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감 일기(2018~)

2020년 7월 5일

멋지다! 김샘! 2020. 7. 5. 13:02

장마 속의 흐린 일요일이다.
아내는 강변에 운동 가고 클래식이 나오는 라디오 틀어 놓고 책을 조용히 읽으려다 묵힌 고민이 정리되어 글로 남긴다.

특별한 기회와 계기로 표변한 경우가 없으면 젊은이와 늙은이는 살아온 세월과 경험의 차이를 극복할 수 없다.
학교 구성원들도 마찬가지다.
늙은이가 젊은이에게 '이 정도는 당연히 되겠지'라고 기대하며 특별한 방법을 안내하지 않는다.
젊은이는 늙은이가 무엇을 요구하고 기대하는지, 그것을 알더라도 그렇게나 중요한지, 어떻게 구현할 수 있는지 아니면 그 방법을 자발적으로 찾으려고 하지 않는다.
늙은이는 젊은이의 이런 태도가 영 못마땅하여 넌지시 물어보면 대수롭지 않다는 말투로 횡설수설한다.
늙은이는 젊은이의 횡설수설이 마음이 안들뿐 아니라 당연히 해야 될 일에 대해 얼버무리는 태도와 그 일을 바라보는 근본적인 교사로서의 가치관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아니 이해할 수가 없다.
젊은이는 자기에 대해 매사 부정적인 늙은이의 언사에 짜증이 난다.
도대체 내가 무엇을 잘못했으며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사사건건 시비를 걸어 수정을 요구하나 속 시원하게 무엇을 어떻게 해달라고 요구하지 않는 오만에 참을 수 없다.
그러나 참을 수 없는 이유가 선명하지 않고 늙은이에 대한 잘못의 경계를 확정할 수 없어서 울화통만 터진다.

늙은이에게 당연한 것이 젊은이에겐 당연하지 않다.
늙은이의 살아온 세월에서 얻은 지혜를 젊은이가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그러면 젊은이가 아니지.
젊은이에게 기대하는 것이 있다면 차분히 설명하라.
차분히 설명하는 과정에서 젊은이의 한계를 느꼈다면 억지로 그 한계를 뛰어넘어라고 끌지 마라.
이런 일들이 반복되어도 한계를 인식하지 못하거나 인식하더라도 한계를 극복하려는 갈망이 없으면 한계에서 멈춰라.
그 젊은이에게는 지금의 상황으로 표변할 수 없다.
그 젊은이가 표변할 수 있는 다른 상황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그동안 여유와 서두르지 않는 것을 같은 의미로 받아들였는데 이제는 다르게 이해한다.

여유가 있으려면 서두르지 않아야 한다.

늙은이가 젊은이에 무언가를 넘겨주려면 서두르지 않고 호흡부터 골라야 한다.

그런 서두르지 않은 호흡이 사리 판단을 너그럽게 하는 마음의 상태로 이끈다.

젊은이도 늙은이를 이기려는 급한 마음으로 늙은이가 부여하는 표변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성급하게 이루려는 호흡부터 고르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표변할 수 있는 계단을 밝고 차근차근 성장해라.
욕심 가득한 성급한 행실로 표변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빈도만큼 늙은이를 이길 수 있는 기회는 멀어진다.

늙은이 중에는 '뭐 저런 늙은이가 다 있을까'라고 생각되는 이가 있다.
운 좋게 권세를 얻었으나 몸이 입을 따라가지 못해 늘 비난의 대상이 되는 늙은이도 있다. 
젊은 날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는 표변의 기회를 마다했거나 그런 기회로 인간으로 성장하기보다 권세를 높이는 수단으로만 삼았기 때문이다.
학교를 변화시키는 젊은이를 바란다면, 학교의 변혁을 이루고 싶은 젊은이라면 표변의 기회를 주고받아라.
머릿속으로 '그렇게 하면 그렇게 되겠네'의 관념적 성장이 아니라 체화하고 체득하여 몸에서 성장이 배어 나오도록 하라.

성장이 배어 나오지 않아서 억지로 짜내고 있었다.
억지로 짜내려니 주변의 일시적인 이상 반응과 본심을 몰라주는 야속한 마음이 더해져서 만사가 주춤거렸다.
예전에는 주춤거린 만큼 늦었다고 서둘렀다.
이제는 서두르지 않겠다.
기회가 오겠지.
체득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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