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4학년 실무실습을 나갔을 때 처음으로 '공문'이라는 것을 접했습니다. 그런데 작성하는 방법이 생소하고 까다롭기도 했지만 컴퓨터가 보급되기 전이라 하나하나 손으로 쓰려고 하니까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처음으로 선생님이 아이들만 가르치는 직업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처음 발령을 받은 학교에서 처음으로 공문을 작성하는데 실수를 않기 위하여 연필로 먼저 쓰고 다시 볼펜으로 작성하기를 수십번을 한 후 결재판에 넣어서 가져갔지만 다시 작성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내용만 통하면 되지 왜 이런 쓸데없는 규칙을 정해서 괴롭히는지에 대한 불만도 생겼습니다. 그러나 정해진 규칙이니까 지켜야만 하고 안지키면 비난만 쏟아지니 지킬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만 해줄 뿐, 납득할 만한 이야기를 해주는 관리자나 선배선생님은 없었습니다.
20년이 흘렀습니다. 아직도 공문때문에 지적을 당하니 씁쓸하기도 하고, 실수로 일어난 오자나 탈자에 자존심을 상해야 될만한 값어치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입니다.
인터넷, 방송, 신문의 신입사원 모집광고란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창의적인 인재를 뽑아서 자신의 재능을 펼칠 수 있는 자율성과 재량권을 부여하겠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입사를 해보면 자신의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영역은 거의 없습니다. 정해진 틀대로 움직여야 하고 어쩌다가 좋은 아이디어를 말하면 상사에 의하여 묵살당하기 일쑤입니다.
학교도 예외가 아닙니다. 교육부는 틈만나면 교육과정 운영에 대한 자율성과 재량권을 학교와 선생님에게 대폭 부여하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교육부나 도교육청이 다 정해주고 반영하도록 강제한 뒤 자율적으로 하라고 합니다. 교육부나 도교육청이 정해준 것만 하더라도 정상적인 교과지도가 어려운데, 어떻게 더 자율성과 재량권을 발휘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우리가 상상하는 재량권과 자율성을 부여받는 직업은 어느 한곳도 없습니다. 기업의 사장이나 CEO도 규제나 법령이 있어 자신이 하고 싶은대로 마음대로 하지 못합니다. 학교 관리자도 법령이 정한대로 해야되기 때문에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다르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업무가 중요할수록, 사회나 다른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이 큰 업무일 경우에는 자율성과 재량권의 남용을 막아야 됩니다. 즉, 재량권과 자율성이 상대적으로 없다는 것은 중요하고 영향력이 큰 업무를 맡고 있다는 뜻입니다.
공문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선생님이 처리하는 공문은 국가의 정책이나 국민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치는 요소이기 때문에 내용을 쉽게 파악하고 취합할 수 있도록 형식이 정해진 공식적인 문서라고 보면 됩니다. 만약에 공문이 일정한 형식이 없다면 내용을 파악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 다양한 해석상으로 많은 부작용도 생길 것입니다. 특히 통계를 위하여 취합을 하는 경우라면 더욱 심각할 것입니다.
다만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것에는 반대합니다. 요즘 웬만한 것은 서버에 데이터베이스화 되어 있기 때문에 공문 필요없이 상부기관에서 인터넷을 통하여 내용 파악과 취합이 가능합니다. 업무 담당자의 편의를 위해서 무조건적으로 학교에 공문을 남발하는 것은 없애야 합니다.
그리고 학교 관리자도 내용파악이나 취합에 문제가 없다면 오자나 탈자에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여 선생님들과 대립하면, 오히려 공문에 대한 부정적인 관점을 더 강화시키는 결과만 초래할 것입니다.
또, 정해진 형식과 규정내에서는 선생님들의 자율성과 재량권을 최대한 보장해 주아야 합니다. 선생님들의 계획과 기획을 존중하지 않고, 선생님들의 창의적인 수업을 관리자의 관점으로 지도하고, 관리자의 관습과 생각만으로 학교를 경영하는 것은 학교의 성장과 발전을 저해하는 것과 같습니다.
선생님들도 자율성과 재량권을 편리함을 추구하기 위하여 기준을 허물고 편법과 위법을 동원하는 것으로 착각하면 안됩니다.
학교에는 공문을 비롯하여 형식을 갖추어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 그것은 선생님들이 그만큼 중요한 일들을 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형식을 강조하여 내용을 등한시하고, 편리를 추구하기 위해 기준을 허무는 것을 자율성과 재량권으로 착가하는 것은 간과해야 합니다.
학교를 비롯하여 어느 직장에도 자신이 원하는 자율성과 재량권은 없습니다.
정해진 형식과 규정을 지키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 좀 더 많은 자율성과 재량권을 부여하는 방법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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