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간섭

임용고사와 교육대학교 방송국의 몰락

멋지다! 김샘! 2017. 9. 16. 10:28

나는 교육대학 방송국 출신이다.
허무한 교육대학교 교육과정이 이해하기 힘듦을 넘어서 고통의 연속일 때 예비교사로서 비판의식을 길러줬던 곳이 대학 방송국이었다.
나쁜 교사의 뿌리인 셈이다.
 
그 시절 나름의 날선 대학 저널리즘이 있었다. 심층적인 분석에 의한 매끄러운 표현의 한계를 갖고 있었지만 부정한 세상을 향한 젊은 패기와 도전은 높았다. 절정이 일 년에 한번 방송제로 나타났다. 이 방송제를 위하여 현직 교사를 만나고 교수를 만나고 학우들과 시민들을 만났다.
간지러운 곳을 긁어주는 방송제는 꽤 인기가 있었다.
 
이런 이유로 방송국에 대한 애착이 깊다. 그리고 임용고사에 의해 총학생회를 비롯한 대학생 자치활동의 황폐화가 방송국도 피해가지 못할 때 그 맥을 잇고 있는 후배들이 대견하였다. 그래서 방송제를 비롯한 방송국 후배들의 격려에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접으려 한다.

몇 해전부터 방송제의 내용이 상업적인 예능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방송제 뒤풀이에서 후배들에게 호된 비판을 가했다.
'대학 방송국은 역할이 있다, 그 역할을 버리고 상업방송을 따라 하는 것은 대학 방송의 역할을 넘어 대학 저널리즘을 포기하는 것이다. 학우들이 그런 것을 요구하더라도 대학 방송국은 그렇게 하면 안 된다. 날선 비판의식과 부정한 현실에 대한 참여에 고개 돌리면 안 된다.'
후배들은 대세라며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고 항변했다. 그때마다 안타까웠지만 분위기를 위해서 참았다.


어제가 올해(2017년)의 방송제였다. 가지 않았다. 대학 예능을 보기 싫었다. 대신 격려를 위해 뒤풀이에는 참여했다.
방송제를 본 교사 후배에게 물었더니 어설픈 예능이었단다. 내가 인사말을 할 차례가 되었다. 모두 긴장한다. 비판의 강도를 예상하지 못해 얼굴들이 불안해 보였다. 불안한 기대를 저버리고 '고생했습니다.'로 끝냈다. 안도의 한숨이 여기저기서 들렸다.
 
후배들이 술잔을 들이댔다. 한두 잔을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는데 단연 임용 절벽이 화제였다.
인구감소에 의한 임용 절벽을 다르게 분석하는 후배들이 다수였다. 근거없는 000 때문이다. 000교사 때문이다를 확실히 믿고 있었다.

학급당 학생 수를 줄이지 않으면 앞으로 임용 절벽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대비해야 된다. 그리고 나는 임용고사 자체를 반대한다. 임용고사가 생긴지 20년을 훌쩍 넘겼는데 교사의 자질이 현저히 나아졌는가? 공부 잘하는 고등학생들이 교육대학생이 되었고 그들 중 일부가 초등교사가 되었는데 이전 교사들과 무엇이 다른가? 공부 잘하는 학생이 교사가 될 필요가 없다. 교사는 충족을 모르는 지적 호기심, 아이들에 대한 사랑, 높은 도덕성을 갖추면 된다. 그 역할을 교육대학교가 해야 한다. 그래서 초등교사가 되기 위해 교육대학교에 입학은 했지만 적성과 소질에 맞지 않아 다른 대학교로 편입하는 학생들이 많도록 해야 한다.
내신 성적이 좋다고 자랑하는 후배가 나에게 '선배님은 임용고사 봤어요?'라고 묻는다.
'이런 씨0놈이 있나!' 이놈은 내가 대학 성적이 좋지 않았어 임용고사 철폐를 주장한다고 항의하는 것이다. 그리고 임용고사가 좋은 교사의 조건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나도 임용고사를 봤다. 다행히 떨어지는 임용고사가 아니었다'로 참고 마무리했다.
 
더 황당한 이야기를 들었다.
방송국 예산을 그때그때 집행하는 것이 아니라 방송국원이 자비로 지출한 후 연말에 영수증을 제출하면 대학이 선별하여 집행한다는 것이었다. 분명 위법이다. 이 문제를 알고 있는 방송국 주간 교수는 조금 전까지 방송국원들 앞에서 생색만 잔뜩 내고 갔다. 그런데 더 어이가 없는 것은 방송국원들이 감내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대학본부로 달려가서 항의하고 시행되지 않으면 위법성을 따지겠다는 농성을 해라했더니 참겠단다. 어쩔 수 없다고 한다. 조금 전까지 임용 절벽을 특정 직업 때문이라고 비난하고, 임용고사가 좋은 교사가 되기 위한 적절한 방법이라고 항의하든 예비교사의 사고 수준이다.
'너네들이 임용고사를 합격하여 교사가 되면 우리 교육의 질이 높아진다고 개똥이다.'
 
귀가하니 이른 다음날이다. 오늘이 개교기념일이고 화가 풀리지 않아서 한 병 더 마셨다.
그래도 잠이 오지 않았다.
'이제 나를 나쁜 교사로 인도한 방송국과는 끝이다'를 되뇌다가 잠으로 빠졌다.
 
지금도 올해의 방송제 뒤풀이를 생각하면 화가 치민다.
그리고 임용고사 철폐를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하나 더 생겼다.
 
임용고사 철폐를 거듭 주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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