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2학년 담임입니다.
개성 있는 27명의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습니다.
학기 초 학부모 상담 시간에 학부모들의 이야기만 들었습니다.
조언을 원하다는 부모님에게만 이론보다 실천에서 얻은 경험의 지혜를 공유했습니다.
어떤 부모는 자신의 똑똑함만 장황하게 늘어놓았지만 차분히 다 들어주었습니다.
부모들이 요구하는 내용 중 무리 없는 것은 모두 수용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과의 생활이 짧아서 아이들에 대하여 평가를 내리기가 힘들다고 전했습니다.
1학기 중에 간혹 부모님들이 전화로 자녀의 학교생활을 물어왔습니다.
잘하고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걱정할 정도가 아니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어떤 부모는 다른 아이들의 핑계를 대며 자기 아이의 문제적 행동을 정당화했습니다.
차차 나아질 것이라고 위로했습니다.
여름방학이 다가와서 아이들의 학교생활기록부와 생활통지표를 작성해야 했습니다.
1학기 동안 아이들과의 생활을 찬찬히 뒤돌아 봤습니다. 기록한 내용도 꼼꼼히 살폈습니다.
관리자는 아이들에 대한 부정적인 내용보다 좋은 점을 기록하라고 합니다.
현행 학교생활기록부 작성의 매뉴얼에 있는 내용을 관리자가 강조한 것뿐입니다.
솔직하게 알려야 할 것은 학교생활기록부에 보존되지 않는 생활통지표의 가정통신문을 이용하라는 지혜도 빠뜨리지 않습니다.
부모님들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학교생활기록부에 보존되지 않는 생활통지표의 가정통신문에 한 학기 동안 관찰한 자녀의 학교생활을 솔직하게 알리려고 하니 동의하지 않는 부모님은 회신을 부탁한다고 했습니다.
네 분의 부모님이 회신을 했는데 세 분은 회신할 필요가 없는 아이의 학교생활을 있는 그대로 원한다는 것이었고, 한 분은 솔직한 학교생활을 원하는데 걱정도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감정을 배제한 있는 그대로 담백하고 간결한 문장으로 아이들의 학교생활을 기록하고 함께 노력하자는 당부의 말도 빠뜨리지 않았습니다.
물론 잘하는 아이의 칭찬도 빠뜨리지 않았습니다.
한 아이의 아버지가 너무 철부지로 키워서 미안하고 방학 동안 잘 살펴보겠다는 내용의 문자를 보냈습니다.
같이 노력하자는 회신의 문자를 보냈습니다.
개학한 후 첫 금요일에 한 아이가 방과후학교를 가다가 계단에서 넘어져 눈 주위를 다쳤습니다.
퇴근 한 후에 다친 아이의 어머니가 보낸 카톡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사진상으론 그만하기 천만다행이었습니다.
카톡으로 상담하기 어려워 전화를 걸어 그만하기 다행이라는 것과 좀 더 살피겠다고 전했습니다.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강조하는 안전교육과 대처 요령을 아이의 어머니가 재차 강조했습니다.
학교의 안전교육과 저의 안전교육을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안전에 불감한 아이의 문제적 행동도 조용히 이야기했습니다.
생활통지표의 가정통신문으로 전달했기 때문에 무리 없이 수용했고 가정에서 좀 더 잘 살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무엇보다 아이의 시력에 지장이 없는 것이 큰 다행이었습니다.
이번 일로 아이도 깨달음이 있기를 바라는 심정입니다.
학기 초 상담이나 짧은 학기 중에 아이의 학교생활을 단정적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최소한 3개월의 생활이 지난 뒤에 부모님이 상담을 원하면 솔직하고 담백하게 아이의 학교생활을 전합니다.
대부분은 수긍하고 잘 살피겠다는 말로 마무리됩니다.
물론 다른 아이의 핑계를 대는 부모도 있습니다. 맞대응 안 합니다.
솔직하고 담백하게 전달한 것으로 만족하고 관찰한 것을 있는 그대로 알려 드린 것이니 원하면 교실에 와서 직접 관찰해도 무방하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교실을 방문한 부모님 한 분도 없었습니다.
학교생활기록부는 아이의 성장일기와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거짓 성장일기를 종용합니다.
아이가 어른이 되었을 때, 아이의 부모님이 보았을 때 말썽이 될 만한 내용은 기록하지 말라고 합니다.
인간은 성장하는 동물입니다.
초등학교 몇 학년의 생활로 아이의 미래를 예상하기 힘듭니다.
어떤 계기로, 어떤 환경으로 어떻게 성장할지 예측하기 힘듭니다.
다만 현재의 생활로 좀 더 나은 아이의 미래를 돕는 상담과 지도는 필수입니다.
아이가 어른이 되었을 때 학교 생활을 솔직하게 뒤돌아보고 성장의 기쁨을 맛볼 수 있을 것입니다.
회한의 추억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추억이 성장의 또 다른 동력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다만 아이의 행위를 낙인 찍기 위한 기록은 반대합니다.
솔직함을 담지 못하는 학교생활기록부의 무용론과 더불어 내용의 중복을 배제한 간소화를 주장합니다.
그리고 거짓말과 창작을 강요하는 교육청의 과도한 생활기록부 작성 예시 공문의 폐기도 주장합니다.
아울러 아이의 학교생활을 솔직하고 담백하게 표현하는 교사의 세련한 능력 함양도 함께 주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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