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감 일기(2018~)

2023년 7월 17일

멋지다! 김샘! 2023. 7. 17. 23:03

  오늘은 제헌절이다.
  오늘이 헌법과는 너무 동떨어진 우리나라의 일상이니, 오늘이 제헌절이었다고 말해주는 이가 아무도 없다. 헌법을 수호할 국가에서도.

  술 마시고 글을 쓰고 선택을 하는 게 아니라고 더욱 sns에 글 남기지 말라고 두 아들에게 가훈으로 이야기했다. 나도 그 가훈을 지키려 애쓴다.
  그런데 오늘은 그 가훈에서 벗어난다.
  산업안전보건법 교감 연수를 받은 후 가볍게 땀 흘리고 두부김치로 막걸리 몇 잔 후 일기 쓴다.
호우경보가 내려진 경남 지역의 여러 시, 군 학교급을 망라한 교감을 대상인 연수였다. 호우경보가 해제되지 않은 오늘아침이어서 연수가 연기되거나 경남에서 자랑하는 비대면 화상연수로 산업안전보건 교감 연수가 이루어질 줄 알았다. 출발하기 전까지 다른 교감에게 전화해서 대면 연수의 변경 여부를 물었지만 변동이 없다고 했다.

  안전총괄과 주관 연수였다.
  주관 부서의 연수를 진행하는 이가 어제까지 연수 강행 여부를 고민하다가 밀양을 비롯한 동부 경남에 호우가 심하지 않아서 강행했다고 했다. 순간, 이 연수가 법령에 의해 의무로 하지 않으면 안 될 연수인 줄 알고 고속도로에서 목숨의 위협을 느끼며 폭우를 뚫고 온 나는 '이게 뭔 개소리인지!' 굳이 오늘 할 필요가 없었던 연수인데 공무원이라는 이유로 내가 목숨을 건 것에 대한 분노가 치밀었다. 안전총괄과 부서면 도 교육청의 전체 안전을 살펴야 할 부서인데 연수 장소가 안전해서 연수를 강행했다는 게 도대체 뭔 말인지. 이왕 왔으니, 그리고 하도 나를 삐딱이로 보니 질문과 불만을 차근차근 터뜨리지 않았다. 저들도 공무원이니 저들의 일을 하는구나로 이해했다.

  사무관의 연수가 이해되지 않았다.
  이 법은 우리가 아무리 불만을 갖더라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교감들은 정신 차리고 이 법의 절차를 지켜서 도 교육청이 과태료 무는 일이 없도록 하라. 지금까지 학교에서 이 법을 몰라서 2차까지 과태료를 내었으니 3차까지 가면 과태료를 더 내어야 하니 절차를 제대로 이행하라는 것이었다.
  산업안전보건법은 노동하는 노동자의 목숨을 지키는 법이다. 생계를 위해 일하다가 죽는 노동자가 생기면 안 된다는 법이다. 그런 법이 제대로 시행되기 위해서, 노동자의 안전과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서, 학교도 예외가 아니니 이런 점을 특별히 유념하여 노동자의 생명을 보호하라는 게 연수의 골자가 되어야 했다.
  학교가 신자유주의 금융자본가와 한편인데 쓸데없는 법이 생겨서 우리를 괴롭힌다고 호도하는 연수를 받고 있는 내가 참 한심했다.

  이 업무는 중대하다. 행정실 직원은 늘려주지 않으면서 이 중대한 일을 하라고 하니 교육행정공무원이 좋아할 리가 있나, 마치 법에 '보건' 낱말이 있으니 이건 보건교사 업무라며 억지 부린다. 도 교육청은 이 법이 제대로 정착하기 위해서 어떻게 지원할 것인지, 이 법으로 학교의 고통은 무엇이며 그걸 해소할 방법은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연수를 마련했어야 했다.
  제국주의가 식민지를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정치와 경제로 문명과 문화를 억지로 분리하여 갈등을 조장한 것과 뭐가 다른가.
  일한다가 다친 사람은 모두 피해자다. 국가의 보호를 받아야 하고 그런 위험을 알고도 국민을 그런 위험에 내민 사업주는 마땅한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런데 공무원인 우리가 일하다가 다치거나 목숨을 잃은 사람들을 지켜주기보다, 그런 사람들 때문이라며 내 직위와 직급을 영위하기 위해 그들을 탓하면 되겠나.

  행정 절차와 문서가 복잡했다. 간소화하고 쉽게 쉽게 작성할 수 있도록 법령 개선이 필요하다. 그럴 때까지 행정 절차와 문서 작성 요령과 같은 지침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누굴 괴롭히기 위한 법이 아니다. 학교 안에서 네일 내일 하면서 싸울 게 아니라, 그렇게 조장할 게 아니라, 노동하는 우리를 보호할 법이란 자각으로, 그런 보호를 받아야 할 우리가 이 법으로 우리와 같은 누군가를 겨누면 안 된다.

  사실 걱정이다.
  법을 세세하게 모르는 내가 제대로 해낼 수 있을까로,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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