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감 일기(2018~2025)

2025년 9월 9일

멋지다! 김샘! 2025. 9. 9. 16:09

이런 염병할! 거문도 여행

9월 1일, 2025학년도 2학기 개학을 앞둔 8월 28일과 29일 1박 2일 동안 전라남도 섬 거문도에 아내와 다녀왔다.
왜 거문도였냐면?
8월 중순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저녁을 먹으며 배경처럼 켜둔 텔레비전에서 거문도를 소개하고 있었다.
아내가 갑자기 눈을 똥그랗게 떠서 보길래 지나가는 말로 거문도 가볼래? 했더니 냉큼 그러자고 했다.
나는 20여 년쯤 어느 초등학교에서 근무할 때 여름방학을 맞이하여 친화회에서 추진한 교직원 여행으로 거문도와 백도를 다녀왔었다.
그때 맛본 갈치회와 서대회 초무침이 아주 인상적이어서 가끔 입맛을 다시곤 했었다.

유튜브로 여러 번 거문도와 백도를 검색해서 봤는데, 거문도등대와 녹산곶등대 트레킹 백도 유람선 관광이 대부분이었다.
어쩌다가 거문도사건과 거문도 유래, 거문도의 역사 유적을 잠깐 알려주는 영상도 있었는데, 그중에는 어이없게도 여수세계섬박람회를 맞이하여 윔블던 테니스대회를 거문도사건 때에 우리나라 최초로 설치된 거문도의 해밀턴테니스장에서 여는 것도 뜻깊을 것 같다고 했다.
크게 웃으며 아무리 지역에 편향된 지역방송국이라고는 하지만 나가도 너무 멀리 나갔다고 생각했다.
영국의 점령으로서 영국인들을 위해 설치된 테니스장이 우리나라엔 어떤 의미일까?
최초라는 자부심이 먼저일까?
거문도사건의 역사적 의의를 조금만 살펴보면 최초의 의미를 우울하게 받아들여 그런 최초를 두 번 다시는 반복하지 말자고 다짐해야 한다.

홀가분하게 여수에서 거문도로 가서 녹산곶등대 트레킹, 점심은 갈치구이, 백도 관광, 저녁은 갈치조림에 소주 한잔, 밤 깊은 저녁엔 은하수를 낭만적으로 보고, 다음날 아침엔 거문도등대 트레킹을 계획했었다.
기행문을 쓰지 않을 생각으로 그냥 보고 먹고 마시다가, 그것도 정한 계획이 아닌 일어나면 일어나는 대로 먹고 싶으면 먹고 싶은 대로 하여튼 이번에는 그때그때 기분대로 하겠다고 다짐했었다.

고속도로휴게소에서 커피를 한잔할 생각이었는데, 어슴푸레한 어둠을 운전하는 긴장감이 물러나는 시간에 마주한 휴게소를 그냥 지나쳤다.
늘 그렇다.
처음부터 기분대로 정한 계획은 시간 따라 들쑥날쑥한 기분으로 늘 들쑥날쑥했다.
삶의 유연과 우유부단을 변명하기 좋은 어디쯤 존재하는 내 삶이다.
아내는 이런 나의 삶에 이제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는다.
어차피 바뀔 계획에 익숙해져서는 중요한 계획이 아니면 나를 내버려둔다.
고속도로휴게소를 들르지 않아서 여수 연안여객선 터미널에 생각보다 일찍 도착한 걸 두고도 아무 내색도 하지 않았다.
다만, 거문도 승선권을 사며 백도 유람선 승선권을 사려는데 비수기인 요즘은 주말에만 운행한다는 안내원의 기계적인 말을 들을 때 아내의 얼굴이 굳어졌다.
아내는 백도를 꼭 가보고 싶어 했었다.
그나마 지자체의 지원으로 반값인 승선료가 위로했다.

실망한 아내의 얼굴을 들키지 않게 살피며 한 시간가량 남아있는 시간을 보내려고 여객선터미널 맞은 편의 전통 시장으로 갔다.
어시장 골목을 들어서서 파하는 새벽 시장을 아내와 천천히 걸었다.
모든 시장이 그렇듯 사람들이 오가는 골목 너머의 골목과 골목 속의 시장 골목은 영화로웠던 그 시절을 뿌옇게 바란 간판으로 고증했다.
요즈음은 그런 골목이 희부연 듯하게 흐리어서 아쉬운 게 아니라 골목을 누비는 사람들이 선명하게 떠올리는 아려한 쾌감으로 다가온다.
아내의 발걸음에 맞추어서 골목을 흘끔흘끔 쳐다봤다.
골목을 향한 좁은 문을 열고 나오는 허리 굽은 할머니의 눈빛은 여전히 억척스러웠다.

