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교육대학교 동창 회지 두류인의 편집자로부터 내 인생의 후배라는 주제로 원고 의뢰가 있었다. 원고 청탁을 싫어해서 주변의 신문 칼럼 권고도 마다하고 있는데, 거절할 수 없는 친구와 선배가 전화로 나와 어울리지 않는 전혀 사실이 아닌 말로 여간 꼬드기지 않아서 불편한 마음으로 수용했다. 나의 이야기보다는 후배의 이야기에 집중해 달라는 편집자의 특별한 요구도 있었다.
내 인생의 교직 후배가 있었던가?
첫 발령부터 지금까지 만난 후배들을 머릿속에 소환하여 책장을 넘기듯 찬찬히 살펴보며 과연 '내 인생'이라는 말을 붙일 수 있는지를 고민했다.
세 후배가 떠올랐는데 한 후배는 아직까지 용서가 안 되는 후배인데, 어떤 이는 선배가 먼저 손을 내밀라고 하지만 사이가 틀어진 결정적인 일이 있기 전까지 남들이 뭐라 해도 감싸줬는데, 결정적인 그날에 그 남들에게 하는 것과 똑같이 나를 대하는 것을 보고 일말의 희망에 대한 미련을 버렸다. 결정적인 그날의 일을 진실한 마음으로 용서를 구한다면 용서는 하겠지만 후배로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두 번째 후배는 교직을 그만두기 일보 직전에서 나의 말을 믿고 지금은 자기 삶을 잘 꾸리고 가는 후배다. 교원대학교에서 박사 과정을 끝해를 보내고 있는데 간혹 전화하면 예전과 달라진 목소리에서 한고비 잘 넘기고 참 잘 살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한다. 내년에 현장에 복직하면 소고기에 소주 한 잔 얻어먹으며 내가 네를 살렸노라고 큰소리 칠 것이다. 이 후배의 이야기를 원고로 작성해야겠다. 물론 익명으로.
세 번째 후배는 경상남도산촌유학교육원에서 처음 만났는데, 내 얼굴 보고 무섭다고 하면서 진작 자기는 나보다 더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숙소 101호 취사실에서 하루하루의 피로를 풀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때가 참 아련하고 그립다. 항상 가족을 먼저 생각하고 계획이 없는 듯하면서 계획적인 삶이 부러운 후배다. 가끔 뼈 있는 말로 슬쩍 질책할 때면 머리가 띵했고, 두 번 다시 띵한 감정 갖기 싫어 슬쩍 던진 말을 가슴에 새겼다. 그 후배 덕분에 지금 아내에게 그나마 대우받고 산다. 코로나 19가 종식되면 마음 편하게 자주 만나야 되는 후배다.
이하는 원고 내용이다.
"선생님! 미립이 엄마입니더."
"예? 죄송하지만 전화를 잘못하신 것 같습니다. 저는 현재 산촌유학교육원에 파견을 나와서 직접 학생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선생님 거기 아이고예, 우찌 말해야 되노! 선생님이 미립학꾜에 있을 때 차 탱기고 다녔던 미립 선생 엄마입니더."
"아, 그런데 우짠 일로 전화하셨습니꺼?"
"선생님! 우리 미립이가 학교를 그만둔다고 난리가 아닙니다. 병원에서 우울증 진단서까지 받아서 병가와 병휴직 다 찾아묵꼬는 선생이 자기 적성에는 도저히 맞지 않는다꼬 그만둔다 캅니다."
아침저녁 쌀쌀한 산촌의 바람이 살갗을 스치지 못하게 겉옷을 남들보다 일찍 입어야 되는 초가을의 오후에 난데없는 전화를 받았다. 출근하는 길목에 살고 있었던 독특한 매력을 지닌 신규 교사를 한참 동안 태우고 다녔는데, 그 엄마의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눈물이 섞인 다급한 목소리였다. 일전에 들은 이야기가 있어서, 미립이하고 엄마하고 충분한 대화를 한 후 결정했다고 들었는데 어찌 된 사연인지 천천히 말해달라고 했다.
