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다가 넋두리할 데가 없어서 일기 쓰며 잔뜩 들뜬 기분 삭인다.
오늘은 아내의 개학날이다. 어제부터 아내는 2학기 교실을 상상하며 한숨을 푹푹 쉬었는데, 아내의 교실 사정을 자세히 알고 있는 나는 무어라 할 말이 없었다. 저녁을 먹고 성가신 티눈의 통증을 완화하려고 발가락양말을 사러 할인마트에 가자고 했더니, 아내도 가방이 필요하다고 했다. 어디서 살려고 하는지 물으니, 동네 가방 가게에 가자고 했다. 꼭 동네 가방 가게가 아니어도 되니 갖고 싶은 가방 하나 사주겠다고 했더니 그럴 필요가 없단다. 할인마트 가는 길에 가방 가게에 들렀더니, 사장이 저녁 먹으러 나가고 없어서, 할인마트에서 발가락양말 사고 산책하고 있는 데, 가방 가게 사장이 아내에게 가게에 올 수 있는지를 묻는 전화를 해서 아내가 그러겠다고 했다.
디자인과 품질에 비해 저렴한 국산 가죽 가방-사장이 여러 번 강조함- 두 개를 아내가 한참 동안 고르고 있어서, 두 개를 사주었다. 아내가 두 개의 가방과 학교 가는 날은 좀 편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오늘 오후에 인근 지역으로 기차 타고 후배-힘든 우여곡절이 많게 올해 초등교감 자격연수를 받은-를 만날 것이라고 예전부터 약속이 되어 있어서, 오후 산책이 힘들 것 같아서, 새벽같이 일어나 산책을 나가려는데 어머니의 기침 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산책 후에 아내에게 말하니 약간의 열이 있다고 했다. 퇴근하고 병원에 같이 가보자 하길래 내가 휠체어에 태워서 동네 병원에 다녀오겠다고 했다. 어머니를 휠체어 힘들게 태워서 병원 가는 길의 햇빛이 따가워서 양산을 펼쳤더니 그냥 접어라고 역정을 내셨다. 예상했던 대로 코로나19 양성 반응이었다. 그동안 관리 안 된 허름한 코로나19 격리 병실에서 제법 비싼 수액을 맞는데 어머니는 마스크를 내리며 온갖 이야기로 그야말로 잔소리를 해댔다. 코로나19 확진이라고 하면 충격받을 것 같아서 그냥 감기라며 처방약 잘 먹으면 괜찮다고만 했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그냥 누워 계시지 않고 불편한 몸을 지탱하는 의료기구를 이리저리 질질 끌며 집안을 누비셔서 아픈 사람이 제발 그러지 말라고 얼르고 달래는 데 정말 화가 나서 여러 번 고함을 치고 말았다.
점심을 챙겨 드리고 약봉지를 뜯어서 약을 드시라고 하니, 약은 드시지 않고 약봉투의 다른 약을 끄집어내어서 이리저리 살폈다. 때에 맞춰 약 잘 챙겨 드릴 테니 제발 지금 먹을 약부터 먹자고 맥없는 새된 소리를 했다. 약을 먹은 후에도 방에서 깨끗하기는 한 쓰레기통을 부엌 싱크대로 가져가서는 씻길래, 쓰레기통을 왜 거기서 씻느냐며 그리고 왜 갑자기 쓰레기통을 씻느냐고 했더니, 깨끗한 헝겊을 담을 것이란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무슨 깨끗한 헝겊을 담을 것이냐고 했더니 그냥 그런 게 있단다.
사실, 어머니는 거동이 매우 불편한 장애인이다. 평소에도 병원 가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어서 아내가 혈압약과 안약을 대신 받아오고 꼭 필요한 경우에는 두 명이 함께 가야 좀 수월하게 병원 진료를 받을 수 있다.
일전에, 아내와 내가 서울 가서 두 아들과 뮤지컬을 보고 오는 이틀 동안 여동생이 어머니를 보기로 했었다. 뮤지컬을 보고 돌아오는 날에 여동생이 카톡으로 어머니 발을 퉁퉁 부었다며 사진을 보냈다. 서울로 오기 전에 어머니의 불그스레 한 발에 눈을 스쳤는데, 평소에 티눈이 있다며 발을 자꾸 긁어대서 붉은 끼가 감돈 발이라서 예사로 넘겼었다.
