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과 지성으로 삶을 실험하고 검증하며 살고 있다. 별로 떠올리기 싫은 들뜬 학교 회식 날에 불콰한 얼굴로 삶의 방식을 이야기했더니 어떤 이가 비꼬면서 "지가 무슨 피아제라고 내 참!" 하는 핀잔을 들었다.
1. 인사를 받고 싶으면 먼저 인사하라.
인사 안 하는 아이들에게 한 달 이상으로 꾸준히 먼저 인사했다. 6개월이 지나면 거의 다, 특별한 아이만 제외하고 먼저 인사한다. 엘리베이터를 오르내리며 어른에게도 먼저 인사했더니 역시 먼저 본 어른이 인사했다. 인사하라고 매일 강요하지 말고 어른 아이 구분 없이 먼저 꾸준히 인사하라 그러면 인사를 받게 되어 있다. 단, 특별한 사람도 있으니 무시해라. 기분 나쁘면 그런 인간에겐 인사하지 마라.
2. 자녀의 선택을 존중하라.
두 아들은 남들이 부러워하는 서울의 대학에 다닌다. 남들은 사교육을 들이며 억지로 공부를 시킨 것으로 안다. 큰 아들은 자기가 알고 싶은 것이 있어서 아주 잠시만 수학 학원에 다니다가 그만두고 학교 공부와 독학으로 부러워하는 대학에 갔고, 둘째는 효과 없는 학원에 친구가 좋아서 꾸준히 다녔다. 이를 누구 어떤 이들은 학원을 옮겨라고 종용했는데 둘째가 싫다고 하여 존중했다.
첫째는 정말 목표지향적이다. 중학교 2학년 때 진로를 정하더니 스스로 한 길을 파서 지금도 그 길을 파고 있다. 둘째는 참 낭만적이다. 자기 나름 꺼 열심히 한 결과로 대학을 정했다. 다행히 하고 싶은 것이 있어서 학과는 정해져 있었다. 그런데 지금 보면 그다지 그 길로 가고 싶은 생각이 없는 것 같아서 언제든지 길을 바꾸어도 된다 하고 있다.
두 아들을 키우면서 아내와 정한 원칙이 있었다.
가. 원하지 않는 학원은 보내지 않는다.
고등학교 졸업할 때가지 고수하여 사교육비가 정말 들지 않았다. 이런 우리에게 그렇게하면 뒤에 후회하고 아이들이 부모를 원망한다고 조언했다. 반대로 조언한다. 원하지 않는 학원 보내지 마시라.
나. 남을 배려하는 인성을 심어준다.
유치원 때부터 축구를 시켰다. 축구라는 것이 배려하고 협동하지 않으면 결코 좋은 경기를 할 수 없다. 물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라서 그렇기도 하다. 두 아들이 서울 살이 할 때 적응하지 못할까 걱정을 좀 했는데 축구가-축구에 의한 인성과 축구 실력- 기우로 만들었다.
피아노 학원에 보냈다. 기능적인 목적 없이 음악을 즐겼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다른 아이들은 초등학교 저학년까지만 하고 교과학습과 관련된 학원을 다녔는데 두 아들은 중학교 1학년 때까지 스스로 꾸준히 다녔다. 덕분에 중학교 음악 수행평가는 걱정이 없었다. 다른 악기도 겁 없이 잘 다루었다.
목욕탕이나 식당에 가면 남에게 방해되지 않도록 했다. 지금까지 식당 하는 지인들이 그 당시 어떻게 아이들이 저럴 수가 있는지 놀랐다고 한다. 처음에는 내가 아주 엄하게 교육을 시키는 줄 알았는데 오해까지 했단다. 아내와 나는 아이와 함께 그냥 실천했을 뿐이다. 이런 두 아들을 보고 바보가 아니냐며 노골적으로 비꼬는 부모들이 있었다. 지금 그 부모의 아이들보다 두 아들이 자기 길을 더 잘 가고 있다.
다. 스스로 결정하도록 하고 존중한다.
우리 가족은 아내, 나, 아들 모두 자기와 관련된 내용은 스스로 결정한다. 간혹 서로 묻기도 한다. 그리고 존중한다. 단, 다른 이에게 영향을 미치는 결정은 사전에 고려하도록 한다. 그렇지 않으면 덜 존중한다.
라. 원인보다 문제 해결을 우선한다.