봐둔 어시장 모퉁이의 카페에서 카페라테를 시켰는데, 에스프레소를 내리던 주인아줌마가 우유가 애매하게 모자란다며 시장 골목의 슈퍼에서 우유를 사 오겠단다.
카페 아줌마를 기다리며 아내와 이런저런 이야기 하고 있는데, 이웃의 건어물 가게 아줌마가 카페 주인이 없어서 우리가 기다리는 줄 알았는지 퇴행성관절염의 무릎 통증과 고관절의 통증을 이기려는 갸웃거리는 몸짓으로 카페를 기웃기웃하며 카페 주인을 찾았다.
우유를 사러 갔다고 했더니, 거침없이 '우유는 염병할!'이라고 하는데 순간 소리 없는 웃음이 터졌다.
사투리가 이런 거구나!

쾌속선 선창으로 보이는 섬들이 호남의 산봉우리를 닮았다.
섬을 걷게 이으려는 사람의 노력이 군데군데 보였다.
주민은 벌써 섬 사이의 바닷길이 불편하지 않을 텐데, 굳이 낯설게 찾아올 외지 사람을 끌어들여야 할지는 생각해 볼 문제이다.
사람 사는 섬에 사람을 유혹하는 것도 부족해서 사람이 살지 않아서 상상하는 섬으로 오물과 오염이 될 사람을 끌어들이는 행정을 비판한다.
자연을 보전해야 지속 가능한 지역 성장을 이룬다.
사람의 충동질로 영업하는 여행 상품의 영상과 여행 예능과 교양 프로프로그램 영상은 드론으로 촬영했다.
우리는 마치 우리가 여행지에서 드론이 조망하는 아름다운 경치를 볼 수 있다는 착각에 너무나 쉽게 빠지듯, 영상으로 스치는 무인도의 아름다움을 무인도에서는 더 아름답게 느낄 것이라는 오류에 쉽게 빠진다.
무인도는 무인도로 상상할 수 있어서 아름답다.

호텔 사장이 거문도 여객선터미널에 우리를 태워 가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거문도의 1박 숙소를 검색하다가 거문도에서 유일한 호텔을 예약했었다.
호텔이 여객선터미널과 거리가 있어서 묵으러 올 때와 묵고 나서 여객선터미널로 갈 때에 호텔 승합차로 데려오고 데려가는 서비스를 제공했다.
굳이 비싼 호텔을 정한 것은 사람 눈치 안 보고 최대한 편하게 지내고 싶었고, 호텔 침대와 침구의 안락을 누리고 싶었다.
'거문도섬호텔'에서는 제공하지 않지만, 여느 호텔의 빵과 에스프레소는 내 여행의 귀중한 한 부분이다.
승합차 안에서 호텔을 바라보니 정원이 호텔 주변의 자연을 닮아가고 있었다.
정원 주변에 널브러져 있는 관리 도구를 보니 처음에는 잘 가꾸려 한 모양이었고 실제로 정원의 생김새와 조형물, 나무는 꽤 신경 쓴 흔적이 남아있었다.
비수기여서 고객이 안 오는 게 아니라 영업이 제대로 안 되는 모양이었다.
호텔 내부의 공간의 본래의 목적과는 맞지 않게 텅 비어 깔끔하게 정돈만 되어 있었다.
폐허처럼은 전혀 아니고, 호텔 내부와 객실은 밝고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어서 비성수기 숙박료는 조금도 아깝지 않았다.
체크인하며 거문도등대와 녹산곶등대 트레킹에 관해 물었다.
전봇대가 등대로 이어져 있고, 전봇대에 등대 안내판이 있으니, 그것만 잘 보면 길이 헷갈리지 않는다고 했다.
묻지도 않았는데 사장이 호텔 승합차는 체크인과 체크아웃할 때 이외로는 운행 편의를 제공할 수 없다고 했다.
버스와 택시를 이용하면 오늘 두 등대를 여유 있게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호텔 승합차 트레킹 편의 제공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으며 좋은 정보는 고맙다고 했다.

