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감 일기(2018~)

2022년 1월 3일

멋지다! 김샘! 2022. 1. 3. 18:00

삼 년 동안 겪고 있지만, 1월인데도 겨울방학을 하지 않은 학교가 생경하다.
2022학년도 신입생 취학 관련으로 교무부장이 고생이 많다. 시골인데도 외국에 거주하는 아이가 해마다 있어서 유예나 면제 처리를 해야 하는데 부모와의 연락이 매끄럽지 않아서 교무부장의 애를 태운다.

초등학교 교감인 나의 관점으로 2021학년도를 뒤돌아보고 정리한다. 오늘 일기에서는 나의 교육 신념과 교감으로서의 책무와 역할 간의 모순을 작은학교 살리기 정책사업으로 푼다.
우리 학교는 60인 이하 작은학교에 해당한다. 60인 이하이지만 향후 십여 년까지는 특수학급을 포함한 7학급을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입학생보다 졸업생이 많아서 학생 수는 감소한다. 작은학교 살리기 정책사업 방향은 교육과정, 마을 연계, 광역 학구 지정이었다. 교육과정과 마을 연계 교육사업은 이견이 없었지만, 광역 학구 지정은 관리자, 교사, 학부모마다 의견 차이가 있었다.
관리자는 향후 십여 년간은 7학급을 유지할 수 있지만, 그 이후는 학교 존립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특히 우리 학교는 준벽지학교여서 우리 학교의 존속 여부는 우리 학교 공동체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 교육지원청의 교사 인사 문제와 관련이 있어서 도 교육청이 광역 학구 지정 의지가 강할 때 지정되도록 해야 한다.
교사는 관리자의 그런 의도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 소인수 학급의 장점이 많은데 굳이 현재의 시점에 광역 학구로 지정할 필요는 없다.
학부모는 광역 학구의 학생들과 기존 학구의 학생들 간의 위화감, 특히 두 학구의 여러 격차에 의해 기존 학구 학생들의 자존감이 무너지거나 교육활동에서 은근히 배제되는 상황을 우려했다. 학부모들 간 융합의 어려움도 제기했다.

우선 작은학교 살리기라는 문장이 마음에 안 든다. 출퇴근할 때 ‘작은학교 살리기 추진’이 선명하게 찍힌 이웃 학교의 학생 통학버스를 볼 때마다 마음이 거북하다. 학교가 죽어가는 것도 아닌데, 국가적인 저출산으로 인하여 취학생이 줄어들고 있을 뿐인데, 마치 학교가 죽어가는 것처럼 명명하는 게 몹시 불편하다. 사실 이 문제는 교육청보다 지역 소멸을 우려하는 지자체가 먼저 신경 써야 한다. 그래서 학교보다 지역주민, 행정관청, 지역사회 단체가 발 벗고 나서야 한다. 그러나 지자체 내의 인구 이동은 지자체의 인구 변동과 관련이 없으므로 현재는 소극적이다. 향후 마을, 리, 면 단위로 소멸이 시작되면 지자체의 고심이 깊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늦었다고 봐야 한다. 십여 년 또는 수십여 년 이후에 광역 학구에서 오는 학생들로 학교가 유지되고 지역 인구가 소멸할 때, 빈집뿐인 곳에 학교만이 덩그러니 있을 때 그 작은학교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래서 나는 ‘작은학교 살리기’보다 ‘작은학교 고도화’ 정책을 희망한다. 현재의 작은 학교가 학생 수가 적어서 교육과정으로 불이익을 받거나 학생 수가 적고 상대적으로 학부모의 관심이 적다고 하여 교직원의 책무성 저하 우려를 차단하고, 학생 수가 적고 친환경적이고 지역사회 네트워크의 수월성, 선진 에듀테크를 활용하여 학교 교육과정을 고도화하여 다른 학교보다 질 높은 교육을 제공하자는 것이다. 현재 작은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의 만족도와 성장에 더 치중하자는 주장이다.
우리 학교는 작은 학교이면서 행복학교이고 승진 가산점이 있는 준벽지학교다. 좀 특별한 학교다. 승진에 관심이 있는 우리 교육지원청 교사들은 우리 학교 오랫동안 존속하기를 강력히 원한다. 도서 벽지가 없어진 상황에서 우리 학교마저 없어지면 사실상 우리 교육지원청 산하 초등학교 교사들은 우리 지역에서 근무하는 동안에는 승진할 수 없다. 그래서 현행 승진 제도의 당위성을 떠나 현직 교감-교장, 교육장, 광역 학구의 초등학교장도 같은 마음으로 광역 학구 지정을 추진했다. 광역 학구 지정에 따른 불화를 반기는 학교장이 있을 리가 없고, 통학버스 지원을 비롯한 예산 투입과 행정을 교육장이 반길 리가 없고, 자기 학구를 다른 학구와 공유하는 기존 광역 학구 학교장이 있을 리가 있겠는가.
지금의 시기를 놓쳐서 향후 교사 승진을 위해서 광역 학구 지정의 필요성을 주장하면 어느 누가 제대로 호응해 줄 것인가.
내가 현행 승진 제도의 불합리를 꾸준히 지적하고 있지만, 우리 학교의 준벽지학교 유지는 현직 교감이 갖는 합리성이다. 다만 나는 우리 학교 교사들이 작은 학교인 우리 학교의 교육과정을 고도화하여 우리 학교 학생들이 다른 학교 학생들보다 질 높은 교육을 받기를 강력히 원하고 실제로 요구한다. 교사들이 호응하여 교육자의 자질을 좀 더 쌓기를 바란다. 그래야만 내 신념과는 무관하게 준벽지학교의 승진 가산점이 의미가 있지 않겠는가. 준벽지학교에 와서 그냥 승진 가산점 받아 가는 그릇된 학교 문화는 만들고 싶지 않다.
하나의 예였지만 교육자인 개인의 신념과 직업인 교감의 행위 모순은 어쩔 수 없었다.
번민보다 현실의 합리성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모순을 어느 정도 탈피하려는 내 선택이었고 위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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