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2024학년도 종업식과 졸업식을 했다. 조퇴를 내고 겨울방학을 먼저 맞이하는 선생님들과 의례적인 인사를 주고받기 싫어서 조퇴를 내고 좀 일찍 퇴근해서 몇 시간을 OTT로 때웠다. 늘 했던 일상과 멀리하고 싶어서 OTT에만 집중하려 했는데, 겨울방학을 앞두고 새 학년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 과정에서 맞은 작은 돌멩이들이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남들 하는 정도, 교원이면 당연히 해야 하는 정도, 양도 많지 않았고 질도 그다지 낫지 않았는데, 왜 그걸 남들보다 많이 했고 교원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마치 하면 안 되는 일을 엄청나게 한 것처럼 포장해서는 동료 교원의 어깨를 무겁게 하려는지. 그걸 안 들어주면 스스로를 폄훼하며 주변을 불편하게 하는지.
긴 세월, 학생과 함께하려 학교 안의 아주 작은 공간인 교실을 벗어날 수 없었던 몸처럼, 학교와 교육을 바라보는 눈도 교실에 위리안치하곤 교실이 학교의 전부라며 학교가 교실처럼 변해야 한다며 거침없이 내뱉는 작고 단단한 돌멩이를 몸으로 부딪히며 쪼갤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맘 때면 좀 아프다. 아픔을 온전하게 드러낼 수 없어서 돌멩이의 흔적을 억지로 지우는 게 치유다.
교원의 인식이 학교에 고립되어 있으면 교육의 진정한 목표인 사람들의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지 못한다. 반지성의 극단주의자들이 저지른 이 난국을 지혜롭게 헤쳐나가지는 못할 망정 방해하며 전혀 돕지도 않고 교묘하게 수수방관하며 동조하는 정치인과 관료들과 손잡으며 교육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한국교총의 카톡에 화가 치밀었다.
'악성 민원은 단 한 번이라도 교육활동 침해로 명시, 교권 침해 학생 조치에 대한 교원 이의 제기 절차 마련'
한 번의 민원을 악성으로 판단할 수 있나? 민원이 거칠고 과격하면 다 악성인가? 학교와 교원의 입맛에 맞는 민원만 제기해야 하나? 민주주의 국가의 국민은 헌법으로 표현의 자유를 누릴 수 있지 않은가? 그 표현의 자유가 왜 학교와 교원에게는 제한되어야 하는가?
학생이 교권 침해를 저질러서 받은 대가가 교원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특별하게 이의 제기 권한을 부여받아야 하는가?
곡해하지 마시라. 반지성적인 표현의 자유와 교권 침해를 옹호하는 게 아니다. 그것은 그것대로 엄정하게 대처해야 한다. 그러나 학교와 교원을 위해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자거나 특별한 대우를 해달라는 요구는 엄정한 대처가 아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난국에서 취할 한국교총의 최소한의 엄정한 대처는 갈 곳 잃은 반지성의 정치인과 교육관료들과 손 잡지 않는 것이다. 평범한 엄정한 대처는 그들을 엄하게 나무라며 교육의 권위를 보이는 것이다.
왜 우리 스스로 교실과 학교에 갇혀 스스로 고립되려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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