스판 짱짱한 펄렁하고 얇은 바다색의 청바지와 헐렁한 등산 셔츠와 양산처럼 보이는 접이식 우산을 챙겨서, 아내는 접이식 양산과 트레킹 차림새로 호텔 밖으로 나왔다.
사장이 일러준 대로 전봇대를 살폈는데 아무 안내판도 없었다.
거문도등대를 가려고 여객선터미널 방향으로 몇 개의 전봇대를 지나친 후에 거문도등대라는 글자와 번호가 적힌 낡은 안내판을 보았다.
또 몇 개의 전봇대를 지나쳐서 거문도등대와 숫자가 쓰인 안내판을 보았다.
앞에서 본 숫자와 뒤에서 본 숫자로 방향을 감지해야 했는데, 설령 감지했다고 해도 거문도등대 쪽에서 시작한 숫자인지 반대 방향에서 시작한 숫자인지를 알 수 없어서 험난했던 일정이 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몇 개의 전봇대를 지나쳤는데도 이제는 안내판마저 볼 수 없었다.
그렇게 바다를 끼고 동네와 사람을 구경하며 한참을 걸어서 덕촌 마을까지 가서야 가파른 동네 골목길로 안내하는 거문도등대를 안내하는 반가운 표지판을 만났다.
꽤 멀었다.
예사로 오른쪽 저 멀리 보이는 등대가 거문도등대인 줄 알았다.

가파른 골목길에서 산으로 이어진 등산로는 초입부터 풀들로 무성했다.
풀들은 너무나 무성해서 등산로가 산에서 내려올 때까지 간혹 사람이나 짐승이 지나가며 쓰러뜨린 흔적 말고는, 햇빛이 잘 들어오지 않는 동백 군락지 터널 아래의 시원한 바람이 부는 길 말고는, 다양한 곤충을 매달아 출렁이는 거센 거미줄이 땀으로 범벅이 되어 이미 남색으로 변한 청바지와 속의 살갗을 더욱 끈적이게 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등산화와 등산복을 제대로 갖출걸, 후회했다.
그나마 우산을 준비한 건 천만다행이었다.

산 정상부를 올라가며 이리저리 틀리는 길이 아래에서 본 등대 방향과는 달랐다.
외길이라서 다른 길로 들어설 수도 없었다.
산속에서 방향 감각을 잃었을 것이라는 위안으로 서도의 산 정상부에서 고도, 동도, 서도로 이루어진 거문도를 살폈는데, 우리가 가는 길은 아래에서 본 등대길이 아니었다.
아래에서 우리가 본 등대는 우리나라 인어 전설이 있는 녹산곶등대였고, 그곳의 반대편에 있는 등대가 거문도등대였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가고자 했던 거문도등대로 가고 있었다.
다만 바닷가를 끼고 걷는 편안한 길이 아닌 서도의 산을 등산하며 돌고 도는 운동화로는 버거운 등산길이었다.

정상부에 다다라서 일제 강점기에 파놓은 참호에 대한 안내판을 읽었고 위험하게 뻥 뚫려 있는 참호를 보며 쓰려고 하지 않았던 기행문을 써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섬 풍경에만 치우친 관광 홍보에 대한 아쉬움이 너무 컸고, 내가 역사에 관심 많은 교육자라는 동인이 저절로 작용했다.

전망 좋은 편편한 바위에 털썩 주저앉아서 모자로는 물로 더욱 메마르게 느껴지는 빵과 갈증을 위로하는 자두로 점심을 먹었다.
후회하며 짜증 내지도 짜증 나지도 않았다.
정상부를 따라 난 길에서 바라본 양쪽 바다와 절벽의 아찔한 아름다움이 잘못한 선택의 짜증을 말끔하게 씻고도 남았다.
드디어 가파른 돌계단을 끝으로 목넘어해안으로 이어진 길로 접어들었다.
거센 파도가 만든 해골 같은 목넘어해안 바위 앞에서 사진을 찍으려다 더위로 지쳐서 얼른 그늘로 들어가자며 돌아오는 길에 찍자고 했다.
돌아오는 길에도 찍지 않았다.
두 번 보니 별 감흥이 없었다.
발이나 맑은 바닷물에 담그려다가 바위가 너무 뜨거워서 그것마저 그만두었다.

거문도등대에 도착했다.
블로그와 거문도 관광홍보물에서 보았던 그대로였다.
사진은 돌아 나오며 찍고 구경부터 하고 좀 쉬자고 했다.

