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감 일기(2018~)

2023년 11월 29일

멋지다! 김샘! 2023. 11. 29. 13:10

  이 계절부터 교감은,
  가야만 하는 사람, 가고 싶어 하는 사람을 보내는 행정업무를 한다.
  전보와 승진에 필요한 가산점을 정리하여 제출한다.
  다면평가와 근무평정으로 알고 있는 업적평가를 한다.
  승진할 사람, 승진하려는 사람의 서류를 챙겨서 제출한다.
  내용을 일일이 확인하며 절차와 기한을 지켜야 한다.
  점 하나 틀려도 띄어쓰기 하나 달라도 안 된다는 작업이다.
  입력하는 내용은 같은데 해마다 양식과 형식과 입력 요령은 조금씩 달라져서 실수를 부른다.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에겐 반박할 수 없는 근거로 논박해야 한다.
  먼 교육청의 서류는 우리보다 간소하다는 데.

  이 계절을 무사히 보내면, 
  있는 사람과 오는 사람으로 조직을 짜서 걸맞은 역할을 맡겨야 하는데,
  누군가는 꼭 해야 할 일을 요즘은 아무도 안 하려고 한다.
  그런 일을 하지 않으려는 사람도 그런 일을 하는 사람 덕분에 학교생활이 수월한데,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을 존경은 못할망정 '바보'라며 비꼰다.

  교감이, 교장이 멀쩡한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사람들이 아닌데.
  갑자기 휴직하겠다고 복직하겠다고 하면 힘들 게 작업한 인사가 틀어져서 교육청에서 보낸 새 사람이나 기간제를 급히 채용하여 바로 세워야 한다.
  국가 행정이 창의적으로 다양한 요구를 하는 사용자 중심으로 바뀔수록 그것을 처리하는 학교의 교감은 죽을 맛으로 아찔한데,
  사용하는 사람은 급하고 중요해도,
  처리하는 사람은 그 일이 흔한 일이 아니면 법령과 지침을 살펴야 하고 교육청의 도움을 받아야 하며,
  행정은 정당한 절차라는 게 있어서 꼭 지켜야 뒤탈이 없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사용하는 사람은 죽을 맛인 사람에게 얼른 해주지 않는다고 야박하게 보챈다.
  그렇게 또 우울한 봄은 시작된다.

  이 계절에 내 몸이 예전 같지 않다.
  비롯 얼굴은 세월의 골보다 여러 갈래로 깊게 패었으나,
  비롯 너른 이마 끝에 힘겹게 아슬아슬하게 뿌리박은 하얀 머리칼이 위태롭지만, 
  새로운 지식으로 충당하는 마음은 청춘이라 자부했고,
  옷으로 가린 몸뚱이는 탄탄하다고 자부했고,
  피부 속의 근육은 누구보다 질기다고 자부했다.
  청춘이라 자부했던 마음은 극단의 고집에 너무 쉽게 무너지고,
  탄탄했던 몸뚱이는 느낌마저 없었는데 여기저기 멍이 들고,
  질겼던 근육은 이 정도의 무게에도 아린다.

  해마다 반복되는 교감의 계절이 예사롭지 않았지만,
  올해는 더 무정해진 세월을 마주하기 부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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