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언설

존경하지만 알 수 없는 동지에게

멋지다! 김샘! 2019. 5. 2. 15:13

존경하는 동지에게
짧은 봄에 온갖 꽃들이 대지의 살갗을 뚫고 올라왔던 작년과 달리 몇 번의 거칠고 찬 바람이 몰아친 올해의 봄에는 꽃잎들이 익숙한 자연의 순리대로 뚫고 올라온다. 화사한 봄옷을 장만할 때 며칠 입으면 그만일 것을 있는 옷이나 입고 버리라든 아내의 날카롭지만 애정 어린 말이 멋쩍을 정도로 제법 긴 봄을 즐기고 있다.
그러나 언제 얼어붙었는지 알 수 없는, 차디찬, 너무 차서 만지면 동상의 쓰라림이 아닌 화상의 흉터를 남기는 동지와 나 사이의 얼음강에는 봄의 미열이 당도하지 않아서 오늘의 따뜻한 포근함을 마냥 즐길 수가 없다. 

존경하는 동지여
서로의 마음을 숨기고 피하고 무리 지어 비난할 것이 아니라 이제는 서로의 속내를 탈탈 털어내는 용기와 그 용기에 품위로 답하는 솔직한 대화가 필요함을 느낀다. 그동안 용기가 부족해서, 동지의 마음에 들기 위해 속내를 글 안에 아름답게 숨겼으나 그것이 아름답게 해석되지 않아서 안타깝기도 했다.
오늘에서야 그것이 언 강에 봄의 기운을 불어넣는 행위가 아니라 얼음강을 사이에 두고 가느다란 막대기로 서로의 얼음을 두들긴 것에 불과했음을 알았다. 얼음을 녹이고 싶다. 그 녹은 물이 우리 후배들의 농토를 풍요롭게 만들어 억눌린 열정의 오만을 뛰어넘는 변혁의 세력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런 마음으로 전한다.  

주장을  하는가? 바람직한 변화를 위한 정의로운 행위인가? 나의 힘듬을 알아달라는 몸짓인가? 아니면 시샘인가? 어찌 되었든 주장은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주장의 근거가 자기주장만으로 이루어지면 안 된다. 자기주장이 옳음을 제시하는 근거는 구체적이고 합리적이며 치밀해야 한다. 공부가 필요한 이유다.

내부의 특정 집단으로 향한 색적이고 무리한 주장은 언제든지 자신을 향할  있다. 함께 성장하기 위한 주장이라면 비판하는 집단의 정체성은 인정해야 한다. 교감, 교장의 자격이 필요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교감, 교장의 전문성과 정체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나은 교감과 교장이 되기 위한 다양한 주장을 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이다. 교사 자격증이 없어도 아이들  가르치는 분들이 있다. 이런 분들에게 교사 임용을 시키는데 찬성할  있는가? 현재 학교에서도 어떤 영역은 교사가 아닌 분들이 가르치고 있다. 심지어 스포츠강사의 경우는 체육 시간에 보조 교사로 활용해야 되는 것이 원칙이다.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는가? 이런 분들이 정규직을 요구하고 교사직을 요구할 주관적인 낌새가 있으면 정규직화를 반대했고,  가르치는 것과 더불어 전문성이 필요한 교사는 더더욱 안된다고 얼마나 목소리를 높였나? 
자격(증)은 그 직의 수행을 위한 전문성, 책무성, 도덕성, 리더십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 자격증을 획득하기 위한 과정이 전문성, 책무성, 도덕성, 리더십을 담을 수 있는가 없는가는 별도의 주장이다. 이를 위한 주장이라면 승진제도의 변혁을 주장해야 된다. 그리고 주장하는 승진제도가 현재의 제도보다 전문성, 책임성, 도덕성, 리더십을 더 획득할 수 있다는 구체적이고 합리적인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토의와 토론이 된다.
의사 면허가 없는 물리치료사나 조무사, 간호사가 오랜 경험에 의한 기술 습득으로 의사가 할 일을 대신했을 경우 우리는  안 된다고 하는가? 
교감, 교장도 전문직이다.  역할을 잘하고 못하고는 다른 문제다. 전문직 자체를 부정하면 안 된다. 교사들이 행정 업무를 하고 있다. 많이 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행정업무와 행정직원이 하는 업무는 차원이 다른다. 교감이 하는 행정업무도 차원이 다르다. 교사가 하는 행정업무만으로 행정업무에 능수능란한 전문가라고 자부하면 만용이다. 물론 교사뿐 아니라 다른 직종의 사람들도 일정한 학력 이상이면 교육행정직과 교감의 행정 업무 얼마든지   있다. 교육행정직은 한정된 자리여서 시험으로 채용하는 것이고 교감은 행정업무뿐만이 아니라 다른 역할이 있다. 사실은 다른 역할이 중요한데 요즘은 다른 역할은 아예 언급하지 않고 아니 교감이 언급하면 민주적인 학교 문화를 헤치는 것으로 호도하는 실정이다. 물론 교장도 결재만 하는 것이 아니라 교사나 교감이 하지 못하는 가치 있는 일을 한다. 이런 역할을 수업과 행정업무로 비교하면  된다. 행정직, 교사, 교감, 교장 모두 가치 있는 고유한 역할이 있다. 이런 역할을 무시하고 소중한 본인의 역할과 본인의 눈으로 축소하고 폄훼하여 판단한 다른 이들의 역할을 비교하는 것은  강을  얼게 하는 행위일 뿐이다. 

대화의 품위는 유지하자. 대화는 이기고 지는 게임을 위한 수단이 아닌 소통을 위한 가치로운 관계 맺기이다. 특히 학교는 아이들의 성장과 발전을 위한 합리적인 의사결정의 대화여야 한다. 그런데 학교를 변혁하기 위한 주장을 하면서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동료나 건전한 비판으로 다른 주장을 하는 이들을 향해 조롱과 원색적인 비난을 날리는 것은 모순의 주장임을 방증하는 것이다. 이런 논리를 내세우지 않더라도 우리 정도면 대화의 품위는 기본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변혁은 함께하는 것이다. 원색적인 비난이나 조롱은 편을 가르는 갈등이지 함께하는 방법이 아니다.

존경하는 동지여
우리들의 목표는 아이들의 성장과 발전이지 않은가? 학교의 존재 이유가 나의 주장을 펼치기 위한 것이 아니지 않은가? 각자의 방법으로 아이들의 성장과 변화를 위한 학교의 변혁을 시도하자. 나의 방법이 옳음을 증명하는 소통이 아니라 정의롭게 실천하기 위한 방법을 찾고 보완하는 소통이 되자. 그런 정의로운 실천으로 우선 주변부터 바꾸자. 그리고 그들과 함께 하자. 
우리와 그들의 따뜻한 시선  강을 녹이지 않겠는가?
그런 시선이면 지금의 나의 학교도 따뜻하지 않겠는가?

따뜻한 햇살이 그리웠던 봄에서  햇살을 피하고 싶은 여름으로 넘어가는 길목, 나쁜 교사에서 나쁜 교감으로 변절하는 시점에서 존경하지만   없는 동지들에게 남긴다.

#교감일기
#나쁜교사불온한생각으로성장하다 / 김상백 저
#내수업을간섭하지마라 / 김상백 저
#착하게사는지혜 / 김상백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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