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감 일기(2018~)

2022년 10월 12일

멋지다! 김샘! 2022. 10. 12. 14:47

연휴에 황매산을 올랐다.
쫓아낸 이 아무도 없었는데 쫓기듯 합천을 떠난 후 처음이었다.
합천이 아닌 걷기를 작정하고 산청 차황 신촌 마을 회관에 차을 세웠다.
기온이 낮다고는 했지만 개의치 않고 여름옷에 얇은 바람막이를 걸쳤다.
공기가 찼다.
오르막을 오르다 보면 땀이 나겠지라고 위안하며 길가에 빨갛게 흐드러지게 알알이 익은 보리수 열매에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과수원에 상큼하게 익은 빨간 사과가 구름 사이를 오가는 햇빛에 희부연 빛을 냈지만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미리내 공원 주차장까지 올랐지만 땀은 나지 않고 여름 장갑을 낀 손이 오그라 들었다.
쉬지 않고 정상으로 향했다.
정상 가까이 갈수록 바람이 거셌다.
거센 바람이 등산로 양 옆의 나무에 부딪힐 때마다 저절로 움찔움찔하는 몸에 한숨이 뒤따랐다.
말라 부러진 작은 가지가 날아와 목에 부딪혔는데 꽤 따끔했다.
뒤따르는 아내의 입술이 새파랗게 질렸다.
정상에서 사진 몇 장을 찍고 물 한 모금 마시고 바로 내려왔다.
산등성이를 뒤덮은 억새, 활짝 피지 않은 억새가 쉴 틈 없는 강한 바람으로 연신 등산로를 쓸었다.
사진 찍으려 스마트폰을 들고 뻗은 손을 고정할 수 없었다.
이리저리 겨우 사진 몇 장을 찍고 억새 사이를 거닐며 바람이 잦아드는 곳을 살폈다.
간혹 구름 사이에서 비치는 햇살이 따뜻했지만 잠시 잠깐이었다.
끝없이 밀려드는 먹구름과 강한 바람이 몸을 황매산 정상 주차장의 천막으로 이끌었지만 들어갈 천막은 없었고 고소한 핫도그 냄새가 찬 바람 사이로 가는 온기를 뿜었다.
화장실을 다녀온 후 데크의 철제 의자에서 땡초 김밥을 먹는데 오늘따라 왜 이리 매콤한지 목메어 딸꾹질이 났다.
그나마 보온병에 담아온 미지근한 온기의 커피로 떨리는 입술을 겨우 진정했다.
아내가 이왕 온 김에 억새 둘레길을 걷자고 했다.
산등성의 억새를 살피니 심하게 요동치는 기색이 없어서 산등성이의 따뜻한 햇빛을 기대하며 걸었다.
이 와중에 아내의 등산 스틱 한쪽 보호캡이 떨어졌고, 바지 호주머니 깊숙이 넣어두었던 손수건을 바람이 헤집어 가져 갔다.
바람을 맞느라 어디에서 떨어졌는지 알 수 없었다.
기대와 달리 덜 핀 억새로 가득한 산등성이의 바람은 지금까지의 바람과 차원이 달랐다.
태어나서 그런 바람을 맞기는 처음이었다.
작정하고 뛰어오르면 몇 미터는 날아갈 듯했다.
아내가 빨리 돌아가자고 했다.
고개를 숙이고 뒤따르는 아내를 내 옆에 바짝 붙으라고 했다.
고개를 들고 바람을 맞았다.
일부러 맞았다.
아내를 보호하려고 마음이었지만 온몸을 후려치는 바람이 싫지 않았다.
몸은 오들오들 떨었지만 마음은 쾌했다.
아직, 이 정도 바람에 맞설 수 있다는 자신감이 일었다.
아직, 이 정도 바람에 위협받는 식구는 건사할 수 있다는 묘한 뿌듯함이 일었다.
아직, 이 정도 바람에 내몰려도 바람 탓하지 않을 굳은 심지(心志)가 있었다.
정신없이 지나쳤던 사과에 군침이 돌았다.
일부러 지나친 빨간 보리수 열매를 따먹었다.
차 안의 공기가 따뜻했다.
운전대를 마주한 눈부신 햇살이 성가시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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