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앨범/산책길에서

좋을 때다, 무슨 걱정이 있을까.

멋지다! 김샘! 2025. 1. 13. 11:11

나의 초등학교 시절은 1970년대 말과 80년대 초였다
오전 수업을 마친 토요일 오후와 일요일에는 어김없이
동네 골목에 모여 깡통차기와 숨바꼭질 놀이를 했다
온 동네의 장독대와 헛간 외양간 뒷간 집과 맞닿은 대나무밭을 누비다가 심지어 어떤 아이는
동네 뒷산의 양지바른 무덤 뒤에 숨고는 잠들어버리기도 했다
해가 저물며 앞산이 어둑해지고 굴뚝에 연기가 피어오르면
이 집 저 집에서 같이 놀던 친구와 동생들의 이름을 불러대며
저녁 먹으러 오라 했다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며 숙제는 다했는지 엊그제 본 시험지를 부모님께 보여주었는지 학교에 낼 돈 얘기를 했는지를 걱정했다 그런 우릴 보고 어른들은
좋을 때다 무슨 걱정이 있을까
그런 소릴 들은 우리는 자기들 마음대로 하는 어른들은 무슨 걱정이 있을까로 속삭이듯 받아쳤다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에 두 아들의 어린 시절이었다
아파트 사이사이의 주택가 골목길을 누비며 그 당시와 지금도 방영 중인 런닝맨의 본뜬 놀이를 하는 아이들을 보며
참 좋을 때다 무슨 걱정이 있을까가 목구멍을 간지럽혔다
이 아이들도 자기 마음대로 하는 어른들이 빨리 되면 좋겠다는 소망을 갖고 있을 게 뻔해서
아쉽게도 지나고 보니 두 아들이 골목길을 지배한 마지막 아이들이었고 지금은
지금의 사람들은 가운데를 슬금슬금 다니는 자동차와 갓길에 세워둔 자동차로 볼록볼록 튀어나온 틈새를 갑자기 찾아온 자동차 엔진 소리에 놀라며 눈치 없이 빵빵거리는 자동차 경적 소리를 째려보며 아슬아슬하게 다닌다

엊그제 아내와 강변 산책을 했다
나이를 한 살 더 먹어서 그런지 어제저녁에 아내와 갈라먹은 막걸리가 몸속에 남아 있어서 그런지
발과 머리가 무거워서 평소 같으면 잘 앉지 않는 대리석 의자에 좀 앉았다
새로운 풍경
그 대리석 의자에 앉은 많은 사람들
늘 다니던 강변 산책로를 촘촘하게 거니는 많은 사람들
나보다 나이가 많은
그런 사람들이 머리 허연 나를 보며 그러겠지
참 좋을 때다 자식 다 키웠을 테고 마누라와 저렇게 정답게 나니는데 무슨 걱정이 있을까

분명한 건
머리 허연 나를 부러운 듯이 응시하는 쭈글쭈글한 주름살에 푹 파인 회색의 눈을 회피하며
걱정하며 사신다고 참 고생하셨다
짐이 되는 죽음을 맞지 않으려고
오늘도 열심히 걷는 저분들의 걱정보다
내 걱정이 훨씬 가볍다

불현듯
감히 제대로 바라보지는 못했지만
서로의 걱정을 부러워했던 그 시절이 부럽기만 하다

참 좋을 때다
무슨 걱정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