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리더십

신의(信義), 신의(信疑), 신의(宸意)

멋지다! 김샘! 2013. 9. 21. 22:11

'신의(信義): 믿음과 의리'

'신의(信疑): 믿음과 의심'

'신의(宸意): 임금의 뜻'

 

 그냥 좋아하는 부장선생님이 있었습니다. 그 분은 어떤 결정을 내리기 전에 항상 의견을 물었습니다. 처음에는 성심성의껏 나의 생각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결정은 달랐습니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많이 반영한 듯 보였습니다. 생각의 차이가 있으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느날 그 분과 심리적인 충돌이 일어났습니다. 다수결로 결정할 수 없는 사실과 정보에 근거에 객관적인 자료로 판단해야 할 사안이 있었습니다. 관련 규정과 법, 비슷한 사례에 근거하여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역시나 이번에도 다른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된 것은 결정의 근거가 자신이 좋아하는 그룹의 의견을 근거없이 받아들인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관리자가 부장선생님들의 결정을 번복하여 현명한 판단을 내려 잘 해결되었지만 그 부장선생님에 대해서 믿음과 의심의 '신의(信疑)'가 생겼습니다.

 

 동학년 협의회 시간에 부장선생님께서 내년에 연구학교 추진에 대한 선생님들의 의견을 모아오라고 관리자분들이 말씀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허심탄회하게 선생님들의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퇴근길에 부장선생님을 만났는데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를 물으니 연구학교에 대한 관리자 분들의 생각과 선생님들의 생각의 차이가 너무 커서 야단을 맞았다는 것입니다. 쉽게 표현하면 관리자자는 연구학교를 추진하고 싶은데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여러가지 이유를 들어 반대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부장선생님의 말씀이 처음부터 연구학교를 추진하려고 하는데 선생님들을 설득시켜라고 하는 것이 옳지 않느냐고 했습니다. 관리자분들은 선생님들이 '신의(宸意)'를 알기를 바랬던 모양입니다.

 

 선생님들의 의견에 관계없이 국가정책과 관리자의 철학에 의하여 결정하고 추진해야 될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결정 후에 선생님들에게 '신의(宸意)'를 기대하는 것보다 있는 그대로를 설명하고 설득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무조건 나를 따르라고 강요하면 독선적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심각한 부작용에 부딪힌 외형적인 실적만 남길 뿐입니다.

 

 믿음을 주는 결정자는 과정의 공정성에 달려 있습니다. 형식적인 의견 모으기가 아닌 구성원들의 하찮은 의견에도 반응하고 공감하는 진정성 있는 태도에 믿음을 갖습니다. 이 믿음이 서로간에 쌓이면 의리가 생깁니다. 의리는 권력이 있다고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오랫동안 믿음이 쌓여야 생기는 것입니다.


 학교교육과정 수립, 학교평가, 학부모 공개 수업에 학부모의 설문지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간혹 엉뚱하거나 학교의 사정과 전혀 다른 설문에 답한 경우가 있습니다. 학교에서는 자녀가 다니는 학교인데 사정을 너무 모른다거나 지역에 있는 학교를 폄하해서 좋은 일이 없을텐데 속좁은 학부모라고 야속해 합니다. 다른 말로 이야기하면 학교의 교육활동에 긍정적인 반응으로 의리를 지켜주면 좋은데 그렇지 못함에 대한 야속합니다.

 그런데 학부모가 의리를 지킬 정도의 학교에 대한 믿음이 쌓여있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학교교육과정을 수립을 위한 학부모의 설문지에 얼마만큼 민감하게 반응하여 반영했는지? 교육과정 설명회에 학부모, 학생, 지역민의 요구를 학교교육과정에 어떻게 반영했는지를 진정성있게 설명했는지? 반영하지 못한 이유도 제대로 설명했는지? 설명하는 방법이 학부모의 눈높이와 같은지? 학교의 교육활동이 정기적으로 실질적으로 학부모에게 전달되는지? 아이들의 작은 다툼과 상처에 학부모의 입장에서 대처했는지? 교육활동에 대한 사전설명이 충분했는지? 학생평가에 대한 결과 전달과 피드백이 적절한지? 학교폭력에 어느 정도 대처하고 있는지? 자녀의 학교생활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가 제대로 전달되고 있는지?-중요한 문제로 자녀가 학교에서 갈등이 생긴 이후에 학교생활이 충실하지 못했다는 내용을 학부모에게 전달하면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소한 다툼과 특이사항이 발생할 때마다 학부모에게 알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등에 대하여 냉정하게 판단해 보면 학부모의 입장보다 학교의 입장이 우선이었던 것이 대부분입니다. 학교 교육활동에 관심이 있는 몇몇분을 제외하면 학교에 대한 의리를 지킬 정도의 믿음은 없는 것입니다. 그래도 아직까지 긍정적인 평가를 해주는 것은 믿음에 의한 의리가 아니라 인정에 의한 것입니다.


