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었지만 상쾌하게 아이들을 가르쳤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만났던 선배선생님이 우리집 근처에 와 있는데 얼굴 한번 보자고 갑자기 전화를 했습니다. 운동을 마친 뒤라 피곤도 했지만 너무 반가워서 설레는 마음으로 약속 장소로 갔습니다. 혼자 나와 계신 줄 알았는데 다른 두 분이 함께 있었습니다. 좀 서먹했지만 공통된 주제가 있어서 이러저런 이야기를 재미있게 나누었습니다. 그 중에서 '창의성'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는데 공감이 되었습니다.
창의성을 학생의 입장이 아니라 가르치는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학교의 실정, 지역적인 차이, 문화적 차이, 학생들의 관심에 따라 창의성이 다르게 표현되는 것이 당연한데 일률적으로 표현되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답을 정해 놓고 그 답이 나오기를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답이 '창의성 교육의 실적'이라고 합니다.
아이들이 사진 공부를 합니다. 카메라로 세상을 바라보는 공부는 주변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태도 즉, 호기심을 기르는데 좋습니다. 그리고 호기심은 모든 공부의 출발입니다. 그래서 학교는 아이들이 호기심을 갖는 환경을 제공해 줍니다. 아이들은 호기심의 해결을 통하여 성장과 발전 즉, 배움이 이루어집니다. 아이들의 변화가 목적입니다. 인화된 사진 즉, 실적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아이들이 스포츠에 관심을 갖고 즐겁게 참여하기 위해 스포츠동아리 활동을 각 학교마다 합니다. 좋은 취지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반대입니다. 스포츠동아리의 목적이 아이들의 변화가 아니라 대회입상으로 변질되었습니다. 교육청에서 스포츠동아리 활성화를 명목으로 학교장과 지도선생님에게 조금의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대회를 시작한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지역마다 차이는 있지만 스포츠동아리 시간이 주중 방과후와 토요휴업일에 열리는 대회에 입상하기 위하여 우수선수를 선발하여 훈련하는 시간으로 변질되었습니다. 기능이 떨어지는 아이는 대회에 출전할 수도 없습니다. 의도한 방향은 아니었겠지만 결과적으로 입상이라는 실적이 목적이 되어 원래의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세계문화이해교육, 장애이해교육, 안전교육, 학교폭력 및 성폭력 예방교육 등의 교육활동도 마찬가지입니다. 실적이 목적으로 각인되어 가장 쉽게 실적을 쌓을 수 있는 학예행사가 난무하는 것입니다.
각종 교육활동의 실적으로 학급경영록에 표시되는 시간 수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실적을 쌓기위해 열심히 하는 교육활동보다 아이들의 변화에 목적을 둔 제대로 된 교육활동이 되어야 합니다.
아이들의 변화를 확인하는 방법이 실적이라고 주장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변화는 정신입니다. 정신은 생각과 의지입니다. 생각과 의지를 수치와 실적으로 나타낼 수 없습니다. 그리고 정신의 변화가 태도로 나타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그래서 교육을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고 합니다.
오랫동안 실적이 교육의 목적으로 각인되어 있기 때문에 아이들의 변화에 목적을 두기 위해서는 특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특별한 노력은 아이들의 바람직한 변화를 위한 선생님들의 열정과 전문성이 발현되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환경의 필수 조건은 아이들과 선생님에 대한 신뢰와 안전에 대한 욕구 충족입니다. 교육부, 도교육청, 교육지원청, 관리자는 선생님들을 믿어야 합니다. 믿어주는 척이 아니라 완전한 믿음을 보내야 합니다. 그리고 무의미하고 과도한 경쟁으로 교직을 불안하게 할 것이 아니라 선생님으로서 역할을 다할 수 있는 안정되고 안전한 학교환경을 제공해야 합니다.
스포츠동아리의 활성화를 위해서 대회를 열 필요가 있다면 일방적인 지시에 의한 행사진행이 아니라 각 학교의 담당선생님들이 모여서 토의와 토론으로 목적과 방법을 공유하고 실행에 옮기도록 해야 합니다. 교육관료와 관리자는 진행에 필요한 지원을 아낌없이 제공하면 됩니다. 그리고 교육활동 중에 안전사고를 비롯한 교권침해가 발생한다면 아이들과 선생님들을 적극적으로 보호하려는 의지와 태도를 보여야 합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현실은 반대입니다.
교육관료는 몇몇 전문가와 상의하여 계획을 세운 후 학교의 담당선생님을 모아서 대진표를 작성하고 역할분담을 하고, 아이들의 안전이 우선이기 때문에 안전계획을 잘 세워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라고 합니다. 담당선생님은 관리자에게 이동, 간식, 식사에 필요한 경비와 안전이 우려되는 현실 등에 대해서 논의하지만 뾰족한 지원은 마련해 주지 않고 학교예산의 범위에서 경비를 사용하고 학생들의 안전에 대해서는 담당선생님이 책임지라는 것입니다. 행정실장은 출전하는 아이들의 택시비는 절대 지출할 수 없으니 버스를 이용하라고 합니다. 버스를 이용하여 정해진 장소와 시간까지 도착하려면 수업을 빼먹고 출발해야 되는데도 막무가내입니다. 관리자는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담당선생님은 동료선생님들의 자가용으로 아이들을 이동을 부탁합니다. 부탁을 받은 동료선생님은 안전사고가 부담이 되지만 거절할 수가 없습니다. 어떤 동료선생님은 택시비를 줄테니 차라리 택시를 타고 가라고 합니다.
교육관료는 계획만 잘 세우고 나머지는 학교에 떠 넘기고 행사에 대한 실적만 잘 포장하여 기관의 평가 지료에 잘 활용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학교 관리자는 많은 아이들이 대회에 입상하여 좋은 실적을 남기면 그것을 자신의 업적으로 포장할 생각뿐입니다. 담당선생님은 무사히 대회를 마치고 싶은 생각뿐입니다. 그리고 실적을 위하여 많이 아이들이 참여하여 최선을 다하는 경기보다 능력있는 아이가 경기를 이겨주기를 바라는 승부중심의 경기를 운영합니다.
아이들의 변화보다 모든 것이 실적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교육기관의 최고 관리자와 교육관료, 학교 관리자에게는 특별한 권한이 부여되어 있습니다. 그 특별한 권한이 부여된 것은 선생님들이 마음놓고 열정과 전문성을 발휘하여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는 무한 신뢰의 기회제공과 교육활동 중에 발생하는 위험으로부터 아이들과 선생님을 보호하는 환경을 제공하는 댓가입니다.
그리고 특별히 부여된 권한과 댓가가 균형을 이룬다면 실적보다는 아이들의 바람직한 변화를 이끄는 선생님들의 전문성과 열정이 발현될 것입니다.
선생님들도 그 특별한 권한을 존중하는 것이 비록 서열은 수직이지만 상호 신뢰에 의한 수평적인 동반자적 관계가 형성되어 실적보다는 아이들의 바람직한 변화가 목적인 행복한 교육이 수월해 질 것입니다. 더불어 부여된 권한만큼 댓가가 충분하게 제공되지 못하는 환경이라면 동료선생님들과 토론과 토의에 의한 소통의 협력문화를 만든다면 습관적으로 실적위주의 교육활동으로 빠지는 잘못을 예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익숙하지 않아서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변화시키려는 끊임없는 노력과 서로에 대한 지지가 잔잔한 바람이 된다면 다가올 학교는 지금보다 더 행복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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