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리더십

진실을 숨기는 사실

멋지다! 김샘! 2013. 11. 4. 17:40

 올해(2013년)에 아주 부끄러운 짓(?)을 두번 했습니다. 똑같은 사람에게 두번했다는 것이 더 부끄럽습니다. 이 일로 많은 것을 배우기도 했지만 잃은 것이 더 많은 듯 합니다. 후배나 친구, 선배들에게 이야기하면 하나같이 믿지 못하겠다고 이야기합니다. 상황을 같이 지켜 본 분들은 술에 많이 취했으니 그런 실수를 한 것이라고 위안을 합니다. 그러나 위안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각인이 되어 제 자신이 싫습니다.

 그러나 아쉬운 것도 있습니다. 실수만 한 것을 보고 제가 잘못했다고 이야기를 하지만 그 상황을 만든 것은 저에게 피해를 본 그 분입니다. 그리고 그런 상황을 만들고 본인은 관계없는 양 행동하는 것도 제 동료입니다. 구차하게 변명해서 제 실수의 당위성을 주장하고 싶지 않습니다. 오히려 피해를 본 동료분들이 제 진정성을 알고 너그럽게 용서해 주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어른들(?)께 실수하고 즐거운 분위기를 망친 제 잘못만을 용서해 주시고, 이 상황과 평소 나에 대한 불만을 섞어서 저를 평가하는 것을 망설여 주시고 주저해 주십시오. 왜냐하면 그 상황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는 어른(?)  한 분과 동료 한 분(?)이 알고 있는데 그 분들은 동료들에게 숨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분들은 막돼먹은 제가 모두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 분들이 알고 있는 것과 그 상황을 종합하면 진실이 되지만 실수한 그 상황만을 보고 저를 각자 판단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학교에서 정말 많은 사실들이 만들어집니다.

 자신의 실수를 숨기기 위하거나 책임을 면하기 위해서 구차한 변명의 사실을 만들어 정당화하려고 합니다.

 편가르기를 하기 위해서 비난의 사실을 만들어 이용합니다.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비열한 사실을 만들어 정당화 시킵니다.

 과장되고 거짓된 사실을 만들어 자신을 과시합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접하는 선생님들은 진실로 믿는 다는 것이 사실의 아주 큰 병폐입니다.

 

 평소 믿고 지내는 분이나 절친한 친구사이는 사실을 진실로 싶게 믿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본인이 알고 있는 사실과 다른 사실이라면 진실로 믿기 전에 의심해야 합니다.

 평소 형님처럼 생각하는 선배선생님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형님을 시기하는 선배선생님도 있었습니다. 저는 그 두분의 관계를 전혀 모르고 그저 좋아하는 두 선배선생님이었습니다. 어느날 한 분이 다른 선배선생님 한 분을 맹렬하게 비난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둘만 있는 자리였습니다. 그 분 이야기를 들으보니 다 옳은 이야기였고 그 자리에 없는 한 분의 선배선생님이 정말 미웠습니다. 한참이 지난 뒤에 미운 선배선생님을 만나는 기회가 있어서 그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들은 이야기와는 정반대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그 두 분의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직까지 어느 분의 이야기가 진실이고 사실인지를 모르겠습니다.

 

 경력이 높거나 지위가 높은 분들의 사실적인 이야기를 진실로 싶게 믿습니다.

 허물없이 지내는 관리자가 있습니다. 매사에 지혜롭고 현명하게 결정하고 선택하는 분이라 저를 포함한 대부분의 동료들은 그 분의 이야기를 진실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중용하는 인사도 지혜롭게 해결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구성원들의 마음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인사발표를 했습니다. 모두가 의아해 했습니다. 특히, 본의아니게 인사에서 밀린(?)  동료는 무척 마음이 불편하고 아프다는 것을 침묵으로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발탁된 동료도 마음이 편치 못하여 거부하는 이야기를 관리자에게 전달했습니다.

