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사람들과 늘 같은 일상을 시작할 때
새로운 사람들에게 진부하거나 열정적인 기대보다 그저 그런 평범한 일상을 기대한다.
그저 그런 일상의 기대가 우연한 한 번의 허용으로 공동체의 평범한 일상이 깨지면
우연한 한 번이 반복될까 봐 의심한다.
우연한 한 번의 허용은 인정(人情)이었지만 의심은 인정의 빈틈을 노린 그 사람의 전부를 백안시한다.
첫 시작이 중요한 이유다.
예고 없는 노모(老母)의 잔소리는 이성을 끄집어낼 여유가 없어 짜증으로 응수하고
맥락 없이 툭 던지는 아내의 말이 엉뚱한 생각으로 가득 찼던 즐거운 마음을 깨뜨리면 볼멘소리로 응전하고
철없는 아이의 등쌀과 뒤치다꺼리는 심장의 따뜻한 액체의 피를 얼굴에서 급속하게 굳히는 고체의 마술로 응대한다.
하지만,
그 속에는 존경, 존중, 사랑이 늘 있다.
교실의 아이를 비아냥거리거나 폄훼하는 행실에는 그런 게 없다.
아이를 존경하고 존중하고 사랑하는, 사랑하려는 마음이 수업의 본바탕이다.
오물 보듯 돌아서거나, 소매 걷어 한바탕 시원하게 몰아세우지 않고 꼬드긴다.
얼토당토아니한 이들이 난입하여 난장을 만들어도 함께 웃으며 허리 굽혀 교문 밖으로 내보낸다.
단지,
교감이어서.
교감이어서.
1번을 찍으려니 교육정책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2번을 찍으려니 진보를 바라는 내 마음과 맞지 않았다.
3번을 찍으려니 팽팽한 대결에서 사표(死票)가 될 것 같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3번을 찍는 건데.
3번에게 많이 미안하다.
어제는 술도 내 마음을 달래주지 못할 것 같아서 잠이 올 때까지 말없이 책만 읽었다.
코로나19의 긴 터널의 끝쯤에 선 학교의 일상이 고단하다.
그냥 고이 가지 않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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