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게임에 중독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리고 인터넷 게임 중독이 왜 위험하까요? 특히 아이들에게 더 위험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어떤 일에 시간을 많이 투자한다고 중독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인터넷 게임은 끊임없이 목표를 제시해 줍니다. 아이템을 얻어서 캐릭터를 더 강하게 만들도록 하고, 수시로 환경을 바꾸어서 도전의지를 자극합니다. 그리고 목표에 도달하고 나면 100%이루었다는 성취감보다 방법을 달리했으면 더 잘 했을 것이라는 여운이 남도록 합니다. 즉, 단기간에 이룰 수 있는 목표를 끊임없이 제시하여 단기적인 성취감을 맛보게 하고 최종적으로 그 게임을 정복해도 아쉬움을 남겨서 다시 시도록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게임을 정복하는 것보다 게임을 정복하기 위한 과정을 게속 반복하도록 하기 때문에 중독이 되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일수록 논리적이고 사고력을 요구하는 문제를 해결하기가 어렵습니다. 해결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싸워서 이기면 되는 단순한 게임, 희열을 더 맛보게 하기 위해 적나라하게 표현되는 잔인하고 폭력적인 게임을 아이들은 더 선호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선천적으로 인간은 악하기 때문에 잔인하고 폭력적이며 선정적인 반도덕적 게임에 쉽게 현혹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중독이라는 결과만을 가지고 논한 것일 뿐 인간의 본성을 제대로 파악한 것은 아닙니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가면 인간의 본성을 금방 파악할 수 있습니다.
한 아이가 울고 있습니다. 조금 있으면 주변의 아이들이 고개를 돌려서 관심을 표현합니다. 그 중에서 한 아이가 자기가 가지고 놀던 장남감을 울고 있는 아이에게 건넵니다. 그래도 아이는 울음을 그치지 않습니다. 이 아이의 주변에 대부분의 아이들이 모여서 왜 그런지를 알기 위해 각자의 방식으로 표현을 합니다. 발달이 빠른 아이는 선생님에게 달려가 도움을 요청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인간의 유전자에는 연민이라는 감정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누가 가르쳐 준것이 아니라 타고난 것입니다. 인간의 유전자에 연민이라는 유전자가 없었다면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친절과 희생이 없었을 것입니다. 약자를 돕기 위한 비영리단체도 존재할 수 없을 것입니다.
연민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고 도덕적인 존재로 만드고 친절과 희생을 파생시켜 인류애를 구현하는 첫단추인 것입니다.
울고 있는 아이에게 다른 아이가 관심을 표현하면 울음을 그치거나 다소 불완전한 방식으로 도움이 필요함을 알리고 요청합니다. 그러면 울고 있는 아이는 어떻게 자기를 도와 줄 아이인지 괴롭힐 아이인지를 구별하는 것일까요? 그리고 울고 있는 아이가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어떻게 아는 것일까요? 울음인 소리로만 판단하는 것일까요?
대커 켈트너의 주장에 따르면 얼굴 표정으로 안다고 합니다. 특히, 우리 얼굴에는 인위적인 근육의 움직임으로 만들 수 있는 표정이 있는 반면 두뇌의 신경작용으로만 만들 수 있는 표정이 있다고 합니다. 도움을 요청하는 진실한 표정에 연민의 표정으로 답하는 것은 인위적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뇌의 신경작용과 신경물질에 의한 진화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화에 의해 표현된 얼굴표정도 제대로 파악하는 능력이 부족하면 연민의 감정이 생길 수 없으며 동정심도 더 나아가 친절과 희생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인터넷 게임 중독이 더 위험한 것도 이것 때문입니다.
인터넷 게임상의 캐릭터들은 얼굴에 표정이 없습니다. 캐릭터가 칼을 휘둘러도 총을 쏴도 얼굴에는 두려움과 공포심이 표현되지 않습니다. 칼에 찔려도 총에 쏘여도 주먹으로 맞아도 얼굴에는 고통을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또래들과의 상호작용, 가족 구성원들의 격려와 환호, 걱정속에서 드러나는 얼굴표정으로 감정을 배워야 할 시기에 아무 표정이 없는 가상의 캐릭터에 중독된 아이는 다른 사람의 감정을 전혀 알 수 없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살인을 하고도 태연하게 일상생활을 하는 범죄자, 어른을 구타하고도 미안한 감정보다는 이런 저런 이유로 정당함을 주장하는 청소년, 부모님을 살해하고도 그 과정을 태연히 재연하는 자식들은 인간의 감정을 배울 시기를 놓친 경우가 많습니다.
스마트 폰을 비롯한 모바일 기술의 발달로 인터넷 게임의 공간이 확장되고 있습니다. 컴퓨터 앞에 앉아야만 했던 인터넷 게임이 안락한 침대에 누운 아이들의 조그만 손에서 행해지고 있습니다. 그 옆을 지키는 부모님은 그 심각성을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그냥 조용히 누워 있기를 바라는 부모님의 이기심에 아이들은 감정을 모르는 게임속의 캐리터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좋은 집과 맛있는 음식, 예쁜 옷, 자녀의 안정적인 지위를 부여해 줄 것이라 믿으며 부모님의 희생으로 이루어진 온갖 스펙들보다 집의 안정감을, 맛있는 음식에 감탄사를, 예쁜 옷에 만족감을, 부모님의 희생에 감동으로 보답하는 감성적인 아이로 기르는 정성과 노력이 절대적으로 더 필요합니다.
아이들의 인터넷 게임 중독은 인간의 본성인 착한 감정을 빼앗는 악마입니다.
악마에게서 아이들을 지키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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