어느 날 미립이가 초등학교 교사가 적성이 맞지 않아 그만두고 싶다는 해서 안 된다고 했는데, 그 뒤 병원에서 우울증 진단서를 발급받아 병가와 병휴직을 다 사용해서 이제는 학교를 다니든지 아니면 의원면직 말고는 어쩔 도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교장선생님과 교감선생님이 많은 노력을 했지만 다 허사였다며 마지막으로 내 말은 들을 것 같아서 전화를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결코 미립이가 학교를 그만두는 꼴은 못 보겠다고 했다.
상투적인 위로로 전화를 끊고, 원적교의 후배와 그 지역에 살고 있는 후배에게 자초지종을 파악했다.
미립이가 학교를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너무 강해서 어느 누구의 말을 듣지 않는다. 무엇보다 그 지역에서 미립이가 정신이 이상해서 학교를 그만둔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 있는 상태였다. 학교는 그만두더라도 정신 이상자로 낙인을 찍혀서 그만두는 상황은 반드시 바로잡아야 된다. 가뜩이나 좁은 지역인데 이 상태로 학교를 그만두면 어디 가서 얼굴이나 들고 다니겠나 무엇보다 부모님은 또 어쩌고.
원적교의 후배에게 부탁해서 산촌에서 나가는 주말에 미립이가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미립이를 꼭 만나도록 해달라고 했다. 그리고 미립이에게도 전화해서 학교를 그만두는 것에 대해서는 네 뜻을 존중하겠는데 이런 식으로 그만두는 것은 절대 동의할 수 없으니 약속된 시간과 장소로 나왔으면 좋겠다고 강력하게 당부했다.
만났다.
후배, 원적교 후배, 나 셋이어서 술잔을 약하게 들이켰다.
미립이 엄마가 나에게 전화한 것을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그리고 엄마의 부탁도 있지만 나도 할 말이 있으니 우선 학교를 그만두고 싶은 이야기부터 들어보자고 했다.
"선생님, 아이들을 매일 대하는 것이 두렵습니다. 뭔가 잘해줘야 하고 잘 가르쳐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것이 정말 죄스럽고, 다툼이 있어도 어떻게 말해야 될지 모르겠고, 상담을 해도 무슨 말로 위로를 해야 할지, 성적이 나쁜 아이는 또 어떻게 가르쳐야 되는지? 매일매일 난감하고 저에게 정말 실망스럽습니다."
"우울증 진단서를 발급받고 병가, 병휴직 다 사용했다던데 엄마하고 상의는 하고 그렇게 했나? 실제로 네 상태가 심각하나?"
"그런 갈등을 겪고 있는데, 모두들 하는 말이 학교는 그만두지 말라는 이야기만 하니 일단은 학교를 쉬고 보자는 심산으로 그렇게 했는데 머리가 혼란스럽기는 하지만 그런 단계는 아닙니다."
"야이 씨! 지역에서는 정신 이상자로 학교를 그만둔다는 소문이 파다한데 멀쩡한 놈이 그렇게 해서라도 학교를 떠나야겠나? 그래 갖고 어떻게 고개 들고 다닐 건데 그리고 네 엄마는 무슨 죄고? 그만두면 하고 싶은 일은 있나?"
"철학 쪽으로 공부해서 대학 교수를 하고 싶습니다."
"그러면 대략적이라도 계획은 세웠나?"
"아직... 학교 그만두고 생각해 볼낍니더."
"니 내 말 끊지 말고 끝까지 듣고 판단은 네가 해라. 내 말 들어줄래"
"예, 안 들어주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인데 들어야죠. 그리고 선생님이 대충 어떤 말을 할 것인지 알고 있어서 부담스럽지 않게 들을 수 있습니다. 편하게 이야기하십시오."
