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감을 하면서 제일 힘든 게 업무가 아니라 사람 사이를 조율하는 것이다.
사실 사람 사이를 조율한다는 게 어불성설이다.
기계도 아니고 악기도 아닌 마음을 가진 인간을 조율하려는 자체가 오만이다.
복무에 대한 각자의 주장으로 다툼이 많다.
마치 교감이나 교장이 법령을 위반하며 극단적인 교직원의 편익을 도모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말할 가치도 없는 주장이지만.
법령 해석은 법제처가 하는 거고 교감이나 교장은 법령의 준수가 제 역할이다.
법령은 인정의 문제가 아니라 어기면 책임을 지는 강제다.
그래서, 어떤 교감이든 교장이든 법령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현실적이며 직접적인 손해인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다. 지극히 정상적인 인간의 마음이다.
교묘하게 이용하려는 이들이 있다.
법령으로 보장된 규정을 최대한 다 챙겨 먹을 거면서, 학교 사정 운운하면서 교감이나 교장이 결정 내려 주기를 바란다. 교감이나 교장이 자기 마음에 안 들게 결정 내려 주면 그대로 따를 것인가? 이런저런 법령과 지침 인용하며 또 성가시게 할 거고 설령 따른다고 하더라도 온갖 곳을 찾아다니며 교감과 교장을 욕할 거면서.
실익을 다 챙기면서까지, 교감이나 교장을 나쁜 인간으로 만드는 이유를 모르겠다.
그냥 법령이 정한 대로 자기 권익 찾으면 깔끔하게 해결되는데, 누가 뭐라고 한 것도 아닌데 왜 착한 인간 코스프레를 하는지 모르겠다. 갈등만 일으키는 그런 복잡한 생각보다 가르치는 학생들로 생각이 복잡하면 좋겠다.
코로나19 범유행의 앞이 보이지 않는 새카만 긴 터널을 지나면서 느끼는 게 있다.
학교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어떤 직종보다 정말 사명감과 책무성이 강해야 한다.
코로나19 범유행과 유사한 고통이 종종, 다급하게, 막막하게 다가올 것이다.
그럴 때마다 학교는 그 어느 곳보다 힘들 것이다.
이번 범유행을 견디지 못할 고통과 공포로 여기며 ‘나 먼저 이해해 달라!’는 학교 구성원은 자기를 먼저 알아주는 곳으로 옮겨가면 좋겠다. 그런 곳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전문성! 전문성! 운운하면서 전문성을 발휘해야 할 때 자기만의 특수성을 이해해 달라며 재빠르게 뒷걸음질 치면, 어느 누가 입에만 발린 전문성을 인정해 주겠나.
청와대를 안 들어가는 게 국민 소통 강화로 여기는 게 뭔지 모르겠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소통의 방법은 무궁무진한데, 마음의 문제인데, 공간 청와대가 뭔 잘못인지. 그리고 청와대에 살다가 공간 청와대가 소통의 걸림돌이면 그때 방법을 찾아도 되는데, 청와대를 국민에게 돌려주면 국민이 청와대에 가서 뭘 할 건데. 내가 살 수 있는 내 집도 아닌데… 터의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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