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하여 일기를 마무리하고, 꼬르륵거리는 배를 약간 채우고, 아내와 진양호공원의 동물원 뒷길로 운동이 목적인 산책을 갔다. 사람이 덜 다니는 논길과 둑길을 지나 진양호공원 동물원의 뒷길을 막 들어서서 가로등의 후광으로 낯보다 더 예쁜 검붉은 핏빛의 단풍에 시선을 주고 있는데, 갑자기 아내의 뻣뻣하게 굳은 팔이 내 겨드랑이 아래를 파고들었다. 가로등 뒤의 새까만 산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피식 웃으며 "산새가 우리 기척에 놀랐겠지?"
"꿀꿀 꾸르르 꿀!"
"내 뒤로 와! 나무 뒤로 숨어!" 멧돼지가 나타난 것이다.
몸을 다 감추지 못하는 벚나무 뒤에서 멧돼지의 행방을 살폈으나 어둠만이 보일뿐 낌새를 차릴 수 없었다. 벚나무 앞으로 나설 엄두가 나지 않아서, 몸 뒤의 작은 동백이 듬성등성한 울타리 너머의 비탈진 길로 간신히 돌아 나오는데, 멧돼지가 연방 동백을 뚫고 비탈길을 덮칠 것 같은 불안을 지울 수가 없었다.
혼비백산(魂飛魄散), 살면서 실감하기는 처음이었다.
밤새 코로나 19 확진자가 확 늘었다. 토요일에 예정되어 있었던 경남교총 워크숍을 지난주에 연기하길 잘했고, 금요일에 예정되어 있던 교원 인사 및 평정업무 프로그램 연수도 온라인으로 전환되었고, 어제 갔어야 할 출장도 사정을 이야기하고 가지 않았다.
흔히 말하는 지역 토박이라 연말 모임이 꽤 있는데 모두 불참할 것이다. 아마 집행부에서 미리 취소할 것 같다. 벌써 한 군데서 취소한다는 문자를 보냈다.
코로나 19로 가장 대박 난 사업장 중의 하나가 국내 골프장이다. 국외 골프 여행이 불가능하고, 상대적으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원만한 국내 골프장으로 몰려서 웬만한 골퍼는 아예 부킹을 할 수 없다. 그리고 코로나 19 감염을 우려하여 클럽하우스의 락커룸이나 사우나를 들리지 않고 라운딩만 하는 경우가 잦다. 문제는 이들이 골프장의 방문 전과 후에 인근 식당을 이용하는 경우인데, 만약 이들 중에 확진자가 있으면 골프장 주변의 지역민들에게 악영향을 미친다. 우리 학교 바로 인근의 골프장에 확진자 두 명이 다녀갔다. 식당이나 대중 시설을 거치지 않은 모양이어서 다행이지만 늘 걱정이다.
학생들과 학부모님들에게 골퍼들과 관광객이 많이 이용하는 식당과 대중 시설을 자제하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지만 늘 불안하다.
골퍼들에게 부탁한다. 라운딩만 하고 주변의 식당이나 대중 시설은 들리지 말고 그냥 가시라. 요즘 시대에 어울리는 골퍼들의 매너다.
소소한 나의 행복을 위해 학교 주변에서 꼭 해보고 싶은 것이 있어서 조퇴했다.
'교감 일기(2018~)'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0년 11월 27일 (0) | 2020.11.27 |
---|---|
2020년 11월 26일 (0) | 2020.11.26 |
2020년 11월 24일 (0) | 2020.11.24 |
2020년 11월 23일 (0) | 2020.11.23 |
2020년 11월 20일 (0) | 2020.11.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