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저녁에 친구들과 소주를 맛있게 마셨다. 경제적으로 힘든 친구가 있어서 과하다 싶을 정도의 술값을 내가 처음부터 내겠다고 했다. 각자의 입장으로 이 시국을 비평했지만 공통된 결론은 윤석열의 탄핵이었다. 오늘 아침의 숙취가 걱정되어 빨리 헤어지고는 오늘의 탄핵을 축하하려고 집 근처의 빵집에서 케이크 2개를 사서 차 안에 넣어두었다. 2개를 샀을 때는 하나는 아내에게 주려는 것이었는데 오늘 아침에 아내가 부담된다며 사양했다.
케이크 2개를 의기양양하게 교무실로 가져와서는 주변 교직원을 가볍게 모았다. 내 생일은 아니라고 오늘 분명히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고 초와 폭죽은 일부러 가져오지 않았다고 이야기했더니 대번에 알아채고는 웃었다. 일부러 큰 케이크를 샀었지만 2개여서 서로 눈치 보지 않고 우연찮게 교무실에 들러는 교직원과도 풍족하게 나눠 먹을 수 있었다. 아내의 선견지명이었다.
좀처럼 긴장하지 않는데 탄핵 선고를 기다리는 동안 특히 헌법재판정이 화면에 보였을 때는 저절로 가슴이 벌렁거렸고 머리가 저릿했다. 의자에서 일어나 좁은 교무실의 구석구석을 천천히 배회했다.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탄핵의 정당성을 조목조목 이야기하는 걸 들으면서 '윤석열을 파면한다!'를 직감했다. 시간을 확인하고 주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를 차분히 말했다. 새로운 대한민국의 시작이었다. 잔뜩 흥분되어 같이 점심 먹는 사람의 인상과 기분을 살피지 않고 윤석열 파면의 결과를 떠벌렸다.
운동장과 화단 사이의 우천 도로를 가볍게 걸으면서 들뜬 기분 가라앉혔다.
페이스북 분위기를 살폈는데, 탄핵정국에서 입신한 지금을 잃지 않으려고 요령껏 눈치 보던 이들이 더 큰 입신하려고 두루뭉술한 입장을 게시하고 있었다. 이런 사람들은 정치-정무 감각이 뛰어난 게 아니고 본인 출세에만 집중하여 책임지지 않으려는 눈치만 빠른 것뿐이다. 이런 사람들은 정의로운 정치를 할 수 없다.
사족: 어제저녁에 친구와 나눴었던 여러 이야기를 솔직하게 일기로 공개했다가 맥락으로 필요한 찰진 욕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것 같아서 비공개로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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