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감을 한 이후 나에겐 12월 초, 점점 빨라져서 11월 말부터 다음 해 2월 말까지가 긴 터널이다. 젊었을 때 아무리 긴 터널을 운전하더라도 어지러움증이나 눈부심과 명암 차이에 의한 착시 현상이 없어서 운전대를 잡은 손바닥에 땀이 차지 않았듯이, 초임 교감 시절엔 겨울 긴 터널로 바빴지만 터널 끝이 남다르지 않았다. 그냥 일상의 한 날이어서 그 끝날을 고대하지 않았다. 지금은,
긴 터널 끝을 학수고대한다.
그 어느 터널보다 긴 터널을 벗어나려는데 내 의지와는 다르게 터널을 둘러싼 다양한 주변이 놓아주지 않는다. 오늘,
놓아주지 않는 한 부분인 학교통합지원센터에 전화해서 요청한 자료가 다 준비되지 않았다면 준비된 자료부터 보내달라고 했는데, 전화를 당겨 받은 주무관이,
담당 주문관이 연차를 내어서 그럴 수 없다고 했다.
며칠 전 자료를 요청할 때, 4세대 나이스 이후 학교통합지원센터에 지원 자료 요청이 바뀐 줄 모르고 이전 방식으로 요청했더니 다음 날 담당 주무관이 그렇게 요청하면 안 된다며 바뀐 방법을 알려줘서 그렇게 했다. 그때,
담당 주무관이 내가 요청한 자료 중 하나가 시간이 걸릴 것 같다며 바로 오늘 금요일이나 되어야 보내 줄 것 같다고해서, 바쁜 나는 좀 더 빨리 지원받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오늘까지 기다렸다가 전화를 한 것이다. 그런데,
담당자가 연차를 내었다고하니 나는 얼마나 황당한가?
전화를 당겨 받은 주무관이 참 친절했다. 다음 주에 출근해서 긴 터널에서 좀 늦게 벗어나면 될 일이니,
"참 친절하게 안내해 줘서 정말 고맙습니다. 다음 주 월요일 일찍 자료를 좀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마감을 해야 되어서요."라고 했더니,
담당 주무관에게 꼭 전해서 그렇게 해보겠다고 했다.
예전 같으면 쏘아붙여야 하는데, 예전의 삶이면 지금 삶이 모순인데 그렇다고 예전 삶이 악도 아니었는데, 지금은 그런 모순의 삶으로 예전의 삶을 바라본다. 예전 삶이 모순은 아니다, 지금 삶이 좀 인간을 위한 삶일 뿐.
모순된 삶이 또 있다. 모순인 줄은 아는 데 어느 게 정의인지 선뜻 결론을 지을 수 없다.
새 학기를 시작하는 2월 말 지금, 아내와 젊은이들은 잘 가지 않는 그런데 젊은이들이 옷을 파는 그 젊은이들이 주인이 아닌 것만은 확실한 아웃렛으로 저렴한 봄옷을 사러 간다. 올해도 그랬다.
재고품이나 이월품을 저렴하게 팔아야 하는 아웃렛이지만 옷들의 가슴에는 나에겐 큰돈이 매겨진 공장에서 찍어낸 값싼 캘리그래피로 선명하게 달려있다. 저렴한 내 옷을 사려면 그 앞을 지나가야해서 그 앞을 들어서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던 젊은이들이 뛰쳐나와 특별할인 기간이라면 들어오라고 한다. 나는,
'I'm just looking around, Thank you.'를 마음으로 말하며 얼른 벗어난다. 내가 왜 'Thank you'라고 해야하는지는 모르겠고.
저렴한 옷을 사면서, 이 옷은 환경이 깨끗한 나라가 잘살기 위해서 그곳의 자연처럼 순박한 사람들의 손이 터지고 갈라져서 몸이 암덩어리가 된, 청순한 자연의 물과 공기가 이 옷을 만드는 공장에서 흘러나온 번들거리며 진득한 초록과 검정의 액체로 썩은 대가 아닌가? 이걸 알면서 이 옷을 사는 나의 모순. 그렇다고,
비싼 옷을 사면 이런 모순에서 벗어날까? 글쎄,
지금 산 나와 아내의 옷 몇 벌이 헤어지면 의류 재활용 수거함에 넣겠다는 위안으로 나의 모순을 합리화한다. 실제로 재활용이 되는지 재활용 사업으로 보조금을 받는지 알 수 없지만.
사람을 공부하고 세상을 알아갈수록 나는 모순에만 빠진다. 결코 헤어날 수 없는 모순에. 그렇다고,
정당화될 수 없는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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