동의할 수 있는가? 자기 뜻을 따르지 않는 9급 공무원의 존재 가치를 부정하거나 폄훼하는 것이 문제 아닌가?
이런 관점으로 인근 학교 내부형 교장 공모에 지원한 한 교사를 교감의 자격으로 지원한 한 교감과 비교하며 내 생각을 이야기했다. 리더가 반드시 모든 단계를 거칠 필요는 없지만 그 단계의 필요성과 중요성은 인지해야 하고 필요성과 중요성을 알기 위해서는 그 단계의 사람들과 소통해야 한다. 자기의 원()으로 교육의 큰 원(
)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기어이 가야 할 길은 인간을 위한 길이다. 인간을 위한 길을 실현하는 방법이 교육이다. 교육에서 눈앞의 갈등을 새로운 갈등으로 전화시키는 해결 방법, 협소한 다원주의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법은 기어이 가야 할 길이 아니다.
우리의 지성이 기어이 가야 할 길로 나아가고 있는가?
우리의 지성이 기어이 가야 할 길을 방해하고 있는가?
기어이 가야 할 길을 만들고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교감일기
#나쁜교사불온한생각으로성장하다 / 김상백 저
#내수업을간섭하지마라 / 김상백 저
#착하게사는지혜 / 김상백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