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주 금요일이 개학일이지만 나에겐 사실상 오늘이 마지막 방학 일이다.
출근하여 점심을 먹기 전에 오늘 마무리되는 무한상상실과 학교를 한 바퀴 둘러보는데 트램펄린 장 옆의 색바랜 사자상 받침돌에 새까만 고양이 한 마리가 사자 인양 누워있었다. 네가 사자인 줄 아느냐고 말을 걸었더니 눈길조차 주지 않고 갈 길이나 가라 했다.
우리 지역 문화 재단에서 다른 지역에 거주하는 교직원이 학생 인솔하여 공연을 관람하려면 먼저 코로나19 검사를 하라고 했단다. 공연 주체 학교 담당자가 그럴 수는 없다고 하니 PCR 검사라도 받으라고 했단다. 교직원은 곧 2차 백신 접종이 완료되고, 직업의 특성상 다른 직종보다 방역을 철저히 하며 조금이라도 코로나19와 비슷한 증상이 있으면 우선 검사를 하고 자가 격리를 하는데, 더군다나 다른 지역 거주자에게만 취해지는 부당한 타자화가 정말 못마땅하여 애초에는 공연을 관람하려 했으나 나는 빠지기로 했다. 지방이 인구 소멸에서 살아남으로면 이웃과 합쳐야 한다. 코로나19의 대유행으로 할 수 없이 물리적인 이동 멈춤을 하고 있지만, 세상을 통찰하지 못하는 사회 지도층의 사소한 감정으로 이웃과의 사회적, 문화적인 감정의 골을 패게 해선 안 된다. 그것이 아니라면 우리 시의 모든 출입로에 검문소를 설치하여 우리 지역을 방문하는 모든 이에게 강제적으로 코로나 검사를 받게 하든지. 쪽팔리게.
타자화에 의한 자발적인 고립은 사멸을 재촉하는 어리석은 짓이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코로나19 대유행 시기에 방역수칙을 준수하며 여행하는 것은 자유다. 하지만 교직원이 자랑하는 사진을 SNS에서 공유하지 말자. SNS에 사진을 올린 이후는 그 사진을 통제할 수 없다.
개인적으로 사회 변혁을 위한 시민운동을 하는 사람이 남이 나에게 피해 끼치는 것은 절대 안 되고 나의 행동은 남에게 피해 끼치지 않으니 된다는 자기중심적인 유아기적 논리를 볼 때면 참 밉다. 신민이 아닌 시민이 그런 논리의 사람을 좋아할 리가 없다.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품위 있는 한 정치인을 좋아한다. 막말을 정치적 용어라 우기지 않고, 막말에는 논리로 차분하게 설명과 주장하며, 얼토당토않은 억측에는 대응하지 않고, 정책으로 대응하려는 전략이 좋다. 지금까지의 우리나라 정치판에서는 이런 품위가 통하지 않으니 뒤늦게 네거티브에 뛰어들어서 지지층의 결집과 확장을 꾀하려 한다. 어느 맛 칼럼니스트에 대한 친일 프레임은 그런 네거티브의 절정이었다. 영향력이 있는 여당의 대통령 경선 후보가 친일 프레임을 씌우는데 대응하지 않으면 정말 그렇게 믿는 국민이 많아서 큰일 난다. 고민 없이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게 맞다. 하지만 그 후보 진영 모두를 동질화해서 험한 발언을 쏟은 것은, 그를 내정한 후보의 과거 행적과 동질감을 부여하여 그를 잘 모르는 이들에게 그답지 않은 프레임을 씌울 염려가 있었다. 다행히 심각성을 인지한 정치 원로와 당에서 중재를 잘하여 그나마 잘 마무리되는 듯하다.
두 가지를 느꼈다. 인권을 내세워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 주장하는 그들의 내면에는 여전히 맛 칼럼니스트 정도는 주요한 정부 기관의 수장이 되면 안 되었고, 미래를 운운하는 그들은 여전히 현재의 기준으로 과거를 평가하고 있다.
계층 이동의 사다리를 힘차게 주장하지만, 여전히 직업을 등급화하여 평가하는 그들의 인식이 은연중에 확실하게 드러났다. 정치할 수 있는 교원이 있을 수 있고, 공공기관의 사장이 될 수 있는 노동자가 있을 수 있고, 관광공사 사장할 수 있는 맛 칼럼니스트가 있을 수 있다. 그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의 판단 기준은 직업과 직종이 아니라 그 사람의 자격과 소양이다.
과거의 행적이 의도적이고 악의적이었다면 현재와 미래에도 용서받을 수 없다. 하지만 성장하는 과정의 치열한 삶에서 일어난 결과를 현재의 기준으로 평가하여 부적절하다는 것은, 경험과 공부로 지식과 지혜를 쌓는 사람의 성장을 부정하는 행위다. 이런 논리면 자의식이 전혀 없는 미분화된 동물만이 정치인이 될 수 있다. 호모 사피엔스는 어림없다.
내가 느낀 이 두 가지가 반드시 척결해야 할 우리 정치의 구태다.
우리 삶의 질을 좌우하는 통일, 교육, 외교, 안보, 경제, 의료, 복지, 문화 예술 등의 정책이 토론의 주요 의제가 되고, 이런 토론이 다소 무료하더라도 내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경청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정치의식을 많이 기대한다.
네 편 내 편을 떠나 나의 정치 수준으로 한 표를 행사하는 정치에 참여하기 위해 출근한 교직원들과 짬뽕을 나눈 후에 오늘 일기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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