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교육장의 학교 방문으로 3월 바쁜 일정은 끝난 것 같다. 학교장으로서 공식적인 회의나 행사, 동창회처럼 사적이지만 공적인 부분이 엄연히 섞여 있는 모임에 참여하는 게 처음이어서 약간의 떨림이 있었다. 인사말을 준비하는 긴장한 내 모습에 스스로 나답지 않음을 발견하곤 저절로 엷은 미소가 지어졌었다.
어제는 퇴근 후에 홀가분한 마음으로 편안한 옷차림과 얇은 신발로 백무동까지 걸어서 갔다 왔다. 계곡을 따라 내려오다가 우연찮게 펜션업을 하는 장학회 회장과 학부모를 만났다. 우리 학교 주변에서 만난 사람들의 대부분은 나를 초등학교 교장으로서 정말 환대하신다. 어제도 그랬다.
그동안 교감으로서 학부모의 민원과 특별한 학생 관리, 특별한 교직원이 유발하는 민원과 갈등의 중재와 관리를 하면서 존경받는다는 느낌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중재자로서의 교감의 권위도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런 느낌이 매우 당황스러웠지만 그런 일을 겪을수록 그게 사치라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내 감정은 묻어두고 오로지 문제해결에만 집중했다. 그렇게 하다 보니 교직원의 평범하고 의례적인 반가움과 치켜세움에 진실성이 있는지 없는지를 긴장하여 굳은 몸으로 어정쩡하게 허리를 굽신거리면서 손사래 치며 검증하려 했다.
교장이 되니 부담스러울 정도로 환대했다. 교감으로서의 태도가 몸에 배어 있다가 갑자기 달라진 분위기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를 놓고 고민했다. 교장이니까 환대하는 건지? 내가 잘해서 환대하는 건지? 의례적인 표현인지? 교장에게 그렇게 해야 학교가 편해지니까 그런 건지?
걷다가 만나는 지역민들과 학부모의 환대는? 입학식에서 만난 동문들의 환대는? 점심을 함께 한 지역 유지의 환대는? 시골과 도시에서 골고루 근무했지만 그런 환대는 받지 못했다.
교장으로서 받은 환대의 의도는 생각하지 않으련다. 다만 사람이 사람을 위하는 겸손으로 환대에 답하련다.
교장이 결정권자여서 하고 싶은 말을 입에서 오물거려선 안 되겠다는, 찜찜한 여지를 남겨서는 안 되겠다는 다짐을 하루에 서너 번은 한다. 그리고 그런 게 독단과 독선의 시발점이 되지 않도록 늘 경계한다.
쫓기듯 살아왔다. 쫓길 필요가 없을 때에도 뭔가를 하며 뭔가를 하려고 늘 스스로를 쫓았다. 이제는 일부러라도 읽던 책에도 쓰던 글에도 쫓기지 않으려 한다. 배경음악이 아닌 음악을 듣고, 빠른 걸음보다 거닐고, 느긋하게 커피만 마시련다. 멍 때리며 좀 더 천천히 살련다.
지금은 그렇다.
'교장 일기(2026~)' 카테고리의 다른 글
| 2026년 3월 31일 (0) | 2026.03.31 |
|---|---|
| 2026년 3월 30일 (0) | 2026.03.30 |
| 2026년 3월 23일 (0) | 2026.03.23 |
| 2026년 3월 22일 (0) | 2026.03.22 |
| 2026년 3월 19일 (0) | 2026.03.19 |