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라 그런지 마음이 많이 가라앉는다.
어제는 정책심의로 출장이었다. 출근하여 출장지로 가는 것이 비효율적이라서 종일 출장을 신청했었다. 덕분에 새벽에 일어나 여유 있게 책도 좀 보고, 아내가 출근한 후에 집안 대청소도 하고, 혈압약도 타고.
정책보고서를 사전에 업무 메일로 받아서 숙독하며 검토했는데 현장의 상황을 양적 연구와 질적 연구로 진솔하게 드러낸 훌륭한 보고서였다. 연구자에게 그동안 노고를 진심으로 위로했다.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주저 없이 이야기 나누는 자리를 좋아한다. 그런 자리가 되어서 정말 좋았다.
한국교육개발원에서 기초학력 미달자와 기초학력 이상자의 종단연구 결과를 봤다. 커갈수록 모든 면에서 기초학력 미달자의 삶의 질이 떨어졌다. 딱 한 가지 예외는 학력에 대한 스트레스는 기초학력 이상자가 컸다. 이는 당연한 현상으로 기초학력 미달자는 상위 학년과 학교로 올라갈수록 공부를 포기하게 되니 공부 스트레스가 덜하고 기초학력 이상은 학업을 계속하기 때문에 공부에 대한 기본 스트레스를 갖는 것이다. 다만 그 스트레스를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은 개인차가 있고, 스트레스를 관리할 수 역량을 기르도록 다방면으로 지원해야 한다.
기초학력 미달의 원인은 가정환경과 가정적인 요인이 가장 컸다. 따라서 현재의 기초학력 지원 대책과 학력 격차 해소 방안은 학생을 물리적 정서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가정환경의 변화 없이는 유의미한 효과는 없을 것이다. 흔히 하는 말로 국가 나서야 한다. 자녀를 물리적 정서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가정이 형성되도록 국가 차원의 복지 정책이 필요하다. 부모나 보호자 노릇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부모의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가정이 불안한 학생을 마을에서 키우겠다는 마을 학교 운동보다 마을을 이루는 각 가정의 삶이 나아지도록 하는 게 우선이다.
기초학력 미달이 미래의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는 연구는 결국 기초학력 강화가 미래 교육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자본주의자들의 주장과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을 수용한 온갖 종류의 에듀테크 교육사업이 미래 교육이라 떠들고 있지만, 이는 배움의 시간과 공간을 극복하려는 배움의 새로운 형태, 정보를 모으고 가공하여 공유하는 편리성, 효용성, 효율성의 제공일 뿐이지 이 자체가 학력이 아니다. 오용하면 지식이 없는 껍데기만 휘황찬란할 수 있다.
각시도교육청마다 정보화기기를 투입하여 기초학력을 높이고 학력 격차를 줄일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 내용을 살펴보면 기기를 던져준 게 전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가정이 학습을 지원하도록 변해야 하는데 현실적인 방법이 없지 않은가? 교사를 비롯한 일회성의 인력 지원도 그 한계가 분명하지 않은가? 어떤 이의 표현대로 가뭄으로 바닥이 쩍쩍 갈라진 논에 폭우가 쏟아지는 꼴이고, 언 발에 오줌부터 누는 꼴이다.
그럼 기초학력이 부족하고 학력 격차가 날이 갈수록 커지는데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것이냐는 비난에는 결코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주장이 아니라. 아무것이 안되도록 미리 살피라는 주장이고 사업이 끝난 후 효과도 검증하라는 것이다. 정보화기기의 보급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것으로 어떤 효과가 있는지가 중요하지 않은가.
거듭 주장하지만, 기초학력 미달 방지와 기본학력 정착과 강화가 미래 교육이다.
저녁에는 교감 첫 발령 학교의 일부 교사들과 우리 지역에서 모임이 있다. 코로나19 이전에는 내가 첫 발령지 근처로 가서 만났는데, 코로나19 이후 첫 만남인 오늘은 우리 지역으로 초대했다. 우리 지역의 실비 문화-술을 주문하면 다양한 음식이 안주로 제공되는 독특한 음식 문화인데 우리 지역의 안주가 다른 지역의 실비보다 휘황찬란하다.-를 맛보여야 하는데 밀집의 부담이 커서 칸막이가 있는 횟집을 설레는 마음으로 예약했다.
지금까지 첫 발령지의 교사들을 만나는 나를 친구들은 많이 부러워한다. 나도 나를 지금까지 만나주는 첫 발령지의 교사들이 정말 고맙다. 어제 쓰다만 일기를 마저 쓰고 약속 시간을 맞추기 위해 조금 늦게 퇴근한다.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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