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감 일기(2018~)

2020년 7월 6일

멋지다! 김샘! 2020. 7. 6. 15:49

요즘 피는 꽃들 중에 자귀나무 꽃과 무궁화를 제일 좋아한다. 요즘은 자귀나무를 정원에서도 볼 수 있지만 예전에는 냇가, 논두렁, 밭두렁, 산 어귀에서 띄엄띄엄 작은 것부터 아주 큰 나무까지 볼 수 있었다. 자귀나무 꽃 너머로 모내기 한 논을 바라보거나 모내기 한 논으로 축 널어진 거대한 자귀나무 줄기의 꽃이 물그림자로 비친 모습을 참 좋아한다.
무궁화는 아쉬움이 많다. 지나치게 촘촘하게 심어서 울타리로 만들었거나 해마다 윗동을 잘라서 그 본모습을 알 수 없게 한 무궁화가 학교에 많다. 예전에 한창 무궁화 심기를 한 후 방치되어 길가에 집 주변에 띄엄띄엄 자라는 무궁화가 있다. 가지치기를 하지 않아서 다소 산만하지만 가지마다 선명하게 활짝 피어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무궁화를 바라보노라면 인간에 의한 왜곡된 무지를 바라 잡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깨닫는다. 시골 농가의 앞마당에 장미보다 선명하고 깔끔한 무궁화가 주렁주렁 달린 모습을 보면 저게 무슨 꽃인가 하여 다시 되살펴 볼 것이다. 수양 벚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교장이 되면 무궁화 거리두기로 본래의 아름다운 무궁화의 모습으로 되돌릴 것이다. 우리나라 꽃이지만 정말 아름답다.

학부모는 자녀를 학교를 보낸 국민이기도 하지만 자녀가 다니는 학교의 학생들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되는 학교 구성원이다. 학부모의 작은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본인 잘남을 뽐내기 위해서 교사를 힘들게 하면 안 된다. 조금만 생각하면 그 정도의 판단은 가능하고 학부모의 이기를 학교에 요구할수록 교사가 자녀에게서 멀어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나는 우리 학교 학생들과 교사들을 최우선적으로 생각하는 이기적인 교감이다. 외부의 요구가 우리 학교 학생들에게 불리하고 교사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하면 거절한다.
법으로 정한 학교장의 권한이 있다. 그 권한도 우리 학교 학생들, 교사들, 학부들을 먼저 생각하여 행사되어야 한다. 오늘 현 시국과 우리 학교의 여건 등을 고려했을 때 우리 학교에 불리한 요구가 예상되는 일이 있었다. 교장 선생님에게 보고하고 의논했는데 우리 학교를 위한 결정을 해주셨다.

학부모의 많은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이벤트성 학부모 모임은 초기단계이다. 초기단계에 계속 머물러 있으면 초기단계의 쾌락을 위한 물질적인 요구와 학교의 사정을 헤아리지 않는 막무가내 요구가 많아지고 학교는 그 요구를 부당해하면서 수용하는 척한다. 수용하는 척하는 것이 교사들은 분통이 터진다.
초기단계의 학부모 모임을 건전하고 창의적인 비판자의 시선으로 학교교육에 참여하는 동반자가 되도록 해야 한다. 실현하는 방법은 투명성과 솔직함이다. 학부모의 요구가 있기 전에 먼저 공개하고, 학생들의 교육활동을 위해 애쓰는 교사들의 모습이 알려져야 하고, 학부모들의 정당한 절차에 의한 요구는 하찮더라도 정성껏 설명해야 한다.
우선 조금 편하고 사소한 실리를 추구하자며 얼버무리거나 비난받을 수 있는 학교의 선택은 얼마 가지 않아서 더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애초에 당당해질 수 없는 빌미를 제공하면 안 된다. 좋은 게 마냥 좋지는 않다.

학부모 교육이 학부모 취미생활로 변질되는 것이 안타깝다.
학생들의 올바른 성장과 발달을 위한 건전한 동반자가 되는 학부모 교육이 필요하다.
학부모들도 자녀의 바른 교육을 원한다면 수동적인 요구보다 능동적으로 변화하는 학교 구성원이 되어야 한다. 
최소한 학생 알림장은 매일 봐야 하고 혹시 자녀가 실수로 빠뜨린 내용은 없는지 학급과 학교 홈페이지를 체크하는 성의는 있어야 한다. 바쁘다는 이유로 자녀 교육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 결과를 학교와 교사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만큼 무성의한 자녀교육은 없다. 

부담: 교감 일기의 취지는 교감의 고충을 알아달라는 교감 변호가 목적이 아닌 학교의 당당한 구성원으로서 함께 학교의 변혁을 실천하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비공개로 시작하지 않았다. 비교적 큰 학교와 현재의 작은 학교를 근무하면서 교감의 업무를 중복 없이 다루려고 노력했다. 올해부터는 정책이나 교육활동에 대한 비평이 주를 이루고 있는데 현재 재직하고 있는 학교가 간혹 글감이 되기는 하지만 상관성은 떨어진다. 혹자는 억지로 관련시켜 불편한 소문을 내기도 하지만 그런 것까지 통제할 수 없다.
독자가 늘어나면서 자체 검열의 압박이 심해지고 글자 하나의 의미에 남다른 애정을 쏟는 것이 여간 부담스럽지 않다.
교감 일기의 이면에 숨은 뜻은 없다. 행간이 전하는 말이 전부다. 본인의 뜻과 맞으면 함께 실천하자. 그것이 교감 일기를 덜 부담스럽게 한다. 그리고 비판은 언제든지 환영한다. 교감일기의 성장으로 이어지는 논증을 두려워하거나 마다하지 않는다. 하찮은 일기를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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