문화재로 등록된 옛 등대와 지금의 등대를 아래에서 구경하고, 지금의 등대 전망대로 올라가려고 입구를 찾았더니 누수가 있어서 당분간 개방하지 않는다는 안내문이 있었다.
바다로 튀어 나가는 땅의 시작점에 양옆은 절벽이고 삼면으로 탁 트인 바다를 조망할 수 있고, 거칠지만 시원하여 마다할 수 없는 바닷바람이 통과하는 관백정이라는 콘크리트 정자가 있었다.
올여름 들어 가장 시원한 바람을 오랫동안 맞았다.
으슬으슬 닭살이 돋고 마른 청바지에 소금꽃이 피고 나서야 일어섰다.
화장실에서 나오는데 등대지기가 우리가 원한다면 전망대를 개방하겠다고 하길래 그럴 필요가 없다고 했다.
겨울도 좋으니, 겨울에 한 번 더 오라고 했다.
혼자 근무하냐고 했더니 세 명이 근무한다길래 손아래 동서가 등대지기여서 그 어려움을 어느 정도 알고 있다며 위로했다.

아내는 언제나 활기차다.
이 더위에 좋은 사진 찍겠다며 이리 뛰고 저리 뛴다.
찍은 사진 지워가며 열심히 정성껏 찍어줬다.

트레킹 하는 동안 아무도 만나지 못했다.
목넘어해안을 지나 버스정류장에서 잠시 기다리며 버스 운행 시간표를 찾은 데 없었다.
무작정 기다릴 수 없고, 해안 길이 그늘이어서 천천히 걷다가 버스를 만나면 타기로 했다.
버스는 우리가 출발했던 호텔을 지나 녹산곶등대를 가려고 걸었던 그 길을 한참 걸었는데도 만나지 못했다.
까마득히 보이는 녹산곶등대를 오늘은 도저히 갈 수 없겠다는, 이러다가는 쓰러지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내에게 이만 우리가 내린 고도의 여객선터미널 주변 카페에서 좀 쉬자고 했다.
흔쾌히 동의하지 않는, 녹산곶등대를 보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수그러들지 않는 아내에게 지도 앱으로 거리와 시간을 상세히 설명하고, 길옆 창고 건물이 만든 그늘에 털썩 주저앉았다.
조금 있으니, 녹산곶등대에서 출발한 버스가 먼지를 날리면서 오길래 손을 들어 세우려다가 버스가 어디로 가는지를 몰라서 지나치는 걸 빤히 쳐다만 보다가 버스 기사와 눈이 마주쳤다.
버스 기사가 측은하다는 듯이 버스를 세우려고 잠시 눈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
고개를 돌렸다.

고도까지 걸어가기도 쉽지 않았다.
한 번 더 우산을 정말 잘 가져왔다고 생각했다.
좁아서 중간에서 차끼리 마주치지 않게 하는 신호등이 있는 삼호교 아래의 바다가 정말 맑았다.

고도에 도착하여 부두를 따라 쭉 있는 가게 중에서 길모퉁이의 카페에 들어가니 에어컨 아래의 소파에 편안하게 누워있던 주인이 벌떡 일어나 매무새를 다듬으며 자기가 누워 있던 곳이 제일 시원하다며 앉으라고 했다.
생맥주 있어요?
예?
한 잔 주세요.
냉장고에 있는 버드와이저와 카스 중에 어떤 것을 드릴까요?
주인아줌마가 생맥주를 시원한 맥주로 잘못 이해했구나.
버드와이저 주세요.
와인잔을 닮은 맥주잔에 버드와이저를 따라서 가져왔다.
벌컥벌컥 아내와 단숨에 나눠 마시고는 카페라테와 해풍쑥 미숫가루를 주문했다.
쑥 향으로 쑥 가루의 식감이 느껴지는 해풍 미숫가루가 참 맛있었다.
해풍쑥 미숫가루가 참 맛있는데요?
우리 가게에 오는 손님 대부분이 맛있다고 한다면서 어떤 관광객은 미숫가루만 좀 사 가고 싶다고 한단다.
나도 그러하고 싶었는데, 아줌마가 직접 방앗간에서 소량으로 맞춤하는 것이라서 가루로 팔 정도는 안 된다고 했다.
20여 년 전과는 다르게 한산하다고 했더니 지금이 비수기이기도 하고 예전과는 다르게 거문도에 잘 머무르지 않고 백도 유람선 관광이 주이고 거문도는 식사 장소 정도란다.
비수기인 요즘은 백도 유람선을 운행하지 않으니, 관광객이 덜 오고, 가끔 우리처럼 성수기를 피해서 일부러 찾아오거나 성수기인 봄가을에도 트레킹을 하며 머무는 정도란다.
저녁에 갈치 요리를 먹으려고 한다면서 잘하는 식당을 물었더니 근처의 횟집을 소개했다.
횟집에서 갈치 요리를 다양하게 하느냐고 했더니 거문도에서는 그렇게 한다고 했다.

