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에서 농기계 수리점 하며 조그맣게 농사짓는 친구가 있다.
고장난 농기계들이 널브러져 있는 수리점 창고의 바캉스 의자에서 마시는 믹서 커피가 구수하다.
오늘같이 비가 오는 날은 구수한 커피 사이로 스며오는 폐유 냄새와 함께 지난간 일들을, 고향 형편을 툭툭거리곤 했다.
비가 왔는지 안 왔는지 기억이 없는 올봄에 토요일에 아내와 그를 만나러 갔다.
"잘 지내?"
"응"
"농사철이 시작되어 바쁘겠네?"
"그렇지 뭐"
"올해는 자두, 살구, 복숭아, 배꽃이 한꺼번에 펴서 어떡해?"
"어떡하긴 뭘 어떡 어떡해, 그냥 보고 있는 거지 뭐, 한꺼 피니 보고 좋잖아?"
"아니, 벌이 없다면서, 가루받이 안 되는 과일 농사 망하잖아?"
"잘 찾아보면 한 마리씩 열심히 돌아다니며 자기 할 일 하고 있어!"
"그 몇 마리로 돼? 큰일이다."
"큰일은 무슨 큰일이라, 적게 달리면 비싸게 사 먹으면 되지!"
"과일이야 비싸게 사 먹으면 되지만 벌이 없으면······"
"쓸데없이 벌 걱정하지 말고 너 살 걱정이나 해라."
"참 태평이다."
"그럼 어떻게 할 건데?"
해거름녘에 진양호 공원을 한 바퀴 논다. 요즘은 여기저기 파헤치고 깎아내고 베서 묻으며 터를 다지고 길을 낸다. 기후 위기를 생각하면 바른 대처인지 알 길 없으나 , 그 길을 걸으며 생각을 정리하고, 새롭게 단장한 공원에서 뛰노는 아이들로 객지생활하는 두 아들에게 전화를 하곤 한다.
공원 입구를 내려오는데 이팝이 피었다. 달콤한 향이 내려와서 고개를 더 드니 등나무 꽃이 폭포를 이루고 있었다.
'저 장면을 시로 표현해 볼까.'
'달콤한 선녀의 살내음이 하얀 치맛자락에 연보라로 물들이며 흘러내린다.'
'향이나 더 즐기지, 쓸데없는 짓이다.'
'달콤한 이 향은 또 뭐야?'
아까시 꽃이 피었다. 피기 시작하는 게 아니라 많이 피었다. 이팝나무 꽃, 등나무꽃, 아까시 꽃이 한꺼번에 펴도 돼. 진한 향기에 윙윙거리는 벌은 없다. 친구 말대로 몇 마리는 열심히 꿀 따러 열심히 다니는지는 모른다.
기후 위기, 이제는 미래 세대의 재앙이 아니라, 지금 내게 닥쳐올 조짐이 보인다. 농담 삼아서 '내가 살 동안에는 별일 없겠지.' 했는데, '별일 있겠다.' 큰일 닥치겠다.
아침 뉴스를 듣고 짜증나서 피곤했다. 국민을 이제 말과 글 배우는 아이 취급하는 것도 한두 번도 아니고, 주어가 생략되었으면 주어는 당연히 말하는 사람이지? 전체 맥락과 내용을 보고 주어를 찾으라고? 아이 보채듯 철없이 졸라대는 데에 진절머리가 난다. 부끄럽다. 정말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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