 아이들은 종종 선생님이 없는 곳에서 선생님을 욕합니다. 그러다가 선생님이 나타나면 놀라서 어쩔줄을 몰라 합니다. 혹시나 듣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에 노심초사합니다. 대부분의 선생님은 듣고도 모른척 합니다. 상대방이 없는 곳에서 욕하고 험담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고 대부분은 악의적이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요즘은 선생님이 없는 곳인 아닌 전 세계인이 다보는 SNS를 비롯한 사이버 공간에 자기들만의 언어로 선생님의 욕으로 도배를 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선생님의 권위와 함께 믿음도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그냥 지식을 전달하는 사람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전달하는 방법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원색적으로 욕합니다. 반대로 유명한 학원강사에게는 성적을 올려준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학부모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학교수업에 불성실한 학생이 학원 수강에 충실하다는 보장도 없을뿐더러 성적향상이 학원수강의 효과라고만 판단할 수 있는 근거도 부족합니다. 그래서 순수하게 학원수강의 효과를 보는 경우는 소수입니다. 그러나 그 믿음은 예전에 학교와 선생님들이 가졌던 권위와 유사합니다. 아이의 상태와 이득을 따져보지 않고, 옛날의 학교가 관습적으로 누렸던 권위와 같이 안보내면 불안한 사회 분위기에 편성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믿음을 찾는 방법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아이들의 말에 귀를 열고 오랫동안 듣는 것입니다. 학급이나 학교의 교육활동에 아이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학교가 선생님이 아이들의 의견을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자치활동에서 건의사항, 일회성의 이벤트적인 교육활동으로 아이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의견을 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무조건 말하라가 아니라 올바르게 전달하는 방법도 가르쳐야 합니다. 이야기하면 들어줄께가 아닌 하고싶은 이야기를 바른 방법으로 전달하는 것이 당연시 되는 분위기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학교 교육활동에 믿음이 쌓이도록 하는 것입니다.

 아주 유능한 변호사에 의하여 실제보다 5년이나 짧은 형을 구형받은 죄수와 일반적인 변호사에 의하여 실제보다 2년이나 많은 구형을 받은 죄수에게 자신의 변호사를 신뢰하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의외였습니다. 2년이나 구형을 많이 받은 죄수가, 5년씩이나 형을 짧게 구형받도록 한 죄수가 자신의 변호사를 신뢰하는 것보다 더 신뢰한다는 것이엇습니다. 그 이유는 유능한 변호사는 형을 짧게 받기 위하여 필요한 내용만을 죄수에게 질문했지만 일반적인 변호사는 자신의 무능을 알기에 죄수에게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하여 죄수가 하는 말을 모두 들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선생님을 다시 믿게 하기 위해서는 아이들의 건전한 생각이 교육활동에 실제적으로 반영되어 체감할 수 있도록 하고, 아이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주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학교 선생님과 학원강사에게 요구하는 것이 다릅니다. 그래서 성적만을 향상시키는 교육정책은 학부모와 일부 교육관료들은 환영할 수 있겠지만 빼앗긴 믿음은 되찾을 수 없습니다. 선생님에 대한 믿음이 없기에 권위를 인정하는 의리도 기대하기 힘듭니다.


 선생님과 학생, 학부모가 학교의 테두리안에 있습니다. 그러나 각자 생각하고 있는 것은 다릅니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와 같은 '신의((宸意)'가 통하려면 오랫동안 사귀어 사랑하는 사이여야 가능합니다. 그러나 아쉽지만 학교는 그렇지 못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설명하고 설득하는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의사결정의 절차에 진정성이 없고 형식에만 치우친다면 믿음과 의심이 공존하는 '신의(信疑)'만 있을 뿐 믿음은 사라집니다.

 서로의 생각에 귀를 기울이고 생각을 건전하게 공유할 수 있는 분위기와 서로의 의견을 경청하여 공감하는 절차로 선택과 결정을 한다면 믿음과 의리가 공존하는 '신의(信義)'가 생길 것입니다. 이러한 '신의(信義)'가 학교를 행복하게 만들고 학교와 선생님의 권위를 되찾는 특효약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