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감 일기(2018~)

2020년 9월 11일

멋지다! 김샘! 2020. 9. 11. 17:30

아무것도 하기 싫은 금요일이다.
날씨마저 회색의 무거운 공기 사이로 이슬비를 뿌린다.
이전 저런 생각으로 묵혀 둔 글을 단호하게 정리한다.
나의 주장을 공유할 생각으로, 어쩌면 내가 옳으니 나를 따르라는 욕심으로 SNS를 많이 이용했다.
소소한 일상부터 무거운 주제와 현실에서 하지 못하는 험담까지, '좋아요'와 원색적이고 극단적인 댓글에 일희일비했다.
세상과 사람에 대한 공부가 깊어질수록 SNS를 줄여야 되겠다는 다짐을 했다.
현재는 의무적으로 가입되어 있는 BAND, 카카오톡의 단톡 방, 페이스북의 교감 일기 그룹으로 제한하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어떤 글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 글에 대한 비판적인 사고 없이, 비판적인 사고를 위한 사전 배움 없이 배우려는 의지도 없이 무리의 정체성으로  떼거리로 달려들어 굴복시키는 형태에서 자유롭지가 않았다.
그 무리의 마음에 들기 위해 그 무리의 수준으로 세상을 보는 눈을 맞추는 불편함도 있었다. 
다짐한다.
완전무결한 내가 아니다.
주장을 하려면 최소한 그 주장의 근거는 보편적이고 논리적이며 과학적이고 객관화된 정보여야 한다.
대중매체의 한 쪼가리를 근거로 마치 그 쪼가리가 나의 주장인 것처럼 윤색하고, 그 주장에 반론을 제기하면 그 대중매체를 언급하며 나의 잘못이 아닌 것처럼 비겁하게 물러나서는 배움이 없는 나를 위안하는 삶을 그만둔다.
주장하려면 최소한 주장하는 내용에 대한 정확한 정보, 교육제도인 경우는 그 제도의 취지와 그 취지에 맞게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지에 대한 광범위한 정보 수집이 선행되어야 하는데, 편협된 삶에 의지한 경험이 최고의 가치라고 착각하는 삶도 싫다.
이런 편협된 주장을 본인의 정치적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선출직 공무원들의 낮은 수준을 탓하는 것도 지쳤다.
똑같은 시대적 울타리 안에 살고 있다.
그 안에서 아웅다웅하는 삶이 어찌 나만 울타리 밖의 삶을 산다고 주장할 수 있겠는가?
진보적인 삶을 개척하기 위해 울타리를 확장하려는 의지를 주장하는 삶과 그 울타리를 밀쳐내는 행동적인 삶은 질적으로 다르다.
의지만을 주장하다 의지를 실천해야 되는 지위를 얻으면 의지의 목적을 급하게 달성하려는 욕심으로 정의에 어긋나는 행동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뻔뻔한 삶들과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를 실천한다.

조합원 수가 얼마 되지 않는 교사노조의 단체교섭 요구안에 대한 의견수렴 안내 공문이 왔다.
기대를 안고 요구안을 천천히 살펴보니 웃음만 난다.
교사는 선천적으로 완전무결한 존재로 온갖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워야 되며 법령을 무시하고 온갖 복지를 누려야 되는 선민의식으로 가득 차 있다.
요구안의 형식은 갖추었으나 교사의 문장이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조잡하고 교장에 대한 악의로 가득 차 있다.
학교 구성원이 모두 교사의 역할을 해야 된다는 자기도취의 수준이다.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문장이 아닌 감정에 복받친 내용이고 문장이다.
도교육청과의 교섭 결과가 정말 궁금하다.
역사는 진보를 향해 가야 할 길을 도약 없이 꼬불꼬불한 길을 기어이 간다고 한다.
그 길 위에서 한 무리를 이끄는 이가 인간을 위한 진보를 재촉하는지, 허무한 감성의 언어로 뒤처지는 무리를 현혹하며 자신의 입지만을 굳히지 않는지 살펴볼 일이다.  
교총에서 공식적인 입장이 나올 듯하다.
제발 같은 수준의 감정을 드러내지 말고 성숙하고 품위 있는 절제된 언어로 나무라기 바란다.
이런 수준의 교섭안이 어떻게 타결될지 정말 궁금하다.
도교육청의 수준을 판단할 수 있는 좋은 본보기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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