저녁 시간까지는 여유가 있어서 고도 등반을 했다.
역사공원이라 적힌 빛바랜 안내판을 따라가니 귀여운 아기가 토실토실 웃으며 아장아장 걷는 게 여간 귀엽지 않아서 무심결에, 아니고! 귀여워지라고 하며 손을 흔들고 안녕이라고 했더니 더 생글거렸다.
어찌나 귀여운지 아찔했다.
아기 옆의 엄마가 이런 우리를 경계하며 어정쩡하게 웃었다.

폐교한 거문초등학교 앞의 갈림길에서 하교하는 두 명의 중학생에게 역사공원으로 가는 길을 물었더니 여학생이 자기를 따라오라며 친절하게 안내해 줬다.
아무리 여름이라고 하지만 돌담으로 둘러싸인 올망졸망한 쑥밭을 지나서 역사공원 가는 길은 가장자리의 억센 억새와 덩굴식물이 점령하고 있었다.
역사공원 입구의 영국군 무덤부터 발 디딜 엄두가 나지 않아서 역사공원을 들어가지 않고 정상의 전망대로 향했다.
동백꽃 핀 동백나무 터널을 상상하며 걸었다.
전망대도 관리가 안 되어 있었고 동도만 그냥 바라보는 정도였다.
동네에 거의 다다랐을 무렵에 시작된 고샅이 고등학교 시절의 자취방을 떠올렸다.
좁은 길을 비집고 들어선 전봇대의 빛바랜 전단이 정겨울 수가 있다니, 나이가 들었다.

비수기여서 반찬을 준비하지 못했다며 횟집 주인인 아줌마가 갈치회와 회무침을 작은 접시에 서비스로 내놓았는데, 우리가 주문한 갈치구이와 갈치조림이 더해지니 갈치 한 상이 되었다.
주인의 성의를 뿌리칠 수 없어서 냉장고에서 꺼내 온 소주와 맥주 한 병을 겨우 나눠 마시며 갈치 한 상을 비웠다.
그동안 배가 터질 정도로 먹어 본 적이 없었는데 배가 터질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호텔로 걸어가는 내내 둘이 배가 터지려고 한다는 소리를 해댔다.

커튼 사이가 훤해서 새벽이 벌써 온 줄 알고 잠에서 깼다.
한밤중에 일어나 은하수를 보겠다고 했는데 벌써 아침이라니, 낙심하여 커튼 사이로 바다를 보니 고깃배가 훤하게 거문도를 밝히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새벽 2시였다.
어차피 은하수는 못 볼 팔자였다.
커튼을 꼭 닫고는 금방 곯아떨어졌다.

아침에 일어나 호텔 주변 산책로를 걸었다.
산비탈의 컴컴한 나무 아래에서 덩치 큰 양 한 마리가 우리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조형물인 줄 알고 조금 다가가서 자세히 보았더니 살아있는 털이 덥수룩한 양이었다.
산책길 가장자리의 텃밭에 토종닭을 키우는 제법 큰 닭장이 있었다.
우리가 다가가니 모이를 줄줄 알고 꼬꼬댁거리며 쪼르르 달려왔다.
이리 쪼르르 저리 쪼르르.
힘들게 알을 깨고 나왔을 텐데 닭장에 길든 슬픈 동물이다.
천천히 한 바퀴 돌고 호텔로 들어오는 입구에 어제 우리가 걸었던 반대 방향을 가리키는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었다.
호텔에서 산 정상부로 난 지름길도 안내되어 있었는데 입구는 역시 억센 풀로 가득했다.

체크아웃하고 호텔 승합차로 여객터미널로 나올 때 사장에게 아침에 본 양 이야기했더니, 원래는 암수 두 마리를 키웠는데 암컷이 새끼를 낳다가 새끼 먼저 죽고 암컷마저 죽었단다.
혼자 있는 게 너무 애처롭고 외로워 보여서 지인들과 잡아먹기로 했단다.
웃기는 했는데 웃을 일인지· · · · · ·.

