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저녁에 날리던 비가 새벽에 함박눈으로 무겁게 내리더니 동틀 무렵에는 다시 비로 날렸다.
처음과 끝에 흩날린 비가 야속은 하지만 우리 지역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습기 가득한 눈이다.
행정안전부에서, 지자체에서 재난 문자를 쉼 없이 보낸다.
쉼 없는 문자가 출근길의 안전을 보장하지 않을 터이다.
학교와 가까울수록 눈보다 비가 많다.
돌봄 아이들은 내심 큰 눈을 기대했을 텐데 실망한 눈망울이 선하다.
나는 돌봄 통학버스 안전한 운행에 문제가 없어서 내심 좋다.
주무관님이 물로 반죽한 눈을 가장자리로 밀어낸다.
나는 운동장을 가로지르는 철없는 질펀한 발자국을 낸다.
학교는 문제없다.
교장 선생님께 안전한 학교를 보고한다.
밤새 내린 눈이 승진과 전보로 들뜬 학교를 가라앉힌다.
어제저녁에,
교원 인사에 달관하려 무던한 척했건만 근거 없는 서운함이 막걸리 주변으로 친구 몇 명을 불러 모았다.
많이 서운해야 할 친구도, 전혀 서운할 것 없는 친구도 시무룩했다.
거기에 내 이름이 없어서 시무룩한 건 아닌데.
몇 명을 진심으로 축하했다.
내 걱정을 했다.
나는 뛰어난 교육자가 아니다.
교직생활은 알차게 보내고 싶다.
그 알찬 교직생활은 사람을 위한 학교를 짧은 단 한 번이라도 성사시키는 거다.
그 사람을 위한 학교를 성사시키기 위해 글을 쓴다.
그런 소중한 글을 얻으려 앞서는 승진을 바라지 않는다.
빠르게 느리게 쉼 없이 흐르는 물길에서 이탈만 하지 않으면, 역진의 물길이 덮쳐 뒤로만 밀쳐내지 않으면 거친 물길 속에서 평온하게 사람을 위한 학교를 쓰고 싶다.
걱정하는 그 마음에 흔들리지 않는 이유다.
양치를 하고 커피를 마셔도 수육에 얹었던 마늘 냄새가 힘들다.
어젯밤을 이실직고하며 멀찍이 떨어져라 했다.
술 욕심을 안주로 너무 달랬나.
문득, 아내가 출근하는 차 안에서 뜬금없이 한 말이 떠오른다.
눈은, 처음은 깨끗하고 눈부셔서 좋은데 시간이 지날수록 지저분해, 그래서 눈 같은 사람이 되어라는 말이 없는가 봐.
나에게 한 소린가?
마늘 냄새가 그렇게 심했나!
눈이 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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