"우선 부모 입장으로 이야기하면 네가 초등교사에 거부감을 갖지 않아서 지금까지 너를 믿고 있었는데 이렇게 난데없이 자식이 정신이상자라는 오명으로 학교를 그만두게 된 상황에 처한 부모님의 마음을 상상이나 해봤나? 우선 그 오명부터 씻고 학교를 그만두던지 하고 부모님께도 정신이 멀쩡함을 증명해라."
"선생님이 잘못 알고 있으신 게 있는데, 교대 다닐 때부터 초등 교사하기 싫어서 학교 다니기 싫다고 여러 번 이야기했습니다. 일단은 정신 건강과 관련된 문제는 최대한 오명을 씻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철학 교수에 대한 꿈이 있으니 현직 교사를 하면서 교수가 되는 길을 안내할 테니 한 번 생각해봐라."
"선생님 그렇게 미련을 두면 나태해질 것 같아서 그만 두려는 것입니다."
"그럼 더 솔직하게 이야기할게. 우리나라에 철학 교수 자리가 일 년에 몇 자리 나 빌 것 같니? 그리고 그 자리를 오르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밤낮으로 공부하고 있을 것 같니? 출발선에서 현격한 차이가 나는 네가 어떻게 그 사람들과 경쟁하여 그 어려운 자리에 오를 수 있겠니? 내 이야기는 교직의 전문성을 살리면서 대학교수가 되는 어려운 방법이니 일단 들어나 봐라."
교원대학교 석사 과정으로 파견 가는 방법과 연장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하는 방법을 개략적으로 안내하고 도전할 의사가 있는지를 물었다. 생각을 해보겠다고 했다. 집에 가서 부모님부터 다 다독거릴 것을 거듭 부탁하고 헤어졌다.
며칠 뒤에 도전하겠다는 전화가 왔다.
그래서 일단 소문이 좋지 않은 그 지역을 떠나서 정서가 완전히 다른 지역의 학교에서 근무하기를 권했더니 그럴 생각이었다고 했다. 생각보다 빠르게 교원대학교 석사 과정으로 파견 갔고 이제는 박사 학위를 받을 끝자락에 와 있다.
공부를 하던 중간에 미립을 몇 번 만났는데 얼굴과 목소리가 참 맑았다. 어눌한 목소리가 한결 매력적이었고 그 속에서 느껴지는 고민의 흔적과 치열한 공부의 성숙이 나를 압도했다.
미립이를 만날 때마다 입속에만 담고 있는 말이 있다. 대한민국 초등교사 중에서 나는 초등교사가 천직이야라고 자신하는 교사가 몇이나 될까? 천직이 아니어서 마음만큼 능력이 안 되어서 학교를 그만둬야겠다고 생각 안 해 본 교사가 몇이나 될까?
어떤 이가 이야기하더라. 선생이 싫다 하는 사람에게 억지로 선생 하라고 시키는 것도 맞지 않다고. 하지만 나는 그런 고민을 하는 것 자체가 훌륭한 교사의 자질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너의 학교생활은 결코 초등교사로서 모자라지 않았다.
부탁한다.
꼭 교수가 아니어도 초등학교에서 네가 해야 될 역할이 있다. 박사 학위를 썩히지 말고 현장 연구 충실히 하여 유명한 학회의 주도적인 회원이 되기를 바란다. 초등교원의 생각과 실천을 연구하여 이론을 정립하는 전문직 초등교원의 본을 보여주기 바란다. 내가 그런 연구의 협력자나 조력자가 되는 날을 은근히 기대한다.
미립아!
너의 고민이 한순간의 스쳐가는 객기가 아니었음을 증명해줘서 정말 고맙고, 나도 너의 묵직한 고민과 우직한 끈기를 배워서 객기가 되지 않는 삶을 사려고 노력하는데 네만큼은 안 되네.
네가 대학원 가고 나서 네 엄마가 스승의 날에 소고기를 보냈더라. 정말 맛있더라 박위 학위 받으면 네가 사주는 소고기에 소주 한잔 하고 싶다.
교무행정원 두 분이 연수를 위한 재택근무를 하게 되어서 교무실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덕분에 원고도 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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