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감 일기(2018~)

2022년 9월 6일

멋지다! 김샘! 2022. 9. 6. 19:30

새벽에 일어나 창밖의 뒷산을 내다보니 대나무와 소나무가 거친 바람으로 출렁였다. 살짝 창문을 열다가 훅 치고 들어온 바람에 깜짝 놀랐다. 뉴스를 보니 우리 지역이 태풍의 영향권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출근길의 도로에는 밤새 바람에 시달렸던 나뭇잎들이 예초기의 날카로운 칼날에 베어진 듯 널려있었고, 설익은 연두를 머금은 살구색 은행열매가 뭉터기로 떨어져 자동차 바퀴에 뭉개져서는 고약한 냄새를 풍겼다. 쓰러진 몇 그루의 나무는 벌써 정리되어 차량 통행에는 지장이 없었다. 원격수업을 위한 교사의 재택근무 영향인지 도로는 한산했다.
학교에 도착하니 찢어진 잎들로 어지럽혀진 통행료를 주무관님이 짊어진 바람을 일으키는 기계로 밀어내고 있었다. 밤새 비상근무한 부장 교사와 교장 선생님, 원로교사가 벌써 학교의 상황을 파악한 상황이었다. 재택근무 중인 교사가 업무지원원격사이트 접속이 안 된다고 하여 다른 교사에게도 확인하니 같은 상황이었다. 동시 접속이 원인으로 판단되어 출근 체크 생략하라고 한 후 원격수업에 집중하라고 안내했다. 도 교육청 원격수업지원시스템도 접속이 원활하지 않다고 여기저기서 알려왔다. 우선 태풍으로 인한 학생 동태부터 파악하라고 한 후 기다려보라고 했다. 그러는 동안에 교사들이 나름대로의 다양한 방법을 공유하며 원격수업을 진행했고 여전히 도 교육청 원격수업지원시스템은 원활하지 않았다.
교육지원청 담당 장학사가 단톡방을 개설하여 원격수업 상황을 보고하라고 해서 순간 짜증이 났다. 해결하지도 못할 것이면서, 원격수업이 끝난 후에 상황 파악하여 시스템을 정비하는 게 효율적일 텐데, 굳이 바쁜 와중에 실시간 상황을 파악해야 하는지 하여튼 짜증이 나서 우리 학교 상황을 간단히 남긴 후 단톡방을 나갔더니 다시 초대되었다. 이 단톡방에서 원격학습 시스템이 원활하지 이유를 설명했는데, 도내 전 학교에 안내하기 전에 네이버와 사전 협업이 이루어졌는지 의심이 되었고, 시스템이 원활하지 않은 이유를 네이버 탓하는 것 같아 썩 좋지 않았고, 어떤 이유든지 불안한 시스템으로 수업에 집중할 수 없는 오늘의 상황이 되풀이되면 안 된다. 나 같으면, 사전 준비를 했음에도 예상치 못한 시스템 에러로 접속이 원활하지 않으니 다양한 방법으로 원격수업을 진행하라는 안내를 한 후, 에러를 보완하는 다양한 접속 방법을 안내했겠다. 코로나19로 축척된 교사들의 원격수업 노하우가 빛을 발했다. 꼭 하나의 시스템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 원격수업이 잘 되면 그만이지 않은가? 유연하게 대응해야 도 교육청의 원격수업지원시스템도 안정적으로 운영될 것이다. 카톡의 단톡방을 개설하여 공적인 업무 연락을 하는 것도 반대한다. 태풍이 지나간 뒤, 급한 상황도 아닌데, 불안정한 시스템으로 교사들이 연락을 해오는 상황에서, 굳이 소통하여 현장의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선한 의지였다면 공적인 경남메신저 이용했어야지, 출근하지 못했다는 변명이 통하지 않는 오늘 날씨로 출근하지 않은 교감을 배려했다면 과잉 친절이다. 무엇보다 이렇게 개설된 단톡이 슬그머니 행정 지시 통로가 되는 게 더 싫고. 거슬리기 싫어서 다시 단톡방을 나가지는 않았다.

