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감 일기(2018~)

2023년 2월 19일

멋지다! 김샘! 2023. 2. 19. 22:53

김 교감이 인근 지역에서 교감과 교장을 하는 대학동기 밴드에 주말에 진양호물빛길을 걷자고 제안했었다. 오늘 그 몇 명이 걷는다. 진양호 공원 입구 식당에서 점심을 간단히 먹었다. 예전 같으면 술도 한잔 했을 텐데 이제는 너나없이 그런 만용은 부리지 않고 가끔 누가 '술 한잔 할래?'라고 하면 소스라치게 놀라 손을 휘젓는다.

"오늘은 운동 중에 학교 이야기는 하지 말자."
"평생 학교에만 있었는데 그게 될까?"
"일부러 할 필요 없고 억지로 참을 필요도 뭐 있어?"
"우리끼리 하고 끝낼 건데 강박 갖지 말고 하고 싶은 이야기 하자."
"참 희한하지? 선생은 학교 밖에서 학교 이야기 하는 걸 왜 금기 시 할까?"
"금기가 아니고 부끄러워하는 것 아니야?"
"뭐가 부끄러운데?"
"쪼잔하게 보인다고 그러대."
"그럼, 학교 대신 공장이라고 하면 안 쪼잔한가?"
"아이고 모르겠다."

다들 365계단을 터벅터벅 색색거리며 버겁게 올랐다. 진양호 전망대에서 보이는 지리산 천왕봉이 오래간만에 선명했다. 양마산 내리막길을 다 내려갈 때까지 다들 '아이고아이고 무릎이야!' 하는 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야, 우리도 이제 다 되었다."
"우리 나이가 겨우 몇인데 다 되었다는 소리를 함부로 해?"
"그럼 앓는 소리를 하지 말든지." 
"누가 했는데? 나는 안 했다."
"야! 내가 뒤에서 들었는데 전부 다 했다. 이참에 정기적으로 운동 좀 하자."
"지금 생각은 그렇게 하고 싶은데······"
"금요일에 쓸데없이 학교 선생들하고 술 먹지 말고, 토요일에 산행 마치고 막걸리 한잔 하는 걸로 하자."
"야이 마! 요새 선생들이 교감 교장을 술자리에 끼워주기나 해? 네 학교는 민주화가 덜 된 것 같은데, 그렇게 하다가 부장 할 선생 아무도 안 생긴다."
"내가 끼고 싶은 게 아니고 하도 같이 가자고 하니 가는 거지."
"그걸 곧이곧대로 믿어?"
"괜히 선생들하고 술 먹다가 실수라도 해봐라 큰 일 난다."
"친한 선생 하고는 먹을 수 있는 것 아니야?"
"네 일이니 네가 알아서 해라."

소나무 가지 사이에 반짝이는 진양호 윤슬을 옆에 끼고 걸었다. 호수 물과 맞닿은 쉼터에서 각자 준비해 온 간식을 꺼내는데 진액 천지다. 나이가 들긴 든 모양이다.

"엊그제 너희 교육지원청에서 회의가 있었다면서?"
"2월에 새 학기 준비한다고 바빠 죽겠는데 쓸데없이 사람 끌어모아서는 엉뚱한 소리만 해서 짜증만 났다."
"좀 긍정적으로 생각해라. 새 학년을 알차게 맞이하는 걸 도와주려 했겠지?"
"너는 교사가 알아야 할 것을 교감 불러놓고 주저리주저리 전달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 교감을 불렀으면 교감이 알아야 할 것과 챙겨야 할 것을 전달해야 하잖아? 토의나 토론을 하든지 안 그래?"
"아이고 참! 그게 하루이틀 일이가 그럴려니 하고 넘어가야지, 짜증내면 네 혈압만 올라간다."
"안 그래도 혈압약 먹은 지 좀 됐다."
"나도다."
"나도!"
"강 교감! 너희 교육지원청에서는 돌봄 전담사와 소통의 시간을 가졌다고 소문이 파다하던데?"
"파다할 소문이 아닌데? 뭔 소리를 하던가?"
"도 교육청에서 야심 차게 시작한 저녁 7시까지 돌봄을 참여 학생이 없으면 돌봄 전담사 근무 시간을 줄여도 되는데, 꼭 교감이 갑질하는 것처럼 이야기하데."
"그래서 교감들이 가만히 있었어?"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더니, 한 교감이 학교구성원 및 교육공동체와 협의하여 근무 시간을 변경할 수 있다고 길라잡이에 안내되어 있는 걸 가지고 꼬치꼬치 따졌는데 담당 주무관이 도 교육청에 알아보고 일괄적으로 안내하겠다고 하던데."
"꼬치꼬치 따질 것이 있나? 그대로 하면 되는 것 아니야? 다른 지역교육지원청에서는 많은 학교가 학교장 재량으로 근무 시간 조정해서 5시 정도에 마친다고 하던데."
"그 교감이 학교구성원과 교육공동체의 범위와 협의 방법을 물었는데, 담당 주무관이 얼버부리면서 협의는 학교운영위원회의 심의를 말한다고 하니, 그동안 학교운영위원회의 심의를 거치지 않고 근무 시간을 변경한 학교의 교감들이 그런 규정이 어디 있냐고 따지고, 하여튼 그랬어."
"이러나저러나 담당 주무관이 도 교육청 담당자에게 5시까지 근무 변경 방법을 문의하면 도 교육청 담당자가 어떻게 반응할까?"
"적이하게 알아서 하라고 하겠지 뭘 어쩌겠어."
"아니! 그게 아니고, 교육감이 반대를 무릅쓰고 야심 차게 시작한 도내 전 초등학교 저녁 7시 돌봄인데, 홍보는 또 얼마나 했냐? 그런데 돌봄 학생이 없다고 돌봄 전담사 근무 시간을 당기는 방법을 안내하겠느냐는 말이지? 정책 실패를 인정하는 거잖아?"
"그 사람들이 그런 걸 생각이나 하겠어? 컨설팅은 원래 목적을 효율적으로 달성하기 위해서 하는 건데 요즘은 특정 직종을 편리하게 하려거나 담당자가 인기를 얻으려는 게 목적인 것 같아."
"네 학교는 어떻게 할 건데?"
"담당 주무관이 안내해 주는 대로 하지 뭐! 학교가 뭔 힘이 있어서 별 수 있어?"
"나도 그렇게 하는 게 낫겠는데, 혹시 다음에 실태조사라도 하면 도 교육청 담당자가 그렇게 안내했다면 될 거잖아?"
"이번에 너희 교육지원청 담당 주무관이 돌봄 전담사 근무 시간 변경을 안내하면 다른 교육지원청에서 너나없이 그렇게 하겠는데."
"그래서 나는 도 교육청 담당자가 알아서 하라거나 원칙은 7시까지가 돌봄 시간과 근무 시간임을 강조할 것 같은데."
"막걸리 내기할래?"
"콜!"

강 교감은 담당 주무관이 돌봄, 방과후학교 업무를 위한 교육공무직이 배치되었지만 교사가 해도 된다는 말까지는 하지 않았다. 교사를 학생 옆에 더 오래 머물게 하겠다며 힘들게 편 정책인데, 담당자 그 사람이 문제인지 전체 인식의 문제인지. 벌써 그런 말을 너무나 쉽게 한다. 돌봄 전담사와 방과후학교 전담의 업무 능력이 떨어진다는 현장의 의견이 있으면 정기적인 연수로 업무 능력을 향상해야지. 그게 그들이 할 일인데.
'뭐 어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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