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고사를 반대하는 선생님들에게 학생들을 저렇게 가르치기 싫어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선생님이 되었을까? 저렇게 가르쳐서 평가받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능력이 없는 선생님들이라고 이야기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학교경영 잘해서 실적 많이 남기면 자동적으로 학교평가에서 좋은 결과 나오는데, 선생님들이 학생들 잘 안가르치게 하고, 업무 소홀히 여기도록 해서 학교평가 결과가 안좋다고 관리자를 폄하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공부를 하는 이유는 두가지가 있습니다.
그 하나는 학생들인 속한 사회 규범과 가치를 전승받도록하여 사회의 건강한 일원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과 집단이 생각하는 규범과 가치가 다르기 때문에 역사교과서를 비롯한 여러가지 갈등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에 논의를 회피하지만 개인적인 치부를 덮기 위해서,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제한된 정보를 가진 다수의 사람들을 이용하여 정치적인 이득을 챙기기 위해서 접근하는 것은 미래지향적이지 못하며 미래를 과거에 가두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두번째 학생들의 행복추구권입니다.
사람은 저마다 자신의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주장을 하면 학생들은 세상물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에 어른들이 개입하는 것이 옳은 것이지, 학생들 마음대로 하도록 방임하는 것이 옳은 것이 아니라고 오해하는 그룹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학생들은 배우는 단계입니다. 도움이 필요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더욱 바르게 잘 도와 주어야 합니다.
많은 선생님들이 일제고사를 비롯한 경쟁적인 줄세우기 정책에 반대합니다.
학생들을 가르치기 싫어서, 편안하게 월급이나 받자고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요즘은 진로교육을 초등학교때부터 실시합니다. 과거에는 진로교육이 단순히 자신의 능력과 취미에 맞는 직업을 선택하도록 한 교육이었다면 현재는 이 모든 것을 포함하여 자신의 행복한 미래를 설계하고 실현하도록 돕는 교육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초등학교부터 다양한 체험학습을 통하여 학생들이 행복한 꿈을 가지도록 돕고 있으며, 학생들은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하여 교과학습을 비롯한 다양한 학교 교육과정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교과학습만 열심히 하면 좋은 대학 졸업하여 남들이 부러워하는 좋은 직장을 얻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어른들과 이에 수긍하는 학생들도 있습니다.
어쨋거나 교과학습을 비롯한 다양한 학교 교육과정은 학생들의 행복 추구에 도움을 주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면 학교가 어떤 역할을 해야 되는 것일까요? 교과학습만이 목적이 되어야 할까요? 아닐것입니다. 교과학습을 비롯한 모든 학교 교육과정은 학생 개개인이 행복을 추구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이 부분이 일제고사를 비롯한 현재 우리나라에서 진행되고 있는 학생과 학교의 서열화와 충돌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경쟁적인 줄세우기 교육에 반대하는 것입니다.
학생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행복실현입니다. 학교는 이 궁극적인 목표를 이루도록 거쳐야 하는 과정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는 행복에 필요한 충분조건들과 필요조건들이 있습니다. 학교는 이 조건들을 획득할 수 있는 물리적인 공간이며 선생님은 조건을 획득하도록 돕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지금 시행되고 있는 경쟁위주의 정책은 조건을 목표화시키고 있습니다. 교과학습은 행복의 필요조건입니다. 바른 인성은 충분조건입니다. 다양한 체험학습과 풍부한 경험은 필요와 충분조건을 동시에 만족시킵니다. 이러한 조건은 궁극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행(과정)목표인 것입니다. 수행(과정)목표의 역할은 궁극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끊임없는 피드백과 경험에서 지혜를 얻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경쟁교육은 이 수행목표를 서열화시켜 인센티브로 제공하고 있습니다.-인센티브의 부작용에 대해서는 '인센티브는 마약이다.'에서 충분이 주장을 하였기 때문에 다시 강조하는 것은 생략하겠습니다.- 이때문에 최종적으로 달성해야 될 궁극적인 목표는 사라지고 수행목표의 결과에 따라 학생들은 단기적이고 축소된 만족과 좌절을 되풀이되어 학생들의 행복은 점점 멀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센티브는 만족감을 모르는 것이 특성입니다. 해마다 인센티브로 지출해야 될 영역과 액수가 증가함에 따라 낭비되는 세금도 만만찮습니다.
또 정량화 시킬 수 없는 영역까지도 반영시킴으로서 결과에 대한 수긍보다는 분열을 초래하여 학교의 교육력을 저하시키는 것도 아주 큰 폐단입니다.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에서도 창의성을 요구하는 시대적 흐름에 맞추어 당근과 채찍보다는 자기 만족감을 얻기 위한 내재적 동기를 유발하고 자극하는 환경을 조성하고 있습니다.
하물며 미래 인재를 양성하는 학교를 채찍과 당근으로 대표되는 경쟁교육으로 서열화하는 시키는 것은 시대적인 발상의 오류이며 아주 근시안적인 접근입니다. 여러가지 면에서 설득력이 없는 것입니다.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가르치기 싫은 것이 아닙니다. 편안하게 철밥통을 지키기 위한 것도 아닙니다.
학생들을 제대로 가르치고 싶은 열망의 표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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