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언설

영화 기생충의 물음에 어떻게 답할 것인가?

멋지다! 김샘! 2019. 6. 4. 22:05

영화를 즐기는 시민으로서 영화 기생충을 보고 두 가지 물음이 생겼다.
하나는 영화 기생충이 어떻게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움직였을까?
또 다른 하나는 감독은 어떻게 영화 기생충을 창조할 생각을 했을까?
며칠 동안 여러 생각을 했다. 그동안 쌓은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참 많이 했다. 이런 것 같기도 저런 것 같기도 했지만 좀처럼 결론에 도달하지 못했다. 영화에 대한 소양이 부족하니 어쭙잖게 비평가들을 따라 할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시민으로서 영화 보고 난 뒤 생긴 의문에 시민으로 답을 찾고 싶었다.
그러다가 오랫동안 선생을 하고 있다는 자각이 훅 밀려왔다. 이어서 교육에 대한 고민과 영화 기생충이 던진 질문 사이에서 묘한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다. 영화 기생충이 우리 교육의 현주소와 극복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것 같았다.

영화 기생충이 어떻게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움직였을까?
영화 기생충을 보는 내내 떠오르는 프랑스 고전문학이 있었다. 레미제라블이었다. 시대와 상황은 다르지만 영화 저변에 깔린 음산함은 레 미제라블과 같았다. 감독이 나의 의견에 동의할지 모르겠지만 영화 기생충이 프랑스 문화를 깔고 있었기 때문에 문화적 동질감, 즉 문화적으로 거북함을 불러일으키지 않은 문화 수용이 이루어졌다는 생각이다.
영어 교육을 말하고 싶다. 
영어를 유창하게 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했나? 지금도 얼마나 영어에 매진하고 있나? 수능에서 영어 비중이 얼마나 높은가? 덕분에 영어 몇 마디는 하게 되었으니 다행이라고 위안을 삼을 수 있을까?
그러면 영어를 하는 만큼 영어 문화권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나? 영어를 잘하기 위해서 영어를 수능에 포함시키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영어 문화권을 이해하는 교육이 옳은가? 그리고 영어 문화권을 이해하는 정도를 영어로 점수화시키는 것이 가능하기나 할까? 결국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전 읽기와 함께 생활하면서 체득하는 방법이다. 학교의 영어 교육은 수능이 아닌 세계인으로서의 소양을 쌓기 위한 방법으로 바뀌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우리의 정서를 제대로 자막으로 표현할까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고 했다.
우리 문화를 그들의 문화로 바꾸는 작업이 자막이다. 인기 있었던 외국 영화의 한글 자막이 이상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의 문화에 의한 대사를 우리 문화의 언어로 제대로 해석하지 못한 결과였기 때문이다. 만약에 기생충 영화의 자막을 번역 앱이나 구글 번역기로 했다면 결과가 어떠했을까?
그들의 문화로 소통하려는 노력이 빚은 좋은 결과라고 본다.
독서교육을 말하고 싶다.
온갖 기법이 난무하는 독서보다 뿌리 깊은 독서로 평생 독서가 되어야 한다는 의견에 이견을 낼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면 주변을 둘러보라 독서 기법은 호흡기로 전파되는 유행병처럼 우리의 호흡 공간에서 좌충우돌하고 있지만 우리의 토양에 뿌리를 내려서 꽃을 피우고 있는가? 창의성 기법이 창의성 교육이 된 것처럼 독서기법이 독서교육이 된 현실이 정말로 안타깝다.
책을 읽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어른이 먼저 책을 읽어라. 평생 동안 읽어라. 그러면 아이들도 평생 동안 따라 한다. 당장에 돈을 버는 자기 계발서, 어정쩡한 리더십 교본, 언론에서 홍보하는 상업적인 세속 문학보다 마음의 밑바닥에 차곡차곡 쌓여서 인품이 되는 문학을 가까이 하라. 그러면 아이들도 가까이한다.
아이들에게 읽어라! 어떤 책을 읽었니? 내용은 어땠어? 생각과 느낌을 강요하기 전에 어른이 동서양의 고전 문학을 읽어라. 이런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세계인과 자유롭게 소통한다.

감독은 영화 기생충을 어떻게 창조할 생각을 했을까?
자본주의의 폐단 부의 편중과 부에 의한 학력의 세습, 이로 인한 근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타파되어야 할 봉건주의 계급이 아닌 사회의 진보의 속력과 두께만큼 빨라지고 굳건해져서 감히 스러질 것이라는 희망조차 품을 수 없는 신 인간 계급을 어떻게 주거 공간의 물리적인 높이로 표현할 수 있었을까?
인간 평등의 가치로 전 지구적 문제를 바라보는 비판적인 사고와 전 지구적 문제가 나의 삶과 떨어져 있지 않다는 생각과 근한 자본주의의 자궁에 감싸여 있다는 현실을 인정하며 극복하려는 냉혹한 자기 관리를 감독의 언어인 영화로 표출했다고 생각한다.
프로젝트 학습을 말하고 싶다.
교과의 여러 내용을 한꺼번에 가르치는 통합에 머무르고 있는가? 지식과 지혜를 탐구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는가? 삶과 앎이 하나 되는 교육을 주장하면서 우리 삶이 직유와 은유로만 수업에 머무르고 있지 않은가그렇지 않다면 우리 삶의 문제를 앎으로 해결하기 위한 특별한 노력을 하고 있는가? 
우리 삶이 전 지구적인 삶의 축소판임을 간과하고 있지 않은가? 쓰레기와 플라스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플라스틱 쓰레기통을 더 만드는 교육을 하고 있지 않은가? 
시상식에서 보여준 당당한 퍼포먼스는 자아실현인이 보여준 자존감의 절정이었다. 감독이 배우에게 보여준 퍼포먼스는 겸손이지만 그런 겸손 퍼포먼스를 자연스럽게 연출하는 당당함은 직업인으로서의 영화감독과 배우가 아닌 영화가 자아실현의 수단이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진로교육을 말하고 싶다.
직업을 얻기 위한 진로교육인가자아실현을 위한 진로교육인가? 특성화된 학교는 직업을 얻기 위한 학교인가? 저마다의 꿈과 끼로 자아실현을 위한 학교인가? 인간으로 성장하기 위한 대학 진학인가? 직업을 얻기 위한 진학인가? 자아실현을 위한 것이라고 대답할 수 있다면 당신은 얼마만큼 말과 행동으로 실천하고 있는가? 아니면 세상 물정 모르는 철없는 소리라고 빈정거리는가?

영화 기생충은 각자의 마음에 질문을 던지는 영화다. 그 던지는 질문이 씁쓸할 수밖에 없다. 씁쓸한 질문에 냉소적 미소로 답을 하고 말 것인지 성장을 위한 실천의 변화를 가져올 것인지는 각자의 자유로운 몫이다.
그러나 나와 동떨어진 방향으로 굳건히 나아가는 진보의 사회 머리채를 틀고 싶다면 영화 기생충에 대해서 천진한 감상평만 할 수 없을 것이다.


#교감일기
#나쁜교사불온한생각으로성장하다 / 김상백 저
#내수업을간섭하지마라 / 김상백 저
#착하게사는지혜 / 김상백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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