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이 시작되던 어느 날, 어머니 방에 창문형 에어컨을 설치하기로 한 후, 어머니에게 알려더니 극구 사양하셨다. 당신은 전혀 덥지도 않고 저녁에는 산바람으로 춥다고 하시더니, 저녁을 먹은 후에는 겨울 이불을 꺼내 덮었다. 머리끝까지 치미는 화를 아슬아슬하게 억누르며, 올여름은 다른 여름과 달리 엄청 더워서 에어컨을 사용해야 하고, 두 아들이 집에 오면 할머니방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건데 할머니방이 더워서 못 들어가겠다고 하면 되겠냐고 했더니, 마지못해 수긍하셨다.
설치했더니 생각보다 툭 튀어나와서 방이 좀 갑갑했다. 어머니에게 에어컨을 작동과 창문 여닫는 방법을 설명하고 낮에는 무조건 틀라고 신신당부했다. 에어컨 틀고 방이 갑갑하게 느껴지면 방문을 열어둬도 요즘 에어컨은 전기요금이 얼마 안 나온다고도 했다. 그래도 몰라서 같은 아파트에 사는 누나에게 낮에 들러서 에어컨을 틀어 달라고 부탁했다.
여름방학을 했다. 일주일의 이삼일은 집에 있었다. 지은 지가 꽤 오래된 언덕에 있는 고층아파트라서 창문을 마음껏 열어 두면 강바람과 산바람이 불어와서 꽤 시원하다. 그래서 아래층의 에어컨 실외기의 후끈한 열기가 올라오기 전까진 읽고 쓰는 데 지장이 없다. 문제는 아내와 내가 본격적으로 더워지는 한낮에 외출하거나 해가 어머니 방 쪽으로 넘어가서 어머니 방이 후끈거리면 에어컨을 트는데, 그럴 때마다 어머니와 크게 실랑이했다. 선풍기를 다리 사이에 끼고 연신 부채질하면서도 에어컨만은 극구 틀지 않겠다며 고집을 피우셨다. 우리가 집에 있을 때는 매번 실랑이하는 게 싫어서 거실 에어컨을 틀고 어머니 방 쪽으로 선풍기로 시원한 바람을 보내면 어머니가 방문을 닫아 버렸다. 솟구치는 화를 입을 꽉 다물어 참아내고는 방문을 우악스럽게 열어젖히고 시원한 바람을 밀어 넣었다.
여동생에게 신세를 한탄했더니, 동생이 일정한 나이가 되면 의무적으로 하는 검사라고 속여서 일차와 이차 두 번 검사했는데 치매가 아니었다. 고집이 어마어마하게 센 것일 뿐이다. 안심되면서도 올여름을 나기 위해 실랑이할 걸 생각하니 온몸이 후끈거렸다.
아내와 군산, 목포, 진도, 완도, 거문도 3박 4일 여름 기행을 계획했었다. 어쩌면 어머니 걱정 덜하며 여름 기행을 하기 위해 어머니 방에 창문형 에어컨을 설치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머니 고집으로 어머니 건강이 걱정되어 누군가는 거실 에어컨을 계속 틀어야 하니 여름 기행이 수포로 돌아갔다.
어머니도 우리가 집에 붙어있는 게 달갑잖아하는 것 같아서 방의 에어컨을 틀면 나가겠다고 했더니 방이 추워서 이불을 덮을 정돈데 뭐하러 틀겠냐며 되레 내게 세상 물정 모르고 나잇값 못한다며 화를 돋웠다..
아내에게 도저히 참을 수 없으니 어디라도 가자고 했다. 누나와 여동생에게 낮에 집에 들르라는 부탁을 하고 어디라도 가자고 했다. 어머니에게 이틀 동안 어디 갔다 오겠다고 했더니 빨리 떠나라고 해서 짐을 바로 챙기는데, 아내는 기다려보라며 어머니 방에 있는 전화기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반찬이 있는지, 그래도 걱정되어 얼른 나가 마트에서 전복을 사서는 죽을 끓였다.
떠나는 우리의 뒤통수에 대고 절대 누나와 동생에게 집에 오라는 전화하지 말라고 했다. 아내도 날씨를 보고 부탁하자고 했다.
국도와 지방도를 타는 기행을 좋아한다.
천천히 국도를 달려 무작정 함양 상림공원을 갔더니 사람들은 9월 초의 산삼 축제 준비로 분주했고, 관광객들은 화려한 여름꽃에 감탄하느라 분주했다. 상림공원을 즐겨 찾는 우리에겐 새삼스러운 풍경은 아니었지만, 보라색 버들마편초의 대 군락을 보는 순간 눈이 별안간 커지고 말았다.
