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감이 힘든 것은 교장의 일을 도맡아 해서가 아니라, 교직원이 해야 할 일을 제대로 안 하기 때문이에요. 그럼 교감이 제대로 하라고 교직원에게 지시하면 될 것이 아니냐고 되묻겠지요? 아쉽게도 교감은 조정자이지 결정권자가 아니랍니다. 다행히 교감의 지시 이전에 교장이 동의하면 교감의 지시가 교직원에게 당위성과 권위로 인정받겠지요. 더불어 교감이 나날이 힘든 것은 교직원 간의 갈등과 현대인의 보편적인 안목으로 자질이 안 되는 사람이 일으키는 문제를 오롯이 교감이 떠안아야 해요. 학생이 다 같은 학생이 아니듯이, 교직원도 다 같은 교직원이 아니랍니다. 처음부터 자질적인 문제가 있는 사람을 걸러내지 못하는 제도의 문제도 있지만, 학교생활 중에 어떤 계기로 자질이 상실되거나 훼손되는 경우가 있어요. 현행 제도로는 어느 누구도 그런 교직원을 학교에서 배제할 수 없고 자칫 그런 눈치라도 주었다가는 인권 침해와 갑질의 책임을 면하기 어려워요. 상실되었거나 훼손된 자질을 복원하려는 즉각적이고 현실적인 제도적 지원과 복원이 불가하다면 그동안의 학교생활을 마땅히 보상한 후에 면직 처리할 수 있는 실제적이고 실효적인 제도가 확립되어야 해요. 주지하다시피 지금의 교감은 관리할 수 없는 관리를 떠안으며 그에 따른 모멸성 민원을 감당해야 해요.
곡해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말할게요. 교직원이 정말 나약해졌어요. 그걸 교직원의 책임으로만 돌리지 않아요. 교직원의 열정과 전문성을 재판으로 판가름하는 교육의 사법화, 교직원을 악질적으로 괴롭히는 수단으로 자리 잡은 교육의 사법화는 교직원이 감당하기에는 불가능해요. 교직원이 재판의 대상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악질적인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아야 해요. 눈에 띄지 않기 위해서는 회피해야 해요. 회피해야 하는 교직원들이 많아지는 현실의 학교에서 교감은 그걸 하게 해야 하고, 꼭 안 하겠다는 못하겠다는 교직원들의 일을 대신해야 해요. 여기서 멈추는 게 아니라 교감이 그런 일을 하지 못하겠다는 교사에게 억지로 하게 했다며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며 진단서를 남발하는 병원의 진단서로 병가를 사용하거나 특별한 이유를 만들어 연가를 사용해요. 그런 과정으로 생긴 갈등으로 교감을 갑질로 신고하는 경우도 빈번해요.
악질적인 학부모의 악질적인 간섭은 일반적인 학부모의 상담마저 특이 민원으로 여겨서 회피하는 지경에 이르렀어요. 일반적인 학생과 학부모의 상담마저 특이 민원으로 간주하여 회피하며 교감이 해결할 일이라고 당당하게 말해요. 교감이 그 학급을 어떻게 알아서 대신 상담할 수 있어요? 학생과 학부모에게 담임 선생님이 하는 대로 가만히 놔두라고 엄포라고 놓을까요?
이제는 학생 교육활동 중에 사고가 반드시 생길 것이라는 전제로 교실 수업 이외에는 아무것도 안 하겠다고 당당하게 얘기할 지경에 이르렀어요.
우리가 이렇게 나약해져서 문제가 해결된다면 일부러라도 계속 나약해져야겠죠?