 관리자가 자신의 결정을 거부하는 것이 기분이 나빴는지, 발탁된 동료의 거부 의사의 말과 본인의 감정을 섞어서 나를 포함한 동료에게 전달하면서 불쾌했습니다. 저도 그것을 진실로 받아들이면서 거부의사의 말로 적절하지 못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몇일 뒤에 협의회 시간이 있었습니다. 밀린(?) 한 분은 아무 말없이 있다가 피곤하다고 자리를 떠났습니다. 그러자 관리자가 발탁된 동료에게 짐을 맡겨서 미안하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의 입장을 이해해 달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상황이 묘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밀린(?) 한 분이 있을 때에 인사의 배경을 설명하고 이해해 달라는 것이 맞지 않느냐고 하니까 그럴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럼 발탁된 분은 어떤 점이 좋아서 발탁했는지를 물음과 동시에 발탁된 분에게도 거부 의사를 밝히는 표현이 적절했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런데 그 분은 그런 표현을 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관리자에게 확인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비슷한(?) 이야기를 했으니 같은 말이 아니냐고 하는 것입니다. 난감하여 전혀 다른 내용이라고 이야기를 했더니 그럴 수 있다고 합니다. 뒤이어 발탁된 그 분이 저에게 야속하다는 듯이 선생님은 그 말을 믿었냐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관리자가 그렇게 이야기해서 당연히 믿었다고 했습니다. 발탁된 그 분도 자리를 떠났습니다. 관리자와 옥신각신 하는데 다른 동료가 갈등만 조장한다고 나무라서 저도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진실과 다른 사실은 나의 마음과 다른 사람의 마음이 같을 것이라는 감정이입과 자신을 지나치게 사랑하는 나르시시즘에서 비롯됩니다. 그 상황에서 나는 이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니 다른 사람도 당연하게 그렇게 행동하고 생각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짐작으로 자신만의 사실을 만들어 냅니다. 같은 감정이라고 표현하는 방식은 제각각입니다. 기쁠 때 호탕하게 웃는 사람이 있는 반면 우는 사람도 있습니다. 잘못을 용서할 때 쿨하게 말로 표현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넘어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신은 남보다 항상 우월하고 소중하다는 생각을 가진 분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남보다 뛰떨어지거나 남이 자신보다 우월하다고 생각되면 가차없이 자기 방어적인 자기 우월적인 허위와 거짓의 사실을 만듭니다. 특히 이런 분들이 권력(?)을 가지고 있거나 가지게 되면 학교에 심각한 피해를 남깁니다. 협의회나 회식 자리에서 자기보다 뛰어나서는 안됩니다. 자기보다 유머있는 이야기를 해도 안됩니다. 자기보다 노래를 잘한 동료가 칭찬을 받아도 안됩니다. 여지없이 핀잔이나 어처구니 없는 사실로 상대방을 공격합니다.

 중요한 결정을 할 때에도 자신의 결정을 거부하는 것을 자신에 대한 도전으로 판단하여 모멸감이나 당혹감을 주는 사실을 만들어 냅니다.

 

 진실을 알 수 없습니다. 진실을 밝히기도 힘듭니다. 사실을 창조해 내는 사람을 변화시키도 힘들고 변화시킬 힘도 미약합니다.

 그렇다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사실을 안 만들면 됩니다. 나의 감정을 배제시킨 보고 들은 것만 전달하면 됩니다. 다른 사람이 지어낸 사실에 상처받는 것이 싫으면 다른 사람이 상처받는 사실 안 만들면 됩니다. 혹, 나에게 피해주는 사실이 있더라도 흘러가는 물이라 생각하고 흘러보내면 비난하는 사실이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내가 알고 있는 사실과 다른 사실을 어느 누가 이야기 하더라도 의심하여 믿기를 주저하시고 전파를 망설여 주십시오.

 

 진실을 몰라주는 동료를 야속해 하며 꽤 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 긴 시간속에서 나 역시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으로 동료를 판단하여 원망과 비난의 사실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후회합니다. 그리고 배웠습니다.

 진실을 숨긴 사실에 쉽게 현혹되지 말자. 그리고 사실을 진실로 만들지 말자. 사실을 만들기 전에 대화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