국도를 따라 담양 죽녹원으로 가다가 눈에 띄는 곳이 있으면 들리기로 했다. 남원이라 적힌 교통표지판을 보고 광한루에 가보겠냐고 했더니 그러자고 했다.
이천 원을 주고 광한루 주차장에 겨우 주차한 후 늦은 점심을 먹으려고 여러 추억이 있는 광성 식당에 갔다. 막걸리의 유혹을 힘겹게 물리치고 백반을 기다리며 이 식당과 광한루에 얽힌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때는 세상의 많은 일이 나와 관계없어서 별것이 아니어서 막걸리 한 잔의 취기로 고집부리는 선배들을 이해할 수 없었는데, 지금은 그 별것 아닌 일에 신경을 쓰며 제발 나와 관련 없기를 바라고 있다.
무더위에도 광한루를 찾는 사람들이 많았다. 군데군데 춘향전의 장면을 조형물로 만들어 사진 찍을 수 있도록 한 것과 미터급으로 자란 잉어 말고는 별다른 게 없었다. 팽나무 그늘도 여전히 시원했다.
죽녹원은 처음이었다. 대나무밭은 우리나라 곳곳에 많아서, 내가 사는 진주에도 운치 있는 대나무 숲 길이 여러 군데여서 먼 죽녹원을 굳이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었다. 길 양옆에 빽빽이 주차한 자동차를 이상히 생각하며 죽녹원 주차장을 찾아가는데 웬 사람들이 이렇게 많을까? 주차 공간이 없어서 겨우 돌아 나와 먼 공용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는 터벅터벅 걷는데 정말 웬 사람들이 이리 많을까? 내가 생각하는 대밭과는 다른 뭔가가 있나? 두 번 다시 오지 않으려고 죽녹원 대밭길을 사진 찍느라 여념이 없는 빽빽한 사람 사이를 마스크를 쓴 채 꼼꼼하게 걸었다. 이곳이 왜 유명할까? 대나무 아이스크림은 녹차 아이스크림과 맛의 차이가 없었고, 대나무 꽈배기도 그냥 그랬다. 대성분이 들어가서 그냥 그런 게 아니라 꽈배기 자체가 그냥 그랬다. 징검다리를 건너 올라오니 둑 따라 늘어선 국수 거리의 평상 위의 찌그러진 양은 상에 반쯤 남은 막걸리 잔을 훔쳐 먹고 싶은 욕구가 일었다. 체면에 어찌 그러겠는가?
계획 없이 시작한 기행이라 잘 곳을 정하지 않아서 정히 잘 곳이 없으면 광주로 갈 생각까지 하며 숙박 앱을 살폈는데 겨우 허름한 곳을 예약했다. 유명한 연예인까지 왔다 갔다며 방앞에 싸인까지 붙여놓았는데,, 정말 허름하고 웬만하게 깨끗하지 못해서 아무것도 손대기 싫었다.
담양까지 왔으니 후회할 것을 각오하고 떡갈비와 대통밥을 먹기로 했다. 현지인도 꽤 식사를 하고 있는 식당에서 세트 메뉴를 시키곤 대나무 잎 막걸리를 마셨는데 특별하지 않았다. 정말 오래간만에 배부르게, 더는 먹을 수 없을 정도로 배부르게 먹었는데도 남겼다. 후회하지 않기로 하고 시켰기 때문에 음식 맛을 따지지 않았는데, 계산하는 아내 뒤를 보니 세트 메뉴를 먹는 현지인은 없었다.
일찍 푹 자고 일찍 일어나 메타세쿼이아 길로 갔다. 사진 찍는 연인, 빠른 걸음으로 운동하는 동네 아줌마,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아이들 졸졸 따라다니며 사진 찍는 부부, 적당히 떨어져 구부정하게 뒷짐지고 느릿하게 걷는 노부부, 부모와는 별개로 연신 좋다며 호들갑 떨어대는 가족을 스치며 천천히 걸었다. 메타세쿼이아 밑동 따라 촘촘하게 핀 보라의 맥문동과 초록의 잎이 잘 어울렸다. 뜻밖에 좋아하는 가수 김정호의 노래비 옆에서 잘 안 찍는 사진을 아내에게 부탁했더니 웬일이냐는 눈치였다. 십 년을 일 년처럼 압축해 살았던 그의 노래를 좋아한다. 김광석이 자기 시대를 그대로 노래했다면 김정호는 십 년을 압축하며 먼저 산 농익은 감정으로 자기 시대를 노래했다. 남도의 정서까지 더했다. 노래방에 가면 늘 그의 노래 ‘하얀 나비’를 부른다.
