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감 일기(2018~)

2022년 3월 21일

멋지다! 김샘! 2022. 3. 21. 18:29

1.
그래, 제아무리 추워봐라 봄이 물러가나!
이미, 사방은 꽃인데

그래, 제아무리 냉기를 뿜어봐라 온기가 물러나나!
이미, 내 마음은 웃음꽃인데

봄이다
봄처럼 살아보자
함께.

2.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 참 많이 들은 말이다.
학교 공간 재구조화나 공간혁신에 관련된 연수나 협의회에서 건축가나 건축가와 거래 관계에 있는 업자들이 늘 하든 말이다.
설핏 들으면 ‘아하! 그렇구나!’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공간을 사용하는 인간의 의지를 대입하면 신자유주의자들의 돈벌이 수단에 동원된 감성적인 언어일 뿐임을 알 수 있다.
공간을 지배하는 것은 인간의 의지다.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는 논리는 인간을 호모 사피엔스 이전의 인간종으로 퇴행시키는 언어다.
건축은 인간의 의식과 의지가 물리적, 심리적 환경과 교류하며 실천한 문명이다. 그래서 다 아시다시피 시대와 나라(장소)에 따라 건축은 다르다. 이를 두고 어떤 나라가 우리나라보다 잘 살거나 잘하는 게 공간을 경계 짓고 분할 한 건축 때문이라고 하는데, 실상은 인간의 인식과 사유가 그런 공간을 창출한 것이다.
물론 어느 정도의 기능적인 공간이 마련되어야 그런 의식도 생긴다고 한다. 물론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런 기능적인 공간을 더 기능적으로 만드는 것은 그 공간을 기능적으로 사용하려는 주체, 즉 인간의 의식이다.
학교 공간 재구조화나 공간혁신이 비난받는 이유는 그 공간을 사용하는 주체인 학교 공동체를 객체화하고 그 공간을 창조하는 업자인 객체를 주체화했기 때문이다. 그런 결과로 재구조화를 재구조화하고 혁신을 재혁신하는 모순에 직면할 것이다. 이것을 변증법에 따른 발전이라 우기면 어쩔 수 없고.
주체가 객체화되어 창조된 공간에서 어떻게 주체성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를 다르게 해석하면 ‘공간으로 의식을 지배할 수 있다.’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는 대단히 위험한 주술적이고 독재적인 사고거나 기껏해야 마르크스의 역사적 유물론에서 그 바탕을 찾을 수 있을 것인데, 마르크스조차도 물질의 결과인 경제가 의식을 일의적(一義的)으로 결정한다고 하지 않았다.
인간과 공간은 관계이지 지배의 논리가 아니다.

나는 ‘공간’이라는 낱말보다 ‘지배’라는 낱말이 더 크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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