아동학대, 학교폭력, 교육활동 침해 등에서 교사를 교육활동에서 배제해야 할 경우가 생기면 교감은 대체 교사를 구해야 해요. 대체 교사를 구하는 게 말은 쉽지만, 채용 계획부터 공고, 채용 과정, 구비 서류, 호봉 획정, 채용 보고와 평가, 기간제교사 성과상여금 지급까지 원만하지 않아요. 이마저 도시 학교는 좀 괜찮아요. 교통이 불편한 학교는 대체 강사나 교사를 구하지 못해요. 당연히 교사의 질은 따질 수 없어요. 이렇게 채용한 교사가 문제를 일으키거나 나태한 생활로 권리만 찾기 시작하면 또 다른 민원을 유발해요. 채용 계약서에 명기된 명백한 결격 사유 위반이 아니면 계약 해지도 못해요.
교직원 간의 업무 갈등, 학교 공동체 간의 갈등, 업무 지시 갈등 등 학교는 하루도 쉬지 않고 크고 작게 일어나요. 다만 교감이 모르고 있을 뿐일 정도로 교사와 교감 간의 물리적 심리적 벽이 넓고 높아요. 그래서 교감이 그런 갈등을 알게 되었을 때는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조정하기 힘들어요. 양보와 배려가 있어야 조정이 되잖아요? 요즘 세태는 양보와 배려는 바보나 하는 짓이에요. 교감이 제시한 갈등 조정안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아요. 그러는 사이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면 언론에서는 교감이 알고 있었으면서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거나 소극적으로 대응했다며 질타해요. 아니, 교감의 말을 들어야 조정을 할 수 있잖아요? 교감보다 더 실력 있는 갈등 조정 전문가에게 의뢰하려고 해도 당사자가 동의해야 하잖아요? 그렇다고 당사자들에게 고소하라고 부추겨야 해요? 정말이지 어떨 때에는 업무지시 위반으로 신고하고 싶거나, 그냥 고소 고발 하라고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요.
교감 본래의 일은 장학활동이에요. 행정업무만을 하는 게 교감의 일이 아니에요. 현실의 학교에선 행정업무에 치여서 장학활동을 전혀 할 수 없을 뿐이에요. 수업하는 교사와 지원해야 하는 행정직원과 공무직원들은 교감의 장학활동이 달갑지 않겠지만 교감이 장학활동을 해야만 학교의 교육력과 교직원의 전문성이 높아진다는 게 일반적인 통념이에요. 개입하지 않고 가만히 놔두면 잘 될 것이라는 낭만이 현실이 되려면 가만히 놔두어도 스스로 전문성을 높이려는 열정이 충만한 교직원이면 가능해요. 실제로 학교가 그런 교직원만으로 구성되어 있나요? 퇴행하는 학교의 교육력과 교원의 전문성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야만 하는 교감의 무력감은 매우 커요. 날로 떨어지는 효능감은 감당할 수 없는 자괴감으로 이어져요.
교장의 일을 교감이 못하고 교감의 일은 교사가 못해요. 교장의 일을 교감이 해서 교감의 일을 교사가 해서 교실이 붕괴되고 학교가 붕괴된다고요? 잘못짚어도 한참을 잘못짚었어요. 교감이 교감을 포기하는 건요 어떤 이유에서든 교직원들이 각자의 일을 못해서 안 해서 그런 거예요. 그 어떤 이유의 중심에는 법 만능주의와 교육 수요자의 요구가 무조건 선, 정의, 진리, 참이라는 지금 우리 사회의 도그마가 만들어낸 교육 병폐가 있어요.
일반적인 교감은 학교에서 닳고 닳은 베테랑이에요. 그들이 버틸 수 없다는 건, 더군다나 교장이 보장된 길목에서 스스로 이탈한다는 건 학교가 무너지고 있다는 선명한 징조예요. 교사가 무너지는 교실 붕괴도 심각하지만 교실 붕괴를 간신히 막고 있는 교감의 붕괴는 학교의 붕괴예요. 일시적인 현상이 아닌 가속화되는 심각한 교육문제예요.
그걸 막을 부분적인 대안을 주장할 수 있어요. 하지만 실효적인 거시 계획이 없는 현실에서 교장의 일을 교감이 해서 교감이 학교를 떠난다는 식과 같이 우리끼리의 싸움을 조장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기 위해서 이렇게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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