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저녁에 명예퇴직한 선배님을 축하(?) 하기 위한 모임이 있었다. 명예퇴직 후의 생활에 대단히 만족해하시면서 스트레스로 억눌린 삶에서 해방되니 원인 모르는 정신적 신체적 통증이 사려져서 병원에 가질 않는다고 하셨다.
스트레스는 웃음으로 상쇄하며 관리해야 하는데, 요즘 학교는 웃을 일이 없고-웃을 일이 있어도 걱정이 습관화되어 마음껏 웃지 못한다. 어떤 이는 억지로라도 웃으면 실제 웃음의 효과가 나타난다고 하는데, 나는 웃을 일이 없는데 억지로 웃는 게 더 슬프다. 억지로 웃지 않고 차분하게 우울을 대하려고 노력한다. 주변에 농담을 던지면서, 이 또한 지나가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또한 그냥 지나가지 않으리라고-언제 끝날지도 모를 불안을 머리와 근육에 새긴다. 그리고 이를 숨긴 채 큰소리친다. '당당하게 맞서자!'
지난 토요일 저녁과 일요일에는 교육대학교 같은 과를 졸업한 선후배들과 모임을 했다. 서로의 근황, 각자 처한 학교의 상황을 걱정하고 격려하며 지금의 학교와 교육을 안타까워했다. 나는 술잔을 돌리지 않아서 가끔 시끌벅적한 자리에서 가끔 홀로 앉아 있을 때가 있다. 이 시간이 싫지 않은데 내가 술잔을 기다리는 듯한 오해를 사서 술잔을 들지 않은 채 이 자리 저 자리로 가서 인사를 한다.
어떤 후배가 내가 근무하는 지역의 학교 교원들이 나를 꽤 괜찮은 교감으로 말한다며 치켜세웠다. 무어라 할 말이 없어서 '그래!'하고 말았다. 모임에 따라서 말을 좀 세게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모임이 그런 편에 속한다. 선배들이 편한 분위기에 취해서 후배들에게는 지겨운 말을 주저리주저리 하거나 선배들 고집대로 의사진행을 하려 하면 내가 큰소리로 제지한다. 선배들은 이런 내가 익숙해서-제지의 의미를 알기에 대체로 수긍한다. 후배들은 선배들과 같은 마음으로 나를 바라보지 않을 것이고 어딜 가나 그럴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 자리에서 이런 마음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나? '그래!'하고 마는 거지.
아내와 산책을 하다 어색한 아름다움을 바라볼 때가 있다. 원추리꽃과 나리꽃이 모기가 윙윙거리는 뒷산 오솔길에, 제 고향을 찾아가질 않는 청둥오리가 먹이활동을 하는 냇가 방뚝에, 가끔 눈치 없이 차가 속도를 쌩쌩 내며 산책하는 아내와 나를 놀라게 하는 한적한 논가 도로의 산기슭에 피어있을 때다. 홀로 피어 있어도 덩어리로 피어 있어도 매한가지다.
나는 원추리꽃과 나리꽃을 화단에서 처음 보았다. 그리고 좋아했다. 그리곤 원추리와 나리는 화단에서만 자라는 줄 알았다. 어른이 되기 전까지는.
그 어색한 아름다움-꽃에겐 변화지 않는 본질의 아름다움이 이제야 나에게 보였을 뿐이다. 요즘 사람에게서 어색한 아름다움을 보았을 때, 그날은 기분이 좋다. 내가 사람이 되어가는 듯해서 좀 짜릿하다.
'교감 일기(2018~)'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4년 7월 19일 (0) | 2024.07.19 |
---|---|
2024년 7월 18일 (0) | 2024.07.18 |
2024년 7월 9일 (0) | 2024.07.10 |
2024년 7월 8일 (0) | 2024.07.08 |
2024년 7월 5일 (0) | 2024.07.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