어떤 이는 별일도 아니라며,
그런 시대에 살고 있다며,
쓸데없이 민감하다며 나무란다.
사적이지 않은 공적인 일로 순전한 내 영역에 심리적으로 허용하지 않은 타인이 훅 치고 들어오는 게 싫다.
공적인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데 순전히 편의를 위해서 내 감정을 아랑곳하지 않고 순전한 내 영역을 침입하는 게 싫다.
그러기에 나는 그런 침입을 감행하지 않는다.
꼭 침입해야 할 일이 있으면 정중하게 양해를 구한다.
허락하지 않으면 욕심내지 않고 물러난다.
그런 내가 잘못이라며 함부로 말하지 마라.
그런 잘잘못을 구분 못하는 너의 잘못을 내게 덧씌우지 마라.
그동안 관습적으로 관행적으로 관성적으로 한 너를 뒤돌아보라.
내가 그런 대우받을 하등의 이유 없다.
나는 그렇게 살려한다.

도 교육청이 왜 그렇게 도 교육청의 원격학습지원시스템에 목메는지를 웬만한 교직원은 다 안다. 그런 노력을 탓하지 않는다. 하나의 시스템을 고집하기보다 유연성을 발휘하면 좋겠고, 그런 유연성이 시스템의 안정과 심리적인 거부감을 줄여 도 교육청의 원격학습지원시스템의 신뢰성을 높일 것이다. 때로는 역발상이 문제를 더 쉽게 해결한다.
학교는 다양한 직종이 근무한다. 재해 시에 복무를 세분화하여 일목요연하게 한 공문으로 미리 안내해야  의미 없는 갈등을 예방하며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재난 시나 비상시의 교직원의 복무는 법령이나 지침을 최대한 허용적으로 해석하여 적용한다. 그렇게 해도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이고.
교직원의 자발성으로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려 한다. 자발성을 요하는 게 크게 힘든 게 아니다. 어제도 오후에 갑자기 저녁 9시까지 교직원 한 명은 비상근무를 하고, 9시 이후에는 한 명-당직 근무자 가능-이 근무해야 한다고 공문이 왔다. 우리 학교는 보안업체에서 보안시스템으로 야간 경비를 대신하는데 난감하지 않은가? 부득이하게 학교 근처에 사는 교직원에게 부탁을 하려는데, 부장 교사가 정말로 본인이 하겠다며 나서서 거듭 그럴 필요가 없다 했더니 극구 그러겠다고 해서 교장 선생님과 상의하여 그렇게 하도록 했다. 물론 시간 외 근무를 승인하며. 만약에 부탁을 해도 거부하고 자발적으로 나서지 않는다면 학교장이 지시를 할 수밖에 없다. 그 지시가 통상의 상식과 관성과 어긋날 때, 예를 들면 행정실이 해왔는데 행정실의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상황을 설명하며 교원에게 요구했을 때 순순히 응하면 고마운데 조목조목 따지며 불응하면, 어쩌겠는가? 물리적, 인간적으로 그럴 상황이 아닌 행정공무원에게 지시할 수밖에 없다. 그 이후의 학교 분위기는 뻔하지 않는가? 교감이나 교장이 하면 되지 않겠냐는 사람에겐 당신이 교감이나 교장 되어 교직원이 안 하겠다는, 못하겠다는 모든 업무 맡아서 하시라. 나는 동의하지 않고 그렇게 못하니. 어떤 이는 왜 부장 교사가 비상근무를 하느냐고 나무랄 것이다. 그러고 싶지 않았다. 아무도 할 사람이 없으면 나라도 할 생각이었다.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하기 싫으면 하지 말고, 그런다고 눈치 주지 말고, 구분되지 않고 나누어지지 않는 우리로 우리 학교 일을 해결하고 싶었다. 그럴 분위기가 되어서 그렇게 한 것이고.

반드시 해결해야 할 일을 해결해야 하는데, 시작부터 네 일 내 일 따지며 힘없는 우리끼리 싸우며 해결해야 할 문제를 하나 더 늘리지 말자. 같이 해야 할 일이면 함께 하고, 개인이 해야 할 일이며 자발적으로 하려는 사람에게 고마움을 표현하고 보상도 하자. 직종이 달라서 어쩔 수 없으면 인정하고 위로하고 격려하자.
서로 도와서 문제 해결하자. 그게 직장생활 가장 편하게 하는 방법이다. 사람이 힘들지 일은 다 해결되잖아.
원격수업한다고, 출근하여 태풍 흔적 지운다고 다들 고생하셨다.

태풍의 상처, 잘 아물기를 바란다.
마음도.
몇몇 묵은 감정 태풍에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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