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관념적인 민주적인 학교문화
민주적인 학교문화는 학생의 성장과 발달을 위해 현명한 선택을 하는 지혜로운 학교 의사결정 문화다. 그러기 위해서는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학교 구성원들의 지식, 지혜, 성장이 동반되어야 하고 이에 따른 차이를 존중해야 한다. 의사결정은 자유와 평등에 대한 바른 인식이 동반되어야 한다. 자유는 개인과 특정 무리들의 이익 추구를 위한 자유방임과 구별되어야 하고 자유에 뒤따르는 책임에 대한 의무감이 불편하게 작용해야 한다. 그리고 정상적인 사상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침해에 대해서는 직위나 직급에 관계없이 단호한 강단이 필요하다. 하고 싶은 말을 거리낌 없이 품위 있게 표현하는 공부와 실천력을 겸비하기 위해 늘 노력해야 한다. 표현하지 않는 의사, 반영될 수 없는 시공간에서의 푸념은 표현한 자유가 아니다. 만약 그런 것들이 의사결정에 작용한다면 민주적인 학교문화 아니다.
평등은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기회와 환경이 평등해야 한다. 표현 내용은 지식, 지혜, 경험, 배움에 의해 차이가 날 수 있다. 하지만 그 차이를 비아냥이나 모르는 소리로 치부하여 말한 이의 자존감에 상처를 주는 것은 표현의 평등에 어긋난다. 차이를 존중하며 품위 있게 표현하는 그 어떤 표현 내용에 대해서도 그 가치를 존중해야 한다. 그리고 존중받은 가치에 의한 자존감이 민주주의에 대한 배움으로 이어진다.
평등은 현명한 결정 도구다. 충분한 토의와 토론 없이 제한된 시간을 무기로 개인이나 특정한 무리들의 이익을 위해 다수결을 선호하는 것은 평등이 아니다. 평등의 전제는 존중이다. 토의와 토론에서 지위나 직급에 관계없이 지식, 지혜, 배움의 정도에 의한 차이를 존중하며 원 없이 표현한 내용을 현명하게 결정하는 방식이 평등이다.
학교는 관리자의 표현과 결정권이 절대적이니 무조건 교사들이 결정해야 된다는 논리는 관념적인 학교 민주주의다.
편의와 편리 추구가 아닌 학생들의 성장과 발달을 위한 문화가 학교 민주주의다.
민주적인 학교를 위한 냉정한 성찰이 필요한 시기다.
2. 어설픈 가르침
지식 중심, 역량 중심 교육에 대한 이견이 있을 수 있다. 또는 이론적 정립이 없는 교사도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어떤 방식이든 학생들을 제대로 가르치고 있느냐의 문제다.
주입식도 학생들이 제대로 배우고 성장할 수 있다면 존중되어야 한다. 프로젝트 수업으로 학생들이 제대로 배우고 성장할 수 있다면 존중되어야 한다. 하지만 주입식이든 프로젝트 수업이든 제대로 하지 않아서 학생들의 성장과 배움에 문제가 생겼다면 제대로 안 것으로 제대로 실천하고 있는가에 대한 성찰이 먼저 필요하다.
프로젝트 수업에 대한 제대로 된 지식도 없어서 무늬만 프로젝트인 수업을 하면서, 주입식 교육에 대한 제대로 된 인식과 실천이 아닌 오염된 주입식에 기대 교사 편의 수업을 하면서 지식중심, 역량중심 교육에 대해 논쟁하는 것은 자기 가치를 인정받으려는 고집일 뿐이다.
혁신교육으로 학생들의 학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과 미래역량이 길러지고 있다는 무리들이 있다. 그리고 논쟁이 치열하다. 그런데 치열한 논쟁 속에는 어떤 방법으로 제대로 하고 있으니 걱정 말라는 것이 아니라 말꼬리 잡기와 건전한 비판을 비난으로 받아들이거나 말 바꾸기에 힘을 쏟는다. 비판을 수용하면 자기 논리를 더 강화하는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아는 지성인들 조차도 학생들의 성장과 발달보다 진영논리에 의한 편 가르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제대로 된 주입식 교육에도 학생들의 참여가 보장될 수 있고 학생중심의 교육에도 학생들의 지식의 강화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주입식, 학생 중심 어느 교육을 선호하든 제대로만 하면 미래를 대비할 수 있다.
제대로 가르치지 않으면서 자기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상대방을 향해 틀렸으니 굴복하라는 태도는 파시즘적 사고다. 파시즘적 사고에 의한 교육은 미래교육이 될 수 없다.
과학적으로 근거 있는 확고한 교육방법이면 제대로 실천해야 한다.
제대로된 실천으로 학생들의 배움과 성장이 이루어진다.
제대로 가르치고 있는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 시기다.
3. 교류와 비교
계몽으로 변화를 이끄는 시대는 지나갔다. 그런데 학교는 더 강화되고 있다. 특정한 무리를 지지하는 교육감이 선출되면 특정한 무리는 학교 전체를 특정한 무리의 관점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교육감을 동원하여 계몽의 일선으로 나선다. 우리는 선이고 나머지는 악이니 모든 것을 우리 식으로 하라는 행정이 난무한다. 그래서 선한 영향력을 끼치던 교육활동이나 교육행사가 강제적인 종말을 고한다.
수업을 바라보는 여러 관점이 있다. 모두 학생들의 성장과 발달을 도모하기 위한 관점이다. 이런 다양한 관점이 상호 교류를 통한 인정과 비판으로 성장해야 되는데 교류의 장이 말살되고 각자의 관점만을 공유하기 위한 단절된 마당, 나의 것이 우수하니 나의 것을 배우려면 나의 마당에 동참하라는 폐쇄적인 공유마당이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그 마당에 가보면 그것을 추종하는 무리들만의 부끄러운 줄 모르는 자화자찬만이 난무한다.
성장하려면 비교를 두려워하면 안 된다. 내부 비교보다 외부 비교를 더 두려워하면 안 된다. 수업연구교사제도를 비롯한 교사들의 연구제도를 무조건 폐지하는 것은 비교를 막는 것이다. 2020학년도 교육을 설명하는 공간에서 2019학년도 수업연구교사제가 이룩한 다양한 성과를 자랑하면서 2020학년도에는 폐지된다고 했다. 얼마나 비논리적인 상황인가? 폐지하면 염두에 두고 있는 특정한 수업 나눔 활동이 활성화될 것 같은가? 절대 아니다. 그들만의 부끄러운 잔치가 될 가능성이 더 커졌다. 왜냐하면 비교 대상이 사라져 한층 더 그들의 입지가 굳건해질 뿐 수업연구교사의 선한 역할은 대체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폐지될 것은 폐지되어야 하지만 어느 한쪽을 강화시키기 위해서 선한 활동을 폐지하는 정책은 중단되어야 한다. 오히려 지금은 다양한 관점이 교류되어 비교로 성장할 수 있는 정책을 개발해야 한다.
다양화, 다변화, 복잡화되어 가는 학교의 바른 성장은 폐쇄된 소통과 나눔이 아니라 열린 교류와 비교의 장에서 시작된다.
지금 우리가 성찰해야 되는 부분이다.
#교육언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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