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언설

교사 호칭이 걱정스러운 이유

멋지다! 김샘! 2019. 1. 10. 23:29

기회가 균등하게 제공된다고 결과가 균등해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 교육은 기회균등보다는 결과를 서열화하거나 성공과 실패로 규정지었다. 제공된 기회균등은 지리, 사회, 문화, 경제, 심리 등에 의하여 각각의 형태로 표출될 수 있는데도 같은 결과가 나와야 된다는 강박에 사로 잡혀 있었다. 표출의 결과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표출되기까지의 과정이 자아실현에 기여하여 인간의 궁극적인 목적인 행복에 얼마나 다가가느냐이다. 이런 과정에 교육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가 중요하다. 그리고 이런 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가 최대의 고민거리가 되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소위 진보 교육감으로 지칭되는 이들의 교육 사상이 걱정된다.
서울교육청에서 주장하는 호칭 문제만 하더라도 인간 성장 단계를 위계로 치환한 모순에서 출발했다는 생각이다. 소위 진보 진영의 결과 평등주의의 오류가 나타났다는 생각이다. 형식이 평등하면 즉, 인간관계의 형식적 표현의 결과가 같으면 수평적 문화가 된다는 발상은 그들의 사상이 얼마나 초라한지, 학교 문화를 단편적인 갈등 구조로만 파악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학생과 학생, 학생과 교원, 교사와 관리자, 교무실과 행정실을 위계에 의한 갈등 구조로 해석하여 호칭을 일원화하면 수평적인 문화로 나아가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명백한 오류다. 그나마 그동안 학교가 제 역할을 한 것은 호칭에서 주어진 권위가 있었기 때문이다. 권위[權威]는 다른 사람을 통솔하여 이끄는 힘이다. 위계에 의한 강압과 권위는 질적으로 다른 개념이다.  물론 권위주의로 전락한 부분으로 권위의 부당함을 제기할 수 있다. 나 역시 권위주의를 배격하는 학교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일 인이다. 그러나 구분해야 한다. 권위주의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권위를 제거하면 인간 성장 단계로서 앞선 선생님이 인간 학생을 제대로 통솔할 수 있는 동력은 상실된다.

교육자라면 학교 문화를 제대로 진단해야 한다.
현행 비민주적인 학교문화에 의한 교육의 더딤 현상을 대결과 갈등의 구조로만 접근하면 안 된다. 나는 학교가 계급이 없는 사회가 되기를 갈망한다. 하지만 대표자, 조정자, 결정자는 존재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합리적인 권위가 주어져야 하고 교사에게도 가르칠 수 있는 권위가 주어져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갈등 구조로만 파악하여 비민주적인 학교 문화를 쇄신한다는 명복으로 관리자의 권위만을 제거하기 위하여 안간힘을 쓰고 막연히 구조를 바꾸면 될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 같다. 그래서 관리자를 호되게 몰아쳐서 죄인으로 만들고 현실성이 없는 이런저런 구호성 구조를 제시하여 적용하라고 종용하는 형국이다. 
제대로 진단하지 못한 결과다.
관리자이든 교사든 정권에 충실하고 교육감의 정책에 충실히 따른 충신들이다. 교사는 위에서 시킨다고 이런 것까지 해야 되느냐고 관리자를 비난했고 관리자는 국가공무원이 위에서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 되는 것이 아니냐며 대응했다. 누가 누구를 나무랄 수 없는 모두 다 충신인데 어느 한쪽을 모든 원인으로 간주하는 것은 편향된 진단이다.

중요한 것이 빠졌다. 학교 구성원들의 지적인 성장과 역할론에 대한 책무성이 배제되었다. 전교조 조합원이 급속도록 빠진 이유가 무엇인가? 정치색을 많이 띈다는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맞섬과 저항에 대한 두려움이다. 마음은 연가 투쟁인데 현실의 벽을 넘기가 두렵기 때문이다. 이런 마음을 모르고 줄기차게 연가 투쟁을 부르짖었으니 조합원들의 내면의 갈등이 오죽했을까?
평등한 학교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위계에 의한 강압에 조직적으로 저항하는 교사들의 노력이 필요한데 교사는 저항하지 못하겠으니 관리자를 바꾸어 달라고 요구하는 것에 진보 교육감이 반응하는 형태가 서울교육청의 호칭 해프닝이다. 마땅히 교사들이 결정해야 될 문제를 관리자에게 미루는 것이 미덕이 된 학교 문화, 그 문화에 저항하는 교사들을 멀리하는 학교 문화, 저항하는 교사들 때문에 학교 분위기가 엉망이라는 학교 문화 속에서 관리자의 힘만 빠지면 구조가 조금 변경되면 학교 문화가 수평적으로 변할까?
사회 문제에 참여하는 것을 정치적 관여라며 공무원의 정치 중립을 운운하면서 수업 혁신만이 학교를 살리는 길이라며 오직 교실에 갇혀 있기를 강요하는 현상태에서 어떤 수평적 문화를 기대할 수 있을까?
교사는 수업만 하는 기계여야 된다고 강요하는 문화에서 민주적인 학교 문화를 위한 맞섬과 저항의 연대를 기대할 수 있을까? 교사가 지성인으로 성장해야 되는 이유다. 지성인이 되기를 두려워하는 학교 문화부터 바꾸어야 수평적인 학교 문화가 가능하다.
관리자를 배격의 대상이 아니라 바른 역할론으로 접근해야 한다. 학교 문제를 사사건건 관리자와 교사의 갈등으로 귀결시키는 것은 갈등을 증폭시킬 뿐이다. 관리자로서의 역할을 다할 수 있는 구조, 관리자로서의 책무성을 강조하는 분위기 조성으로 시대가 원하는 관리자의 소양을 쌓도록 하는 것이 갈등 증폭보다는 나은 해결책이다.
작정하고 제안하면 진보 교육감들이 현재의 교장제도가 교육의 성장을 방해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교장제도를 바꾸는데 적극적으로 나서라. 근본적인 교장제도는 유지하면서 어중간하게 교장이 되는 방법을 손질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교장제도가 문제라면 교장제도를 바꾸겠다고 선언하고 저항세력과 온몸으로 맞서라. 교육감이라면 그 정도의 용기는 필요하지 않은가? 그런 용기가 교실에만 갇혀 있는 교사들의 저항 의식도 깨울 것이다.

서울교육청의 호칭 문제는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교육에 대한 어설픈 사상과 학교를 바라보는 편협되고 단편적 시각, 학교를 갈등 구조로 지속시켜 이익을 추구하겠다는 정치 논리가 드러난 것으로 본다. 이와 유사한 상황들의 반복이 예상되어 심히 우려된다. 나의 기우로 그치면 좋겠다.

#교감일기
#나쁜교사불온한생각으로성장하다 / 김상백 저
#내수업을간섭하지마라 / 김상백 저
#착하게사는지혜 / 김상백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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