어제 트레킹을 잘했어요?
방향을 잘 못 잡아서 본의 아니게 서도 산 트레킹으로 거문도등대까지 갔었는데 전혀 후회하지 않을 정도로 좋았는데, 힘들어서 녹도곶등대까지는 가지 못한 게 좀 아쉽네요.
아 그래요? 어제 호텔에 손님이 없어서 제게 이야기했으면 호텔 승합차로 녹산곶등대 트레킹 입구까지 모셔 드릴 수 있었는데…….
이게 뭔 개소리야!
어제 체크인 할 때에 내게 분명하게 호텔 승합차는 여객터미널에서 데려오고 데려주는 서비스만을 제공하고 다른 별도의 서비스는 제공하지 않는다고 못 박아놓고는 상황이 끝난 지금에서야 친절한 척하려는 개수작일 뿐이다.
착한 척하려는 착하지 않은 사람의 전형이다.
소리 내어 개수작 부리지 말라고는 하지 않았다.

승선까지 한 시간가량 시간이 남아서 여객선터미널 2층에 있는 은빛바다도서관에 별 기대 없이 시간만 보내려 갔다.
제법 갖추어진 도서관이었고 바다를 바라보며 책을 읽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바다 전망이 좋았다.
2026 여수세계섬박람회를 기념하며 출간한 여수의 섬을 주제로 한 시집이 좋아서 동네 어른과 수다를 떨고 있는 사서에게 살 수 있냐고 물었더니 그럴 수 없다고 했다.
인터넷서점에도 검색되지 않았다.
대신에 중학생이 꾸미고 삼산면 행정복지센터에서 제작하여 보급한 거문도를 소개하는 책을 한 권 건넸다.
고맙게 받아서 가방에 넣고 기념 시집을 읽으려고 바다를 바라보며 앉았는데 지나가는 배가 성가시게 독서를 방해하는 게 아니라 사서와 동네 아줌마의 사투리가 독서를 방해했다.
도서관이 동네 사랑방 역할을 하는 듯했다.
애써 시를 읽는데 몇 편을 제외하곤 그냥 그랬다.
그러다가 전시된 책을 둘러보는데 학술서 거문도와 블라디보스토크가 있었다.
책장을 대충 넘겨보니 거문도 기행문을 쓰겠다는 마음을 해소할 수 있는 수준으로 내 마음에 쏙 들어서 인터넷서점에서 바로 주문했다.

거문도 거문도사건이라는 우리 역사의 아픔을 간직한 섬이다.
거문도사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나라를 둘러싼 제국주의자들의 야만적 본성을 훤히 볼 수 있고, 조용한 아침의 나라 조선의 허약을 통감할 수 있다.
열강들로 둘러싸인 지금의 우리나라와 흡사하여 거문도사건을 제대로 연구하면 지금 난감한 국제정세를 타개할 지혜를 얻을 수 있다.
영국의 점령-사실 우리로선 침략이지 점령이 아니지만 외교적 용어여서 그대로 사용한다.-, 뒤이은 일제의 중요한 군사 식민지로 전락했다.
다크 투어리즘의 장소가 마냥 경치 관광에 치중하는 게 못마땅했고, 그나마 역사 유적도 영국군의 점령 잔재였다.
그런 사정이다 보니 중학생이 꾸몄다는 거문도 소개 책도 학생으로서 마땅히 알아야 할 역사적인 사실보다는 경치 소개였고, 잠시 소개한 역사도 인터넷을 검색하여 체계 없이 붙이기만 했다.
중학교 프로젝트 학습의 산출물일 것인데, 거문도의 중학교에 근무하는 교사로서, 거문도에 대한 교육자로서의 부족한 열정과 전문성을 탓할 수밖에 없다.
그 정도의 질로 도서관에 배부한 삼산면의 용기도 참 그렇다.

쾌속선 안에서 아내에게 다음에는 녹산곶등대와 백도를 꼭 둘러보자고 했더니 거문도에 대해서 이제는 알 만큼 알아서 그다지 오고 싶지 않다고 했다.
나이 먹은 계모임 언니들과 민박하는 것도 괜찮겠다고 하니 언니들도 좋아할 것 같다고 했다.

여수에 도착하여 서대회무침을 먹었는데 좀 매웠다.
밥 세 공기로 비벼 먹으면 딱 좋은 맵기였다.
주인에게 좀 맵다고 했더니 올해 태양초인데 유독 맵단다.
그럼, 고춧가루를 좀 덜 넣어야지.
이런 염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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