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언설

실수와 용서

멋지다! 김샘! 2020. 3. 16. 14:19

일 안 해도 월급 받는 집단과 일 안 하면 월급 받을 수 없는 두 집단이 학교에 있다는 글을 남긴 분을 우연히 1980년 사회구성체 논란의 글을 통해서 접하게 되었다.
그분이 교육감이 되었다.
최근에 위와 같은 글을 남겼다.
교사들의 들끓었고 이런 교사들을 폄훼하는 글들이 난무했다.
그분은 의도와 다른 표현의 실수였다고 사과했다.
그분을 지지하는 그룹은 실수를 사과했으니 역효과가 우려된다며 자제를 요청하고 있다.

혜안은 없지만 과거의 행적을 통해서 현재의 행보를 추측한다.
현재의 행보가 과거의 행적보다 관용과 이해의 폭이 넓으면 성장하는 인간으로 판단한다.
그런 측면에서 최근 주인공은 사회구성체 논란에 그대로 머물러 있다는 생각이다.
의도와 다르게 표현되었다고 사과했지만 학교를 바로 보는 시각이 과거의 행적에 머물러 있다는 생각이다.
교육감이 될 자격이 있느냐 없느냐를 논증하자는 것이 아니다.
교육감이 되었으면 학교를 어느 한쪽의 시력으로만 보지 말아야 한다.
교육감이 되기 전에 양 쪽 눈의 시력 차이가 있었다면 교육감이 된 후에는 학교를 제대로 진단하기 위해 시력 차이를 교정하는 작업이 이루어졌어야 했다.

지지자들은 대변자로 그분을 선택했다.
그분이 취임하면 당장 우리의 뜻에 어긋나는 정책을 폐지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 약속이 지켜지지 않고 이런저런 상황이 핑계가 되었다.
지지를 포기하겠다고 압박한다.
공개적인 압박으로 다른 그룹의 부흥을 제공하지 않겠다며 사적 그룹을 통해서 밀도 있는 압박을 가하는 것이 과거와 다른 점이다.
특정 그룹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변화를 통해 학습된 우리들의 정서다.

지지한 그룹을 기반으로 묶어두기 위해서는 그들의 요구를 수용해야 한다.
지지한 그룹의 요구가 그분의 역량 한계를 벗어나고 사회 정서가 그 요구와 부합되지 않을 때 후자는 요구를 유보하기 위해 지지자가 직접 대항하기 힘든 상대를 교정되지 않은 시력으로 쏘아붙인다.
지지한 그룹은 이런 행위가 지속될 때마다 그가 우리하며 정제되지 않은 박수를 보낸다.
그 박수로 그의 시력은 점점 교정 시기를 잃어간다.

지지하는 그룹은 그분을 통해서만 학교를 변화시키려 한다.
그분은 지지하는 그룹의 지지만으로 학교를 나름대로 변화시키는데 한계를 느낀다.
그분은 지지하는 그룹의 요구가 얼토당토 아닌 한 경우에도 그나마 있는 기반을 잃는 것이 두려워 솔직한 충고보다 달래기에 급급하다.
이런 관계가 지속될수록 역관계에 있는 그룹의 세력은 확대된다.

역관계 그룹의 세력이 예사롭지 못함이 인지되고 그분의 정치적인 야먕이 싹이 틀 때 지지의 파이를 키우기 위한 성급한 마음으로 은폐한 과거의 행적이 바탕이 된 정치적 야망이 은연중에 드러난다.
드러난 표현이 현재의 행보를 지지한 그룹의 소원과 부합되지 않을 때 사적인 압박이 노골적으로 공개된다.
그분은 실수라고 얼버무리고 지지자는 대변자를 잃는 것이 두려워서 용서를 택한다.

학교가 그렇더라.
내 생각이 아무리 좋아도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더라.
내 좋은 생각을 왜 따르지 않느냐고 수년을 원망하며 살았다.
그런 원망이 쌓일수록 나만 학교에서 멀어지더라.
내 좋은 뜻과 그분들의 좋은 뜻이 섞여야 그나마 한걸음 나아갈 수 있더라.
그분들의 좋은 뜻에 내 뜻을 얹어 놓는 지혜가 더 필요하더라.
얹기 위해서 많은 것을 내려두고 버려야 하더라.
내려놓고 버린 것에 대한 이해보다 푸대접과 무시로 돌아올 때는 억울해서 잠도 오지 않더라.
요즘도 가끔.
학교가 이러한데 학교 밖은 더 그렇겠지.


지지자와 그분의 행보가 실수와 용서를 반복하여 앞마당을 황폐화하는 것보다 희생과 겸손, 수용과 아량으로 울타리를 허물고 텃마당도 넓힐 때 그분의 정치 야망과 지지자들의 소원이 앞당겨지고 오래가지 않을까?
늦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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