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감 일기(2018~)

2024년 3월 3월

멋지다! 김샘! 2024. 3. 3. 07:33

  어제저녁에 친구와 막걸리를 거나하게 마셨다. 올겨울의 황망한 일들을 얘기하지 않으려다 2차 카페에서 대충 얘기했다. 스트레스를 풀려는 의도가 아닌, 얘기한다고 풀릴 스트레스도 아니고 성찰할 가치도 없는 평생 겪지 않기를 바라는 일이어서 머리에서 끄집어내는 게 스트레스여서, 이야깃거리가 끊어지는 바람에 불쑥 튀어나왔다.

  3월 4일에 개학하고 입학식 한 기억이 없다. 2월에 끝내야 할 업무가 끝난 건 아니지만, 3월 1일이 금요일이어서 3일간 미국 출장 간다고 설날에 오지 못한 큰아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3월 4일을 봄의 첫날로 맞이하고 싶었다.
  집에 와서도 자기 일로 바쁜 큰아들이 측은하여 잠시 자는 잠이라도 실컷 자라며 아내는 새 학기를 조용히 준비하고 나는 책 읽고 글을 썼다. 우리 집은 늘 그랬다, 남들은 자식에게 뭘 많이 시켜라고 했지만 우리는 각자 하고 싶은 일을 꾸밈없이 했다. 자식들이 어릴 때는 놀아달라고 하면 원 없이 같이 놀았다. 자식들이 동네 골목을 뛰어다닐 때 말리지 않았다. 아마 우리 자식들이 동네 골목을 누빈 마지막 아이들일 게다. 지금은 일 년에 몇 번 집에 와도 함께 대화하는 게 언감생심이라 함께 밥 먹으며 얘기 나누려면 미리 시간을 조율해야 한다. 그제 저녁에 집 거실에서 고기 구워 먹으며 출장 간 일들을 물었더니 일이 아주 풀려서 내년쯤에는 기대했던 것보다 나은 조건으로 유학을 갈 것 같단다. 힘들면 언제든지 방향을 틀라고 그건 실패가 아니라고 했지만 큰아들은 자기 길에서 단 한 번도 벗어나지 않았다. 그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는 모르겠다.
  둘째 아들은 나름대로 참 재미있게 산다. 내가 살고 싶었던 삶, 현실을 부정하지 않은 현실을 이기려는 마음 없이 자기 능력껏 현실을 즐기듯 산다. 아내가 가끔 이런 둘째를 걱정하면 나도 덩달아 걱정이 엄습하여 전화를 해보지만 밥은 먹었는지 여자 친구와 헤어지지 않았는지 가끔 엄마에게 전화하라는 말만 남긴다.
  어제 점심에 큰아들을 돌려보내고, 친화회원이 되기 어려운 분의 연로한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교장 선생님, 행정실장과 조문하고 저녁에 친구 만나 긴 겨울을 떠나보내려고 막걸리 제법 걸치고 찬바람을 맞으며 두 아들에게 전화했다.
  어른이 다 된 두 아들은 술 한잔 걸친 나의 대화를 진지하게 받아줬다. 부모인 우리가 언제까지 울타리가 되어 줄 수 없으니 너희들끼리 연락 자주 해서 우애를 돈독히 하라고 했다. 형제간도 연락 자주 하지 않으면 남이 된다며.
  집에 와서 아내에게 두 아들과 통화한 내용을 얘기했더니 아들끼리 대화가 너무 없다며 우리가 모르는 뭔가가 있는 것 같다며 둘째 아들의 마음이 궁금하단다. 원래 아들들은 그렇다며 별소리를 다한다고 했지만 마음이 꺼림칙했다.

  오늘은 오전에 아내와 영화 보고 근처 시장 가서 점심 먹고 저녁은 조개와 새우 사서 냉잇국을 먹을 것이다. 멜랑꼴리 했던 어제를 오늘 다 털어내고 드물게 온 3월 4일 내일의 개학과 입학을 나의 봄으로 맞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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