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사천시 서포면 농협 하나로마트에 내려주면 학교 후문까지 걸어서 출근하는데 약 10분이 걸린다. 하나로마트를 뒤로하고 나면 서포면 일대에서 생산되는 농산물 경매장이 있는데 디양하고 경매 가격으로 저렴하게 살 수 있는데 단점은 양이 많다. 부추가 유명한데 올봄에 친구 몇과 나눠 먹었었다. 감자, 양파, 마늘, 고들빼기 등 다양하다.
경매장 뒤쪽의 개울가에는 뽕나무가 있는데 지난주까지 잘 익은 달짝지근한 오디가 출근길의 재미를 더했고, 어릴 적에는 뽕나무가 귀해서 뽕나무가 있는 동무들이 참 부러웠다. 손톱 밑이 새까맣고 손금 사이사이에 검은 때가 한참 동안 자리 잡고 있던 친구의 손바닥에서 건네는 몇 개의 오디를 얻어먹기 위해 얼마나 아양을 떨었든가? 요즘은 주인 없는 길가의 뽕나무에서 오디가 길바닥을 새까맣게 물들여도 입맛 다시는 아이들이 없다. 어른들도 없다. 시골에 그만큼 사람이 사라졌고 사람이 사라지면서 시골의 맛을 전해주는 사람도 맛보고 싶은 사람도 끊어졌다. 그런 시골의 맛으로 삶과 앎이 하나 되는 교육을 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다.
지난 주말에 아내와 산행을 하면서 여러 산뽕나무를 만났는데 옛날이야기를 하며 정말 맛있게 따 먹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어르신이 씽긋이 웃으며 지나가셨다.
경매장을 지나면 텃밭으로 정원을 꾸민 전원주택과 돌로 집의 외벽을 장식하고 옥상부터 넓은 정원까지 나무로 치장한 전원주택 볼 수 있는데 전자는 항상 적막하지만 문이 없는 아치에 탐스럽게 피어있는 장미가 한동안 미소 짓게 했고, 후자는 항상 집을 꾸미는 한 사람으로 늘 분주하고 기계는 소란스럽다.
요즘은 빨간 고무통을 거꾸로 하여 문을 만든 집에 입주한 무거운 쇠줄에 묶인 두 강아지가 요란스럽게 나를 반긴다. 지난주부터 매여 있었는데 아직도 나를 몰라보고 새되게 짖어되면 분주한 그분이 시끄럽다고 소리 지르며 무안해한다.
오르막이 시작되고 중간에 대숲에서 온갖 새들이 푸닥거리고 참새는 거칠게 짹짹거린다. 대나무로 둘러싸인 뽕나무가 있는데 실처럼 생긴 하얀 곰팡이로 뒤덮여 있어서 가까이 가지 않는다. 어떨 때는 하얀 실이 살갗에 닿는 듯하여 닭살이 돋는다.
언덕에 오르면 학교를 비롯한 서포면이 환하게 보이고 저 멀리 별주부전의 전설이 배어있는 평온한 비토 바다도 보인다. 우리 학교가 그 언덕에 위치하고 있으면 정말 좋은 전망일 텐데 하는 아쉬움이 늘 있다. 새 곳으로 이사 간 옛날 성당 마당과 울타리는 초록으로 가득하다. 오늘 아침에는 그 시절에 심은 원추리가 무성한 초록을 비집고 올라와 힘들게 피어있었다. 야생의 거친 초록 속에 핀 연노랑 주황 꽃이 유독 선명했다.
학교 후문으로 연결된 고샅 길가의 헛간은 양파와 마늘이 걸려 있고, 거름을 만들 요량인지 채소 이파리에 음식물 쓰레기를 올려놓은 한켠에선 습한 장마철이 더해져 불쾌한 냄새가 원추리꽃의 선명함을 흐르게 했다.
그 아래의 학교 텃밭에선 가지와 오이, 케일, 고추, 땅콩, 참외, 방울토마토가 자라고 있는데 케일은 배추흰나비 애벌레와 달팽이의 먹이가 되어 구멍이 뚫리지 않은 잎이 없다. 거친 줄기에 샛노랗게 꽃만 핀 참외는 열매가 언제 맺힐지 기대만 부풀게 하고, 가지는 제법 달려서 튼실하게 자라고 있다. 방울토마토는 곧 따 먹을 수 있을 것이고 오이는 하나같이 지팡이다.
장마로 색다르게 바뀌어 있을 텃밭이 상상된다. 늘 남모르게 관리하시는 주문관님의 노고가 텃밭을 새롭게 한다. 항상 고맙다.
출근길이었다.
행정실이 뜻대로 옮기지 못하게 되어서 많이 아쉬워하는 모양이다. 교장 선생님도 낙담이 크시다. 인사는 정말 모르는 일이다. 그리고 앞에 붙는 수식어에 따라 아쉬워하는 사람이 달라진다. 파격 인사면 아쉬움의 깊이가 훨씬 깊은 사람이 많아지고 앞으로의 인사를 예측할 수 없어서 당사자들에겐 늘 불안하다. 그렇다고 파격인사가 나쁜 것만이 아니고 조직의 변화나 성장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필요한데 희생된 분이 가까이 있으면 감정이 달라진다. 지금의 행정실장에겐 넘어진 김에 쉬어가라는 위로는 금물이다. 그만큼 낙담이 크고 회복하기 힘든 인사다. 마음이 많이 아프다.
창문 단속 잘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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