메타세쿼이아를 배경으로 아내를 여러 각도에서 찍었다. 마주 오는 사람에게 부탁하여 부부 사진도 찍었다. 같이 찍은 몇 안 되는 사진일 것이다. 다음 기행에는 둘째 아들이 남겨 둔 셀카봉을 꼭 챙기자며 서로 약속했다. 일찍 온 덕분에 입장료를 내지 않았다.
아내가 꼭 가보자던 소쇄원은 정말 좋았다. 소쇄원을 오르는 길 따라 난 작은 계곡으로 자작자작 흐르며 재깔이는 물소리에 귀 기울이며 조용히 걸었다. 아내는 물이 좀 더 흐르면 좋겠다고 해서 평소 이보다 많이 흐르면 비가 많이 오면 범람할 것이다. 이런 것까지 ‘양산박’이 생각했을 것이라 했더니 대꾸하지 않았다. ‘그래 니 잘났다. 참말로!’ 소쇄원 뒤, 언덕배기에 하늘로 쭉쭉 뻗은 소나무 아래에서 하늘을 쳐다봤다. 무더운 여름과 어울리지 않은 새파란 하늘 위에 소나무우듬지를 요리조리 피하며 빠르게 달려가는 하얀 뭉게구름! 감흥으로 글을 쓰려고 카메라부터 들이대는 습관을 버렸는데, 요란하게 들끓으며 흘러넘치는 감흥을 저장할 카메라를 다시 메고 다녀야겠다고 생각했다. 식어가는 감흥을 아쉽게 성능 좋은 아내 휴대폰에 담았다. 근처에 읽고 쓰는 집 하나 장만할까 했더니 역시 말이 없다.
창평국밥을 먹으려 가다가 창평면 소재지에 다다라서 양조장이 보였는데 주저하다가 지나쳤다. 로터리에서 다시 돌아가서 맑은 술을 찾았는데 막걸리만 팔아서 세 병만 샀다. 하필 가는 날이 장날이라 국밥집마다 문전성시였다. 입소문이 난 국밥집은 땡볕을 조금이라도 피하려는, 통행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사람들로 똬리를 단단히 틀고 있었다. 똬리 끝에서 국밥 냄새를 맡는 고문을 피하려고 비교적 덜 붐비는 국밥집을 골라서 들어갔다. 역시 창평국밥이었다. 시원하니 맛있었다. 맛 평을 잘하지 않는 아내가 먹는 내내 맛있단다. 내 그릇의 건더기 몇 점을 얹어 주었더니 종종 와서 창평국밥집의 국밥을 모조리 먹어보잖다. 시장을 간단히 둘러보고 길가에 자리한 왕 꽈배기를 튀기는 트럭으로 갔다. 왕 꽈배기와 도넛을 세트로 사서 근처에 있는 창평 슬로시티에 차를 세우고 돌이 섞인 흙담 아래 시냇물이 졸졸 흐르는, 친절한 안내판과는 다르게 자물쇠로 문을 걸어 잠근 고택을 기웃거리며 정리정돈과 정비를 참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사람들로 가득한 한옥 카페를 쳐다봤다. 오도재를 거쳐 집으로 오려고 함양으로 가는데 왕 꽈배기가 생각나서 아내에게 달라고 했다. 이야! 인생 꽈배기였다. 주인이 유명한 꽈배기라며 너스레를 떤 이유가 있었다. 온기가 있는 도넛도 정말 맛있었다. 위가 약해서 밀가루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 아내가 또다시 창평 장날에 맞춰서 가자고 했다.
오도재는 그냥 천천히 올라 쉬지 않고 지나쳤다.
남은 꽈배기를 안주 삼으러 집 근처 협동조합에 들러 산청 맥주를 사서 집에 도착하니 어머니가 누그러진 말투로 학교 안 가면 하룻밤 더 자고 오지 그랬냐고 하셔서 내일 학교 간다고 했다. 아내가 저녁을 겸하는 왕 꽈배기와 산청 맥주, 전복죽을 담은 앉은뱅이찻상을 내려놓는 소리에 잠을 깼다. 씻고 거실 소파에 누웠다가 그새를 못 참고 졸았다.
어머니는 아내가 만들어 놓은 전복죽은 드시지 않았다. 짜증이 났다. 이유를 알지만, 이제는 안 그래도 된다고 주야장천 얘기해도 허사다. 도대체 왜 그러실까? 소리 없이 짜증 내는 아내를 달래지 않고 맥주만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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