살다 보면 예상하지 못한 여러 일들이 생긴다. 다행히 기쁨을 주면 덤이지만 그렇지 못한 것이 인생이다. 그럴 때마다 어떻게 해결할 생각인지를 묻는다. 타당하면 존중하고 지지하고 그렇지 않으면 생각을 마라고 선택하라고 한다. 그런 다음에 두 번 실수하지 않기 위해 경험에서 지혜를 얻어라고 한다. 이미 벌어진 일로 다그치거나 비난하지 않는다. 효과 없다.
마. 현재의 통념으로 미래를 걱정하지 않는다.
두 아들의 삶이 어떠할지 궁금하다. 걱정과 기대의 양가적인 마음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부모의 마음은 같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남들보다 좋은 대학이 다니니까 남들보다 좋은 직장을 다녀야 된다는 걱정은 하지 않는다. 두 아들이 생활할 미래는 굶어 죽지 않는 사회다. 생계와 남에게 자랑하기 위해서 직업을 얻는 시대가 아니다. 자기가 성장한 만큼 행복을 얻는 사회, 그야말로 자아실현을 위해 직업을 얻는 시대일 것이다. 그런 시대를 살 아들에게 현재의 인습으로 걱정하지 않는다.
3. 지지하지 않는 말은 관계를 단절한다.
다른 사람이 나에게 말을 할 때에는 들어달라는 애원이다. 시시비비를 가리자고 어설픈 똑똑함으로 반론을 제기하면 그 사람과의 관계는 단절된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기와 반대되는 성향을 싫어한다. 유유상종이다. 의미 없는 일상의 대화는 서로 들어주고 지지하면 되지 토론하려 들면 험담의 대상이 된다. 물론 그 험담이 가끔은 삶을 풍요롭게 할 때도 있지만 그 풍요로움에서 당신은 제외되어 있을 것이다.
4. 공부의 기본은 암기다.
기초학력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기초학력이 없으면 고차 학력은 있을 수 없고 마무리 창의적인 사고에 대한 학습을 해도 부질없다. 기초 지식을 습득하는 방법은 암기이다. 암기를 배격하면 기초학력은 극복되지 않는다. 예술활동, 자기 주도적 학습, 배움의 공동체, 프로젝트 학습, 마을 학교, 온갖 체험학습에서 암기에 의한 기초 지식이 부족하면 순간적인 재미와 즐거움, 쾌락에만 머문다. 암기를 배격한 온갖 공부 방법을 신봉하는 것은 배움과 성장에 대한 배반이다.
5. 입시제도가 바뀌어도 당신의 자녀는 지금보다 더 잘 되지 않는다.
수시와 정시를 가지고 논란이 많다. 각자의 생각으로 아주 강한 논리를 펴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당신의 자녀가 어떤 길을 가고 싶은 지 스스로 정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어떤 이는 초등학교, 어떤 이는 중학교, 어떤 이는 대학 가서 정해도 늦지 않다고 주장한다. 물론 그럴 것이다. 삶의 방식은 정답이 없어서 상황에 맞게 행복을 추구하면 된다. 하지만 일부러 시기를 늦출 필요는 없다. 두 아들을 키우면서 얻은 결론은 진로를 정하는 시기는 중학교 2학년이 가장 적절한 것 같았다. 이 시기에 본인이 원하는 진로가 원만하게 정해지면 그다음부터는 자기 인생 스스로 설계한다. 부모는 참고 존중하면 된다.
6. 의외로 평범한 비판의식도 없다.
배움의 공동체를 강의하는 어느 교사가 악기 명인은 있는데 수업 명인은 왜 없느냐며 수강생을 나무란다. 많은 이들이 주억거린다. 어떻게 기능과 인간을 움직이는 사회과학인 교육을 비교할 수 있는가? 정해져 있는 방법과 시시각각 변하는 인간을 움직이는, 그것도 마음을 움직여야 하는 수업을 비교할 수 있는가? 수업의 명인이 있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가? 물론 강사는 배움의 공동체가 최고의 학습법이라 자부하고 싶어서 그런 말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마음 자체가 수업을 기능 숙달로 잘못 인식하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의외로 조금이라도 영향력이 있는 사람의 소신을 너무 쉽게 수용하는 경향이 있다. 심지어 자신이 제일 잘 알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도 권위 앞에 쉽게 무너진다. 우리 교사가 유독 심하다. 가르치는 전문가라고 자부하면서 정작 주장해야 될 자리에서는 너무 쉽게 고개를 끄덕인다.
내 의사를 표명한 것뿐인데 너무 쉽게 따르고, 심지어 죄송하다는 말까지 심심찮게 하는 경우로 교감이 되었음을 실감하고 있다.
학교와 교육을 바꾸고 싶다면 평범한 비판의식을 기르고 품위 있게 표현하자.
지금까지 소소하게 실천하며 얻은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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