여동생은 예사롭지 않다며 토요일임에도 당뇨 투석을 받는 누나를 불러 어머니를 응급실로 모셔 갔고, 응급실에서는 봉와직염인데 조그마한 염증을 방치한 결과라며 여기서는 치료할 수 없으니 치료할 수 있는 병원으로 바로 가서 입원 치료를 받으라고 해서, 토요일이라서 입원 치료할 병원에서 항생제 치료만 받고 일요일 오후에 입원했다가 지난 금요일에 퇴원했다. 어머니가 입원한 동안 아내와 여동생이 정말 고생했다. 처방받은 항생제 다 먹은 이번 주 금요일에 다시 병원 가서 염증 검사를 하기로 되어 있었다.
여동생이 어머니의 염증을 일찍 발견하지 못했다며 아내에게 무어라 하지 않고 오히려 어머니 모신다고 정말 고생한다며 위로했는데도 아내는 못내 자신의 잘못인 양 의기소침했었다. 이런 아내를 달래주려는 데, 뾰족한 말을 찾지 못한 나는, 당신 잘못이 없다는 눈길만 보냈다.
그러는 중에 주차장에 세워 둔 아내 차를 누가 긁었다며 전화를 했다. 주차장에 가보니 순박하게 보이는 딱한 사람이 머리를 긁적이며 미안하다고 하길래, 어머니 집에 오셔서 이런 낭패를 당한 마음도 심란하겠다며 위로하고는, 집에 바쁜 일이 있어서 며칠이 지난 뒤에야 차 수리를 맡길 수 있을 것 같으니 그때 전화를 잘 받아주기를 바라며 연락처를 주고받았다.
오늘오후에 최대한 싸게 수리하려고 자동차 덴트 하는 곳에 갔더니, 법령으로 자동차 덴트 하는 곳은 도색을 할 수 없다며 정비소에 가야만 한다고 했다. 이럴 때 항상 도움을 주는 후배에게 연락해서 소개받은 정비소 사장에게 통화하여 최대한 저렴하게 해달라고 했다. 그런 후에 차를 긁은 사람에게 전화를 했는데, 전화를 받지 않아서 약간 불길한 마음이 들었다. 다행히 카톡으로 전후 사정을 전하고 전화를 달라고 했더니 얼마 후에 전화가 왔다. 정비소 사장과 통화를 하게 하고 차는 정비소 사장이 가져갔다. 정비소 사장은 수리하는 동안 차량 렌트 등을 할 의향이 있냐고 또 묻길래 전혀 그럴 생각은 없고 저렴하고도 깔끔하게 도색해 달라고 했다. 차를 긁은 사람이 내가 정비소 사장에게 한 이야기를 들었는지, 정비소 사장이 차를 가져가고 얼마 후에 고맙다는 인사 전화를 하며 현금으로 처리하기로 했단다.
오늘 만나기로 한 후배에게 자초지종을 말하고 다음을 기약했다. 기차 예매도 취소했다.
나에게 주어진 짧은 3일의 여름방학 첫날이 이렇게 지나간다. 어머니는 여전히 옷장을 열었다 닫았다 하시고, 분명 치매는 아닌데-치매 검사를 했는데 전혀 아니라고 했다. 자꾸 다그칠 수도 없고.
신경을 곤두세우고 새된 소릴 했더니 머리가 아픈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뒷목도 뻐근하고.
이번 여름방학은 학교도 집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들의 연속이었다. 남은 이틀은 그럭저럭 지나가겠지.
아! 2학기에 새로 부임하는 교장 선생님도 오늘 코로나19에 걸렸다며, 만나기로 한 약속을 취소하며 부임에 필요한 자료 몇 가지를 업무메일로 보내달라고 했다.
그 힘든 코로나19 시기도 잘 견뎠는데 이까이껏 대충 뭐 어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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